하나의 길을 따르는 정신 - 안니 라티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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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31

하나의 길을 따르는 정신 - 안니 라티

대중은 물론 젊은 작가들과 자신의 경험과 열정을 나누는 순간을 너무도 사랑한다는 안니 라티와 대화

코모 지역의 예술 발전에 힘쓰는 안니 라티.





안토니오 라티 재단이 보유한 텍스타일 모음. Courtesy of Fondazione Antonio Ratti, Photo by Agostino Osio

안토니오 라티 재단(Fondazione Antonio Ratti, FAR)은 지난 30여 년간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텐데, 그토록 아낌없이 예술가를 지원하고 대중과 선뜻 컬렉션을 공유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문화 예술의 발전을 돕고 널리 전파하는 것이 FAR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에요. 그동안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젊은 작가를 지원하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예술의 긴밀한 소통을 도왔죠. 사람들의 문화 감수성을 높이려면 누구나 자유롭게 소장품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해요. FAR이 지역 문화의 확고한 구심점으로 자리하며 대중의 호기심과 열정을 북돋아주고 싶어요.
안토니오 라티가 FAR을 설립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뭘까요? 안니 라티만의 운영 철학도 궁금해요. 아버지는 직물 산업을 이끌며 스스로 디자인에도 참여했어요. 그래서인지 디자이너나 연구자가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을 감상하고 전문 기관을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아셨죠. 1950년대에는 전 세계를 오가며 다양한 작품을 모으고 샘플 북을 구하러 다닌 덕에 FAR의 컬렉션은 전문가들에게 과학적으로 정확한 자료를 제공했어요. 물론 대중이 흥미를 느낄 만한 자료도 많아요. 재단이 자리한 코모가 직물 산업의 핵심 도시 중 하나인 만큼 직물 연구를 더욱 활성화하고 컬렉션의 중요성을 시사하고자 노력했어요. 또 설립 초기부터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을 기획했죠. 사실 1985년 이전에도 아버지는 라티 공장 직원들을 위해 콘서트, 강연, 연극 등을 주최하곤 했거든요. 저도 아버지의 그런 관점과 방식을 존중하고 공감해요. 재단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아버지의 유산을 이을 수 있도록 꾸준히 문화 예술 활동을 지속하며 시대가 직면한 과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나아가 우리 모두의 보편적 성장을 돕는 거예요.
안토니오 라티는 3만 점이 넘는 어마어마한 직물 컬렉션을 보유한 컬렉터죠? FAR의 많은 ‘영혼’ 가운데 두 가지만 꼽으라면, 현대미술과 텍스타일 컬렉션입니다. 아버지는 예술을 향한 열정과 깊이 있는 문화적 비전을 지닌 섬유 사업가였죠. 컬렉션을 보존하고 문화 예술의 발전에 헌신하고자 FAR을 설립했어요. 안토니오 라티의 직물 컬렉션은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작품으로 가득해요. 작품의 면면을 보면 2000년 역사를 넘나들기도 해요. 직물은 주로 제조사, 생산지, 재료, 기능 등으로 나눠 실제 제작자(생산자)는 거의 알 수 없지만, 20세기 후반 유명 디자이너인 에밀리오 푸치, 귀도 라바시, 에르메스 등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어요.
FAR의 직물 컬렉션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전문 전시관이 있나요? 안타깝게도 FAR에는 아직 직물 컬렉션을 영구 전시할 적절한 공간이 없어요. 엄밀히 말하면 일반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과는 다르죠. 직물은 환경에 예민해서 온도, 빛,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특별한 암실 두 곳에 보관해요. 미술관 수장고처럼요. 컬렉션 일부를 선보이는 전시를 제외하고는 오직 스페셜 가이드 투어로 학생, 기관 연구자, 단체 여행객에게만 공개해요.
여느 공간과는 다른 FAR만의 특징은요? FAR은 예술 공간 그 이상의 존재예요. 사실 많은 공간의 복합체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만나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에요. 학자와 학생, 아마추어가 고대 직물과 전문 서적을 열람하며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스튜디오이자 예술과 직물을 함께 엮어 전시하는 공간이고, 젊은 작가들이 선배 작가와 큐레이터의 멘토링으로 배움의 기회를 얻는 워크숍 현장이기도 하죠. 중요한 동시대 이슈를 심도 있게 연구하는 장이기도 하고요. 조각 공원을 거닐며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할 수도 있죠.





로마에서 열린 [Arabesques. Antonio Ratti, Textile as Art](2018.3.14~5.20) 전시 전경.





로마에서 열린 [Arabesques. Antonio Ratti, Textile as Art](2018.3.14~5.20) 전시 전경.

FAR의 성과 중 아티스트 리서치 랩 CSAV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어요. 1995년부터 해마다 다양한 결과물을 낸 재단의 핵심 프로젝트잖아요. CSAV는 줄리아노 콜리나와 프란체스코 소마이니가 기획한 드로잉 코스에서 출발했어요. 과거의 학문적 방법론에서 벗어난 시각예술의 실험적 모델을 확산하려는 의도였죠. 애니시 커푸어(Anish Kapoor) 같은 유명한 예술가의 강의를 선보이고, 해마다 국적 불문의 젊은 작가 20명 정도를 뽑아 선배 작가의 멘토링을 제공해요. 고유의 작업 방식과 접근법을 지키되 경계를 허물고자 노력하며 실체적·이론적 이슈를 두루 다룹니다. 참여 작가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만나 지식을 나누고, 세션이 끝날 때마다 전시를 열고 출판도 하죠. 그 과정에서 재단이 작품을 커미션하고 소장하기도 해요.
7800권이 넘는 전문 서적을 보유한 도서관 역시 대중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죠? 방대한 예술, 직물, 패션 전문 서적을 보유한 도서관은 항상 재단의 프로젝트와 함께했어요. 지금도 계속 확장 중이죠. 독특한 구성과 전문성을 갖춘 덕분에 외부 학자들의 요청이 잇따라 2010년에는 코모 지역 공공 도서관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도서를 ‘듀이십진분류법’에 따라 분야별로 나눴죠. 도서관은 미국의 아트 딜러이자 텍스타일 역사의 서지학자로 알려진 이자 세스 시겔롭이 정치학, 인류학, 직물 관련 책을 대거 기증하며 더욱 풍성해졌어요. 세스 시겔롭은 텍스타일의 기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연대표를 재구성하는 업적을 달성하기도 했죠. 재단 도서관은 그의 끈질긴 리서치가 낳은 결과물입니다.
앞서 잠깐 언급하신 조각 공원도 코모의 자연과 잘 어우러진 FAR의 자산이죠. 재단의 공간 자체를 코모의 도시, 자연, 사회에 하나의 풍경으로 새기고 싶어요. 조각 공원이 그 역할을 하죠. FAR이 생긴 이유 중 하나는 도시에 좋은 문화 자원을 제공하는 데 있거든요. 재단 주변에 있는 빌라 올모, 빌라 델 그루멜로와 협업해 ‘The Kilometer of Knowledge’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시민들이 자연에서 사색하며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나아가 문화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해요.
흥미롭네요. 그럼 놓쳐서는 안 될 FAR의 프로젝트를 꼽는다면요? 수년 동안 재단은 생태계를 주제로 한 강의와 워크숍 등 장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지구와 자연 자원이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환경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이죠. 장기 프로그램 중 하나로 해마다 생태학자 사비아나 파로디 델피노와 함께 조각 공원에서 ‘Permaculture’ 워크숍을 개최하고, 심포지엄을 열어 작가, 큐레이터, 활동가, 학자가 기후변화를 위한 다원적 전략을 논합니다. 또 우크라이나에서 발발한 정치 폭력 같은 동시대의 주요 이슈에도 관심을 두고, 시리즈 강의 ‘Reflections on War’에서 정치 패러다임을 재고했죠. 세스 시겔롭의 도서와 직물 컬렉션을 연구하고 전시하는 자리도 마련할 계획이에요.
마지막으로, FAR의 궁극적 목표는 뭔가요? FAR의 CEO로서 앞으로 계획도 궁금합니다. 저는 미래의 FAR도 설립 당시의 지론을 따를 것으로 믿어요. 동시대 이슈를 수용하고 치밀한 전략을 세워 물음에 답할 거예요. 예술, 문화, 지식을 변화의 동력으로 삼아 증진하고, 지역과 국제사회에 두루 관심을 두고, 대중과의 연결 고리를 놓치지 않으면서 콘텐츠를 만들어야죠. 그동안 FAR은 코모의 상징적 공간을 두루 거쳤어요. 빌라 수코타에 정착한 지금은 이 공간이 지역의 견고한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할 겁니다. 조각 공원 역시 많은 가능성을 지닌 곳이죠. 모든 에너지를 FAR에 쏟아붓고 장기 프로그램의 틀을 더욱 발전시킬 계획이에요.





2007년 요안 요나스(Joan Jonas)의 워크숍. Courtesy of Fondazione Antonio Ratti





2002년 존 나이트(John Knight)와 함께 한 워크숍 장면. Courtesy of Fondazione Antonio Ratti, Photo by Luca Bianco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제공 안토니오 라티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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