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 스님에게 배운 한식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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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28

선재 스님에게 배운 한식

사찰음식의 대가는 음식에도 통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찰 음식의 대가로 알려진 선재 스님이 한식진흥원 이사장에 부임한 지 1년 반이 훌쩍 지났다. 2018년 4월에 부임해 임기의 반이 지나는 동안 선재 스님은 한식진흥원에서 ‘건강한 食 서포터즈’, ‘청년 한식당 신메뉴 프로모션 공모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연계 한식요리 콘테스트’ 등을 통해 한식의 장벽을 낮추고 우리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데 먹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왔다. 지난 12월 6일에는 문화재청의 ‘문화유산보호 유공자 포상’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해 한식과 사찰 음식을 통한 우리 음식 문화를 활성화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1980년에 출가해 여러 선방에서 정진하며 화성 신흥사 청소년 수련원에서 수행 지도를 한 선재 스님은 1994년 중앙승가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며 ‘사찰음식문화연구’라는 사찰 음식에 대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해 불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학교 기숙사에서 논문을 준비하며 불규칙한 끼니와 인스턴트식품 섭취, 스트레스 등으로 간경화를 앓은 선재 스님은 당시 시한부 선고까지 받았다. 그 후 김치와 장을 기본으로 한 밥상으로 병을 치유한 뒤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한식과 사찰 음식을 전하고 있다.
사실 전통 음식을 알리는 데 앞장선 수고를 인정받아 훈장까지 받았지만, 사찰 음식의 대가 선재 스님이 한식진흥원 이사장에 임명되었을 때 주변 반응은 시큰둥했다. 국회와 청와대에, 농림부에 탄원서를 낸 사람도 있었다. 1700년 동안 우리 역사와 삶에 존재한 불교라는 위치를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사찰 음식 전문가인 선재 스님의 이사장 취임을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짙었다. “스님이 한식 요리법을 얼마나 잘 알겠느냐”, “한식을 어떻게 진흥시킬 수 있겠느냐” 같은 공격도 있었다. 1년 동안 그 자리가 공석이었던 터라 유독 더 시끄러웠다.
“사찰에서 금하는 육류와 해산물 그리고 파, 마늘, 부추 같은 재료가 한식에선 기본으로 쓰다 보니 그런 염려가 있다는 점은 공감합니다. 그러나 사찰 음식이야말로 한식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식재료의 성질을 존중하는 조리법은 사찰 음식이나 한식이나 결국 같으니까요. 당연히 한식진흥원에서 하는 사업이나 프로젝트 또한 재료에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식재료나 요리법에 열린 태도로 접근하고요.”
한식진흥원에 출근해 처음 느낀 건 우리 먹거리의 중요성과 가치에 비해 한식진흥원의 위치가 저평가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사장 자리는 비상근직이고 책임자로서 행할 수 있는 힘과 대우는 미흡한 반면, 할 일은 산더미였다. “매일 출근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처리할 과제가 많았어요. 임기 동안 ‘한식진흥원을 활성화해 우리 한식을 생활에 더 가까이 스며들게 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건강해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선재 스님은 외주로 진행하던 한식진흥원의 여러 강의를 내부에서 하기로 했다. 직접 강의를 하고 직원들 교육도 손수 챙겼다. 유행처럼 부르짖는 한식의 세계화도 중요하지만, 국내에서 먼저 한식을 제대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식진흥원이 전통 음식의 지혜를 지키고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할 수 있도록 창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먹을 것이 부족한 시대를 살았어요. 그래서 1970~1980년대에는 돈 버는 데만 급급했죠. 그런데 어느 정도 돈을 벌고 나니 명예가 필요했고,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 가서 취직하는 것이 최고 명예고 행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50~60년을 살다 보니 부모가 아이들에게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무엇을 먹어야 하고 각각의 음식에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지 알려줄 시간이 없었겠죠. 주부들조차 한국 고유의 김치와 술, 장독대의 장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건강을 주고, 그것이 얼마나 끈끈한 문화를 이루는지, 우리의 정서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신경 쓰지 않거든요. 대부분이 그렇죠.”
우리가 일하는 것은 삶을 건강하게 영위하기 위해서인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다. 일에 매여 인스턴트식품으로 식사를 때우기 일쑤고,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재료가 마트를 가득 채우고 있다. 재배는 유기농으로 했을지 몰라도 조리 과정을 들여다보면 친환경이란 말이 무색하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여전히 적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까지 약 100년간 우리 고유의 음식 역사가 사라졌어요. 우리 전통 술은 일본으로 건너가 사케가, 김치는 기무치가 됐죠.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식의 가치를 정립해야 하고 음식 문화를 지키는 데 힘써야 해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1 2019 한-아세안 발효음식문화포럼에서 인사말을 하는 한식진흥원 이사장 선재 스님.
2 한식 요리를 체험하는 외국인들.

음식에도 통역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때 용주사라는 사찰로 수련회를 갔을 때, 그곳에서 정무 큰 스님의 ‘부모은중경’ 법문을 듣고 출가를 결심한 선재 스님은 행자 시절 스님들의 공양을 준비하는 일을 도왔다. 당시 은사 스님은 불교의 미래가 어린이에게 있다고 보고 사찰에 ‘어린이여름불교학교’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불교를 받아들이게 했다. “한번은 평소 행동이 거칠고 산만한 아이들이 수련회에 참석했는데, 식사를 죄다 남겨서 물어보니 평소 인스턴트식품을 즐겨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 수련회 기간 동안 아이들에게 절에서 직접 만든 음식만 먹였는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어요. 아이들의 행동이 순해지고 차분해졌죠”
이후 선재 스님은 직접 공양을 맡으면서 음식이 사람의 성품과 지혜, 깨달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확인하고 중앙승가대학교 졸업 논문으로 사찰 음식 문헌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학교와 기관에서는 아이들의 수련 교육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교육 수업, 스님들의 공양에 논문 연구까지 진행하며 본의 아니게 끼니를 거르고 인스턴트식품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느 날 유난히 기운이 없고 향 냄새도 거북할 정도로 허약해진 몸을 이끌고 간 병원에서 간경화라는 진단을, 그것도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출가한 뒤 사찰 음식을 먹으며 아이들이 변화되는 것을 확인하면서부터 음식 문화를 알리는 게 꿈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시한부 선고를 받았죠. 하루아침에 환자가 된 저로서는 단 하나의 기도밖에 할 수 없었어요. ‘어머니보다 먼저 죽는 불효를 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세 번은 쉬어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간이 많이 상한 탓에 얼굴은 까매졌고, 병원에선 이미 치료 시기를 놓쳐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와 오빠를 괴롭힌 간암의 유전자에서 결국 스님도 자유롭지 못했다. 밥과 김치 외에 다른 음식을 먹지 못하는 스님에게 의사가 권한 건 당근 주스. 그마저도 소화가 되지 않아 주스를 마신 뒤에는 쓰러져 자는 것이 일상이 됐다. “절에서 나와 시골에 집을 얻어 살았는데, 은사 스님이 매일 아침 전화로 제 생사를 확인하셨어요. 당근 주스도 소화시키지 못할 정도라고 말씀드리니 김칫국물과 같이 마셔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속이 편안했어요. 그렇게 1년간 김치와 장만 먹고 살았죠. 그때 우리 전통 발효 음식의 효과를 몸소 확인했어요.”
투병 기간 중 식단은 김치와 전통장, 나물이 전부였다. 그 외에는 사탕 한 알, 음료수 한 모금도 먹지 않았다. 그렇게 음식과 명상, 염불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를 1년. 놀랍게도 다시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딱딱하게 굳은 간에 항체가 생겼다”며 1000명 중 한 명도 안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 “저는 음식으로 몸이 치유됐어요. 아이들을 교육하면서 음식으로 아토피나 자폐증 같은 증세가 완화된 경우도 많이 봤죠. 성품이 바뀐 사례는 부지기수고요.”
이처럼 한식, 그중에서도 발효 음식의 역할은 매우 크다. “우리 몸은 생명입니다. 식재료도 생명이에요. 남의 생명. 그게 내 몸에 들어올 때 잘 맞을 수도 있지만 몸이 거부할 수도 있어요. 외국인을 만났을 때 각자 자기 언어로 말하면 말이 안 통하는 것처럼요. 그때 통역이 필요하듯 내 몸과 식재료가 만날 때 중간 역할이 필요한데, 그것을 조화롭게 해주는 것이 발효예요. 그것이 우리 한식에는 많아요. 한식 조리법의 지혜로움이죠.”




한식문화관에 마련된 ‘Eating Zone’.

이제 곧 진달래 화전을 먹을 때
생활에서 가까이할 때 비로소 건강해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한식. 몸과 마음 그리고 환경을 살리는 한식의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 명맥을 지키려면 우리 음식 문화의 스토리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명절과 절기 음식. 그러나 지난해 성탄절에 묻혀 지나간 동지도, 곧 다가올 대한과 입춘도 요즘 사람에겐 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늘 얻어먹던 동지팥죽도 직접 끓여 먹으려면 엄두가 나지 않는 데다 “요즘 누가 팥죽을 먹느냐”며 절기 음식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예스러운 것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에 전통 음식은 더욱더 설 자리가 없다. 지난 12월 22일 동지에도 지인들의 SNS엔 연말 파티 음식 사진뿐, 검붉은 동지팥죽 사진은 어디서도 보기 힘들었다. “입동은 겨울의 시작을, 동지는 ‘추운’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예요. 붉은 팥은 양기를 보충해줍니다. 추운 겨울이 시작될 때 양기 음식을 먹어야 몸속 차가운 기운이 빠져나가요. 부처님 경전을 보면 부처님 몸에 냉기가 들었을 때 드신 것도 팥죽이에요.” 추운 겨울엔 대부분 면역력이 떨어진다. 이때 팥죽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고 온도가 올라가면서 면역력이 생긴다. 동짓날 팥죽을 먹어야 액땜한다는 것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할머니들이 손주의 백일이나 생일에 만들어주는 수수팥떡도 어른들 말마따나 ‘넘어지지 말라’고 먹이는 음식이다. “수수는 뼈를 튼튼하게 하는 곡식이에요. 그래서 뼈가 형성되는 시기인 초등학생까지는 수수팥떡을 주는 거죠. 반대로, 나이가 들어도 뼈에 영양이 필요해요. 그런데 떡은 소화가 잘되지 않으니 수수로 엿을 만들어 고추장을 담가 먹어요. 그래서 노스님이 있는 절에는 늘 수수고추장이 있어요.”
선재 스님은 올봄엔 꼭 진달래 화전을 부쳐 먹을 것을 권한다. 봄이 되면 겨울에 얼어붙은 땅이 녹으면서 흙먼지가 날린다. 그래서 환절기엔 감기나 기관지염 환자가 유난히 많은데, 기관지에 좋은 진달래가 이를 치료해준다는 것. “진달래는 약이에요. 약은 독과 통하기 때문에 진달래 꽃술은 반드시 빼야 해요. 그래도 여전히 독이 남아 있죠. 그걸 찹쌀로 만든 전에 갖다 붙이면 중화됩니다. 또 찹쌀의 진기가 폐를 촉촉하게 해주면서 약효를 더해주는 거예요.” 이렇듯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의 지혜가 담긴 한식에는 예방의학, 치료의학의 가능성도 내재되어 있다.
선재 스님의 한식진흥원 이사장 임기는 이제 1년 조금 넘게 남았다. 나랏일의 특성상 일의 진행도 빠르지 않고 이사장의 권한도 한정되어 있지만 남은 기간 선재 스님은 사람들이 한식에 긍지를 갖고 자랑스러워하도록, 한식 조리법의 지혜를 나누는 데 더욱 정진할 것이다. 우리에겐 뚜렷한 사계절, 조상의 지혜가 담긴 24절기, 가히 세계적이라 할 수 있는 김치와 장 같은 발효 음식이 있다. 이처럼 건강과 지혜, 행복이 깃든 한식의 미래를 위해 살을 붙이고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하는 선재 스님은 다음 행선지로 향하며 말했다. “존경받는 스님보다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수행자가 되고 싶어요. 제가 이렇게 한식 문화를 전파하는 것도 결국 수행자로서 스스로 욕심을 내려놓기 위해서죠.”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김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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