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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07

브레게와 예술, 유동하는 시간의 연구

프리즈 서울 공식 후원사로서 2022년 예술가 파블로 브론스타인(Pablo Bronstein)과 협업한 부스를 선보이며 눈길을 끈 스위스의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 브레게가 올해는 큐레이터 심소미와 손을 잡았다.

프리즈 서울 2023 브레게 부스 전경. Courtesy of Breguet

브레게와 예술, 유동하는 시간의 연구
프리즈 서울 공식 후원사로서 2022년 예술가 파블로 브론스타인(Pablo Bronstein)과 협업한 부스를 선보이며 눈길을 끈 스위스의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 브레게가 올해는 큐레이터 심소미와 손을 잡았다. 심소미는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심도 깊은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독립 전시 기획자이자 연구가다. 그동안 예술가와 협업하는 브랜드는 많았지만 미술 큐레이터와 협업하는 사례가 드물었던 만큼 다양한 시도로 예술을 받아들이고 기술력을 확장하는 브레게의 탁월한 안목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브레게와 심소미 큐레이터는 프리즈 뉴욕에서 첫 번째 협업 전시를 선보인 이후, 9월 6일부터 9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리는 두 번째 프리즈 서울에서 <스트리밍 타임(Streaming Time)>을 마련한다. <스트리밍 타임>은 끝없는 흐름을 뜻하는 단어이자 최근 디지털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된 문화 소비 방식의 한 형태인 ‘스트리밍’ 개념을 적용해, ‘시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전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심소미 큐레이터에게 전시 기획 의도, 참여 작가, 협업 과정 등을 물었다.





프리즈 서울 2023 브레게 부스 전경. Courtesy of Breguet

한국인 큐레이터로서 세계적 브랜드 브레게의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소감이 어떠세요? 브레게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브레게의 도전적 행보에 참여할 수 있어 매우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작년엔 예술가와 협업한 브레게가 올해는 ‘시간’을 다루는 맥락과 접근 경로를 확장하려는 의도로 큐레이터인 제게 합류를 권했죠. 올해 초 프리즈 스튜디오(Frieze Studio) 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도래할 시간의 축을 다룬 <미래가 그립나요? (Do You Miss the Future?)>(2021,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등 그동안 제가 기획한 전시를 관심 있게 보셨더군요. 이후 스위스에 있는 브레게 시계 메뉴팩처 견학도 하고 여러 회의를 거쳐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임했어요.

그 결과물이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선보이는 전시 <스트리밍 타임>이군요. 기획 의도가 궁금해요. 오늘날 현실과 디지털 사이에서 시간의 작동방식과 그 유동성을 탐구하는 자리예요. 불이 꺼진 적이 없는 현대 도시 서울을 주목했죠. 밤낮없이 찬란한 불빛으로 가득한 서울은 낮과 밤, 조명과 어둠, 디지털과 현실,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이를 새로운 시간의 동력으로 삼았어요. 서울은 동시대 스트리밍 서비스의 글로벌 허브로서 K-컬처 등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대표적인 메가시티이기도 하죠. 동시대 문화를 선두하는 도시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생성되고 또 금세 사라지는 ‘시간’을 파고들면서, "실시간으로 '시간'이 계속 쏟아져내리는 이 도시에서 당신의 시간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관람객과 공유하고 싶어요.

그럼 이번 전시와 지난 5월 프리즈 뉴욕에서 브레게와 함께 선보인 <오비탈 타임(Orbital Time)>은 연결되는 지점이 있겠네요. <오비탈 타임>에서는 선형적인 시간 너머에서 작동하는 순환적이고 다층적인 시간의 궤도를 탐구했어요. 시간의 탈중심성을 탐색하는 인도 출신 ‘락스 미디어 컬렉티브(Raqs Media Collective)’와 덴마크 출신 ‘앤 리슬리가드(Ann Lislegaard)’의 작업을 통해 다양한 존재가 공존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관점을 열었죠. 이렇게 뉴욕에서 시간의 축이 선회하는 순환적 사고관을 다뤘다면, <스트리밍 타임>은 동시대 사회가 직면한 시간의 작동방식을 주목하는 전시예요.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최전선에서 발생하는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시간을 주목하죠. 우리 모두가 시간에 개입하고 있지만 시간의 정체와 작동방식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잖아요. 이 지점을 안성석과 정희민이라는 두 한국 작가의 실험적인 신작으로 파고들고자 합니다.

두 작가 모두 동시대 아트 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만큼 더욱 기대가 큽니다. 어떤 작품을 선보이나요? ‘스트리밍 타임’이라는 용어를 직역하면, 자칫 '콘텐츠가 일시적으로 생성되는 시간'을 뜻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안성석과 정희민은 그보다는 불안정한 시간의 개념에 도전하는 작업을 선보여요. 마치 물거품 같은 ‘스트리밍 타임’의 하부구조에서 재생산되는 시간의 작동방식을 관찰하죠. 먼저 안성석의 신작 영상에서 디지털 세계는 현실을 망각하게 하고 소거하는 어떤 힘에 저항하는 기억 장치예요. 작품에 등장하는 모래시계가 동시대 사회를 은유하죠. 모래시계 안에서 시간의 입자가 된 사람들은 허물어지기 쉬운 공동체의 시간을 상징하고, 상호작용과 연대를 통해 미래를 지탱해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전합니다. 한편 비물질과 물질 사이 감각을 회화로 표현하는 정희민에게 ‘스트리밍 타임’은 대상이 주체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뜻해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디바이스 사용자들의 경험과 신체적 감각, 디지털 프린팅과 미디엄 레이어링 등 서로 다른 프로세스가 결합한 유연한 회화를 제안합니다.

런던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다음 프리즈에서도 계속 협업 프로젝트를 선보일 텐데요. 각 전시의 연결 지점이 궁금합니다. 네 전시는 각 도시의 시공간이 지닌 맥락, 사회상, 문화적 배경, 지각 방식 등을 바탕에 두고 점진적으로 이어지도록 기획했어요. 뉴욕의 '순환하는 시간', 서울의 ‘스트리밍 시간’에 이어 런던과 로스엔젤레스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네 도시의 서로 다른 맥락에 따라 새로운 주제로 전시를 전개하면서도, 동시에 ‘시간’을 다층적으로 조망하는 복합적 흐름에 근거해서 전시를 만들었어요.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브레게와 협업해 <스트리밍 타임(Streaming Time)> 전시를 기획한 심소미 큐레이터. Courtesy of Breguet

 profile 
심소미는 서울과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이자 연구자로, 리서치, 전시, 공공 프로젝트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이동석 전시기획상 2018'을 비롯 2021년에는 '현대 블루 프라이즈 디자인 2021'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여한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고, <미래가 그립나요?>(2021, 현대모터스튜디오), <리얼-리얼시티>(2019, 아르코미술관) 외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 안에서 브레게의 워치메이킹 기술과 예술을 어떻게 연결 지었는지도 알고 싶어요. 시간에 관한 브레게의 풍부한 역사, 사회, 산업, 문화적 맥락은 저에게 많은 영감으로 작용했어요. 동시대 사회에서 시간은 과거보다도 더 유동적인 개념으로 인식되곤 해요. 그러한 상황에서 브레게가 발명한 시계의 배경을 살펴보면, 불안정한 환경과 시대에 대항하며 인류에게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기술을 바탕에 두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브레게의 시계는 당대의 미적 고정관념과 형식에 도전하는 대담하고도 아름다운 미학적 감수성을 파격적으로 제시했어요. 시계학의 발명과 발전에 기여한 브레게를 배경에 두고, 예술과 기술 사이의 간극, 공백, 미정,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대화의 장을 하나씩 만들어나가고자 노력했죠.

흥미롭네요. 이번 브레게 부스 전시를 구성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 무엇인가요? 그동안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셨는데, 아트 페어 부스 전시를 꾸릴 때는 차이점이 있을 것 같아요. 18세기부터 예술, 기술, 과학, 시계학에 걸친 깊은 전통을 보유한 브레게와 전방위에서 벌어지는 동시대의 예술 실험을 어떻게 함께 담아낼지 고민했어요. 저는 그동안 전시를 기획할 때 여러 요소와 타협하고 절충 모델을 찾기보다는 예술이 지닌 실험적 측면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는데 집중했어요. 물론 아트 페어 내 부스라는 공간과 상황이 한계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시공간적 한계라는 요소를 매번 큐레이팅에서 도전 요소로 삼아왔거든요. 이번 부스 공간도 불안정한 시간의 자취를 역설적으로 더 스펙터클하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펼쳐내고자 구성했습니다.

브레게와 협업 과정은 어땠나요? 독립 큐레이터로서 매우 특별하고 흥미진진한 경험을 했어요. 국제적 예술 아이콘 프리즈와 문화예술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가진 브레게와 여러 차례 회의를 하면서 각 전시를 논의하고 발전시켰죠. 프리즈가 갖고 있는 국제적 협력 관계와 인프라는 제가 개인으로서 접하기 어려운 부분에 조력자로서 역할을 했어요. 더불어 예술을 포용적으로 바라보는 브레게의 열린 시각은 제가 전시기획자로서 가졌던 예술과 세계 사이 경계를 허무는 계기가 됐어요.

이런 브레게의 적극적인 예술 후원이 창작자들과 나아가 아트 신에 무슨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세요?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안성석과 정희민 작가에게 신작 커미션 작업을 의뢰하고 진행하는 과정이 기획자로서 흥분되고 기뻤어요. 여러 브랜드와 기업이 예술에 관심을 갖지만 창작자의 자유를 존중하기보다는 간혹 예술을 홍보 수단이나 도구적으로 생각하는 사례도 많잖아요. 그런 면에서 창작과 발명, 장인 정신을 향한 깊은 관심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브레게의 후원은 예술을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예술과 후원자가 서로를 독려하고 힘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했어요.

이번 전시의 기획자로서, 프리즈 서울에서 브레게 부스를 방문한 아트 컬렉터와 브레게의 고객들에게 부스에서 눈여겨보면 좋을 점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두 한국 작가의 신작과 더불어 브레게 워치의 메커니즘을 함께 살펴보시길 제안합니다. 이번 <스트리밍 타임>을 구상하면서 18세기에 발명된 크로노미터가 큰 계기로 작용했어요. 바다에서 예측 불가능한 항해의 불안과 위험에 맞서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제작된 해양용 시계인데요. 오늘날 브레게의 항공 파일럿 모델까지 역사가 계승되고 있죠. 인류의 불안을 극복하고 발전한 워치메이킹 메커니즘처럼, 우리가 지금 같은 불안정한 시기에 어떻게 하면 서로 단단히 지탱할 수 있을까요? 이번 전시가 예술적 시각으로 이를 관람객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브레게와 함께 할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큐레이터님의 미래 계획이 궁금합니다. 브레게-프리즈의 파트너십과 더불어 11월에 브레게와 상하이에서 또다른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그밖에 제 독립 프로젝트로 세계 사막화 현상에 대한 큐레토리얼 리서치를 진행하고 있는데 2024년에 한국에서 기획전 형태로 선보일 예정이에요.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제공 브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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