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NBA의 시대가 오고 있다

LIFESTYLE

2016-08-29

다시 NBA의 시대가 오고 있다

NBA의 새로운 부흥기를 이끌고 있는 슈퍼스타 스테픈 커리

르브론 제임스와 스테픈 커리,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2016년 NBA 결승 시리즈가 펼쳐지는 동안 이태원에서는 NBA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자주 목격됐다. 이른 아침인데도 아직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한 표정의 팬들이 저마다 방금 본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밤새 클럽에서 힘을 쏟은 것일까? 아니다. 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이태원의 바(bar)를 빌려 이른바 ‘단체 응원’을 하고 나온 참이다. 클릭 한 번이면 PC로든 휴대폰으로든 NBA 경기 시청이 가능한 시대지만, 그들은 그런 편안함 대신 ‘함께 보는 즐거움’을 택했다. 이제 더 이상 “아직도 농구 좋아하세요?”나 “마이클 조던 때가 재미있었는데”라는 말을 안 들어도 된다. “같이 보실래요?”라고 말했을 때 월요일 오전임에도 기꺼이 이태원까지 나와줄 사람들이 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조금씩 NBA 농구는 비인기 스포츠에서 탈피하고 있었다.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NBA는 벌써 세 시즌째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2015~2016년 시즌 NBA 30개 구장에는 2195만 명이 입장했다.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클리블랜드와 골든스테이트가 붙은 결승 시리즈의 경기 티켓은 가장 싼 좌석이 100만 원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덩달아 시청률도 올랐다. 이러한 인기는 NBA에 큰 선물을 안겼다. 2016~2017년 시즌부터 시작되는 ESPN, TNT와의 새 중계권 계약 규모는 240억 달러다. 9년간 유효한 이 계약은 NBA뿐 아니라 미국 프로 스포츠 중계권 역사에서도 새로운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240억 달러면 우리 돈으로 27조3120억 원이다. 비슷한 일이 2015년 중국에서도 일어났다. 온라인 NBA 중계권 금액이 연간 1억 달러(약 1140억 원)까지 치솟은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을 지불한 매체가 5년 계약을 가져갔다. NBA의 수입이 늘면서 선수들도 덩달아 부자가 됐다. 2016년 여름, 적지 않은 선수가 예년의 2~3배에 이르는 액수에 계약을 체결했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형 리그로 올라선 것이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왜 NBA는 왜 다시 부활하게 됐을까? 어쩌다 자국 선수 한 명 없는 한국에서조차 역대 최고 시청률에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올라가게 된 것일까?

스테픈 커리와 르브른 제임스는 NBA의 새로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스타와 이를 지탱하는 스토리라인,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준 ‘권위’에 그 답이 있다. 마이클 조던 은퇴 후 흡입력 있는 스타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코비 브라이언트와 앨런 아이버슨 등 글로벌 스타들이 NBA를 지탱해주었지만, 모든 세대와 전 세계를 아우를 정도는 아니었다. 코비는 독선적인 이미지가 강했고, 아이버슨은 사고뭉치였다. 10대, 20대를 끌어들일 만한 스토리는 있었지만, 부모들의 지갑을 열진 못했다. 그런데 스테픈 커리라는 스타가 등장해 시선을 휘어잡았다. 벌써 3년째 NBA 3점 슛 신기록을 쓰고 심지어는 시카고 불스가 세운 72승 10패 기록까지 넘어서 73승을 달성했다. 불스가 어떤 팀인가? 아재들에게는 영원한 ‘국민 NBA 팀’이다. 주전은 물론이고 벤치 멤버 이름까지 외우던 인기 팀이었다. 그런 팀 기록을 넘어서면서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됐다. 중요한 건 커리는 NBA 팬들에게 칭송받던 역대 ‘초월적 존재’ 중 가장 만만하고 가깝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르브론 제임스처럼 높이 뛰거나, 아이버슨처럼 빨리 달리진 못한다. 커리는 ‘연습하면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스타다. 실제로 데뷔 당시 커리는 그리 큰 기대를 모으지 못한 선수였다. 하지만 약점을 극복하고 올라서는 과정에서 엄청난 슈팅 기술과 슛감을 익히게 된다. 팬들은 어떤 자세, 어느 위치에서든 쏙쏙 공을 꽂아 넣는 커리의 3점 슛을 보기 위해 NBA를 찾기 시작했다.
게다가 골든스테이트가 펼치는 특유의 시원시원한 공격도 NBA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골든스테이트는 10년 전 피닉스 선스가 이루지 못한 숙원 사업을 이뤄냈다. 특급 포인트가드 스티브 내시가 이끌던 피닉스는 경기마다 100점, 110점을 가볍게 넘으며 인기를 끌었다. 틈만 나면 돌파하고 3점 슛을 던져댔다. 100점만 넘어도 고맙던, ‘그래도 아직은 농구하려면 센터가 있어야 돼’라는 인식이 강한 시대의 일이었다. ‘허동택 트리오’로 기아 왕조를 세운 최인선 감독은 “피닉스가 우승하면 내 농구 철학이 바뀌게 된다”라며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그때 피닉스는 자기 색깔로 우승하지 못했다. 그런데 골든스테이트는 정말로 우승하면서 많은 이들의 농구 철학을 바꿔놨다. “점프 슛으로는 절대 우승 못해(정통 센터 없이는 우승 못해)”라고 못 박은 찰스 바클리도 공개 망신을 당했다.
골든스테이트를 중심으로 NBA의 경기 페이스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다. 요즘처럼 농구 특유의 매력이 잘 살아난 시대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많은 팀이 전통적 농구에서 벗어나 빠르고 시원한 농구를 택하고 있다. 2014~2015년 시즌에 평균 100점을 넘은 팀은 15팀이고, 2015~2016년 시즌에는 23팀이다. 2016~2017년 시즌에도 점수는 계속 오를 것이다. ‘절대 강자’를 중심으로 펼치는 라이벌들의 도전기도 볼거리다. 르브론 제임스는 2015년에 빼앗긴 타이틀을 올해 7차전 격전 끝에 되찾았다. 한때 친정을 배신한 스타가 고향으로 돌아와 우승을 이끄는 스토리라인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2016년 여름에는 케빈 듀랜트가 르브론의 입장이 됐다. 우승 후보로 대접받던 소속팀을 버리고 골든스테이트에 합류했기 때문인데, 환호든 야유든 사람들은 듀랜트를 향해 시간과 돈을 쓰게 될 것이다. 기술적으로 경지에 오른 농구 스타들의 경쟁, 그리고 그 경쟁이 써 내려가는 시나리오는 그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또 선수의 연봉이 오를수록 농구를 하겠다는 선수도 늘어난다. 여전히 빈부 격차가 심한 미국 흑인 사회에서 인생역전을 노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카드가 바로 프로 농구 선수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스토리라인을 생산해 지금 시대가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이를 공급한 NBA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4대 프로 스포츠 중 가장 먼저 ‘홈페이지’ 시대를 연 NBA는 SNS와 멀티미디어를 가장 잘 활용하는 단체로 우뚝 섰다. NBA TV부터 리그 패스까지, 10대부터 노년층까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콘텐츠에 접근하도록 만들어 자신들의 상품을 정상에 올려놨다. 그 어떤 기획사보다도 자원이 많고, 어떻게 그 자원을 포장해 스타로 만들지 누구보다 잘 아는 리그. 그것이 바로 NBA의 부활을 이끈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에디터 | 이기원 (lkw@noblesse.com)
글 | 손대범(<점프볼> 편집장) 사진 |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