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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0

로툰다에 안착한 현대미술

구겐하임 미술관의 '로툰다'라는 공간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로툰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관람객이 나선형 공간을 따라 이동하며 작품을 감상하도록 전시장을 설계했다. Photo by David Heald © The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New York

1956년 추상표현주의 화가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과 빌럼 더쿠닝(Willem de Kooning)을 비롯한 예술가 21인의 이름으로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이하 구겐하임 미술관) 디렉터 제임스 존스 스위니(James Jones Sweeney)와 임원진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는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의 새로운 건물 인테리어 디자인이 회화와 조각 같은 예술 작품을 전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담고 있었다. 그들은 작품을 전시할 경사진 곡선 공간이 전통적 회화의 사각 프레임을 무시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예술 작품에 관한 적절한 시각적 숙고와 함께 건축 계획을 다시 고려하길 바란다고 썼다.
1959년에 문을 연 구겐하임 미술관은 근대건축 거장으로 손꼽히는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상징적이고 아름다운 백색 콘크리트 건물은 내·외부의 형태를 결정짓는 나선형 디자인이 만들어낸 독특한 공간으로 관람객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미술관이 줄지어 늘어선 뉴욕 5번가 뮤지엄 마일에 있는 나선형 건축물은 맨해튼의 격자형 도시계획만큼이나 반듯하게 수직, 수평으로 이뤄진 정갈한 건축물 사이에서 불쑥 나타나 건축 전부터 혹평에 시달렸다. 긴 나선형 경사로와 경사진 벽은 예술 작품을 건축물에 종속시키려는 건축가의 의도라며 미술관이라는 건축물의 정체성에 반할 뿐 아니라 작품을 전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 미술관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하고 건축한 마지막 주요작이지만 그는 결국 미술관의 완공과 개관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미술관은 초기에 개축과 증축을 반복하며 부침을 겪었다가 1992년에 이르러서야 그의 의도에 기반한 건축물로 거듭났다. 본래 의도는 이젤에 놓인 작품을 연상시키는 전시 설치를 위해 97도 각도로 비스듬히 기울인 곡면 벽에 나선형 천창으로 자연광이 직접 들어오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작품 보존 문제로 채광창은 인공조명으로 대체했고, 작품은 지금도 벽과 떨어진 돌출된 금속 막대 위에 설치해 관람자의 시선과 수직이 되도록 전시한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알렉스 카츠(Alex Katz)의 전시 [Gathering]에서도 평면 회화 작품은 그렇게 전시했다. 그야말로 건축과 회화의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치열한 논의와 비평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전시에서도 작품의 배경이 되는 건축물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구겐하임 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이다. 경사진 벽과 경사로는 다른 장치 없이도 관람객을 끊임없는 긴장으로 몰아넣는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의 컨트리뷰팅 에디터이자 평론가인 폴 골드버거(Paul Goldberger)는 이런 논란과는 반대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물과 공간이 오히려 대형 작품과 자유로운 조각, 팝아트 같은 다양한 예술을 전시하는 데 훌륭하게 작동했다고 믿는다. 모빌부터 대형 미디어 프로젝션 같은 새로운 예술 형식과 매체로 만든 작품을 보면 과거 논란을 일으킨 문제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건축물과 작품을 모두 훌륭하게 이끌어내는 방법을 찾아가는 예술의 끊임없는 여정 한가운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렬한 공간 경험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구겐하임의 원형 공간 로툰다(Rotunda)는 다시금 예술계의 해묵은 논쟁을 촉발했다. 1990년대에 스펙터클한 건축물과 스타 건축가가 등장하면서 구겐하임 미술관이 그들의 주요 무대로 주목받은 것이다. 자하 하디드(Jaha Hadid)와 프랭크 게리(Frank Gehry), 장 누벨(Jean Nouvel) 등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축가들은 각자 더욱 강한 개성을 불어넣으며 블록버스터 전시를 창조해냈다. 미술관에서 건축이 더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큐레이터의 권한을 능가하는 건축가가 만들어낸 공간의 절대적 권위가 전시 기획과 작품을 소외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Alex Katz: Gathering] (2022.10.21~2023.2.20) 전시 전경. Photo by Ariel Ione Williams and Midge Wattles © The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New York





원형 공간을 제대로 활용한 [Jenny Holzer: For the Guggenheim](2008.9.26~12.31) 전시 전경. Photo by David Heald © The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New York

1998년 프랭크 게리는 [The Art of the Motorcycle]전에서 미술관 로툰다 홀 경사로의 표면을 크롬 스테인리스스틸로 덮었다. 반짝이며 반사하는 곡면에 따라 전시장이 왜곡되며 마치 트랙 위를 달리는 듯한 오토바이의 속도감이 전시 전체를 감쌌다. 전시 기획 의도와 전시물의 특성을 공간에서 극대화해 효과적으로 살린 매우 구체적인 모습의 디스플레이였다. 리움미술관 건축가 중 한 명으로 유명한 장 누벨은 2001년 개막한 [브라질: 몸과 영혼(Brazil: Body and Soul)]전에서 리움미술관 전시실과 마찬가지로 구겐하임 미술관 공간을 모두 검은색으로 칠하고 어두운 중앙 로비에 거대한 기념비적 조각을 배치했다. 어두운 실내 공간과 거대한 작품을 비추는 극적 조명은 그야말로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모두 건축가답게 매우 기능적이면서도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너무나 드라마틱하고 적극적인 공간 연출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공간을 완벽하게 다른 공간으로 전환하면서 전시에 작품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기는 새로운 건축적 의미와 맥락을 추가했다.
물론 우리는 ‘또 하나의 작품ʼ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이처럼 공간을 재창조하는 방식이 그동안 논란이 된 측면을 더욱 강하게 부각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오히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세계적 예술가의 회고전에서 그들이 작품을 통해 직접 개입해 변화시킨 미술관 공간은 더욱 흥미로운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새롭게 등장한 현대미술은 공간의 또 다른 가능성을 함께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미술관의 나선형 공간과 통로가 일방향 전시 감상 방식을 관람객에게 강요하는 듯하지만, 모든 선입견을 부수는 예술가와 작품이 등장한 것이다. 작가들은 구조적이고 기능적인 공간의 변형 대신 작품으로 공간의 속성과 전시 관람 방식의 변화를 꾀했다. 2008년 차이궈창(Cai Guo-Qiang)의 회고전 [I Want to Believe]에 등장한 나선형 로툰다를 뛰어오르는 늑대와 그 안으로 쏟아지는 자동차 폭포 등 설치 작품을 본 관람객은 더 큰 희열을 느꼈다. 2011년에 열린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All]전에서는 나선형 램프가 둘러싼 중앙 홀 천창 아래 모든 작품을 밧줄로 걸어 계속해서 논란을 야기한 기울어진 벽체를 완전히 뒤로하고 관람객을 오픈된 중앙 공간으로 이끌었다. 이 설치 방식은 관람객에게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전시 경험을 제공했다. 관람객은 기울어진 경사로에 서서 비스듬한 벽면에 정확한 각도로 걸린 작품을 감상하지 않아도 된다. 중앙의 설치 작품들은 경사로의 분절된 벽면 대신 반대편에서 미술관 내부를 하나의 대형 전시실로 통합하며 램프 난간에 기대어 이를 다양한 높이와 거리에서 바라보게 했다. 관람객의 위치와 시각에 따라 작품은 끊임없이 연결, 분리되며 서사와 맥락을 만들어냈다. 일관된 기하학 공간이 강요하는 획일적 동선을 무참히 파괴하는 것이야말로 예술 스스로의 몫이다. 작품을 걸 수 있는 옵션이 거의 없다고 비판한 초기 논란에서 나아가 이제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 이어진다.
구겐하임 미술관 직원들은 건축물 자체를 재단의 가장 중요한 소장품으로 여긴다고 한다. 이는 존재감과 상징성을 의미하는 걸까?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그 안에서 선보이는 모든 작품은 결국 건축물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건축은 예술에 늘 어떤 식으로든 함께했다. ‘해석의 미술관ʼ에서 ‘경험의 미술관ʼ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점점 진화하는 ‘예술적 경험ʼ은 미술관 건축을 더욱 중요한 위치로 끌어올렸다. 규모와 시각성이라는 측면에서 예술 작품과 건축물의 관계는 전시를 기획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축과 전시의 의미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공간이자 계속 변화하는 예술의 미래와 가능성을 함께 그려나가는 멋진 파트너다.





로툰다에 맞춰 압도적 규모의 영상을 선보인 [Wu Tsang: Anthem] (2021.7.23~9.6) 전시 전경. Photo by David Heald ©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2021 © Wu Tsang





[Maurizio Cattelan: All] (2011.11.4~2012.1.22) 전시 전경. Photo by David Heald ©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이세영(전시 디자이너)
사진 제공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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