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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7

환원, 가장 멋진 소장

예술품이 주는 마음의 감동, 록펠러 부부는 이를 독점하지 않았다. 작품 수집을 공익사업으로 생각한 이들. 세상을 떠난 후에도 생전의 약속을 지켜 돈과 물질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한 록펠러가(家)의 정신을 잇는다.

1 록펠러의 맨해튼 저택 식당에 놓여 있는 중국 도자기들.
2 청나라 강희제 때 제작한 불상.

지난 5월 8일부터 10일까지 열린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사람들의 이목은 두말할 나위 없이 데이비드와 페기 록펠러 부부의 소장품에 쏠렸다. 록펠러 가문이 심혈을 기울인 수집품이 베일을 벗었기 때문.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소녀’, 마티스의 ‘목련 옆에 누워 있는 오달리스크’, 모네의 ‘활짝 핀 수련’ 등 다수의 명화, 귀한 중국 도자기와 불상 그리고 미국 작가 작품 등 록펠러 가문이 100년에 걸쳐 모은 작품을 대거 출품했다. 약 5300억 원으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선 경매다. 이 경매가 시선을 끈 건 진귀한 작품과 그 속에 담긴 록펠러 부부의 뛰어난 예술적 품격 때문만은 아니다. 작품 수집을 ‘자선사업’으로 바라본 록펠러 가문의 철학이 감동의 근원이다. 크리스티 미주 지역 회장 마크 포터(Marc Porter)는 이번 경매로 얻은 수익 대부분을 문화, 교육, 의료 그리고 환경보호 등 공익 목적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록펠러 가문이 행하는 특별한 사회 환원 방식이다.

딱정벌레 한 마리
1922년의 어느 날, 당시 일곱 살 꼬마였던 데이비드 록펠러는 우연히 딱정벌레 한 마리를 발견한다. 이 딱정벌레는 그의 첫 번째 소장품이자 평생 이어온 수집의 시작점이 됐다. 그의 수집벽은 타고난 천성이다. 그 자신도 “컬렉팅은 본능 같다. 어쩌면 유전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으니. 여기서 유전은 어머니 애비 앨드리치 록펠러의 영향을 뜻한다. 그의 어머니는 1920년대부터 현대미술 컬렉팅을 시작했고,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뉴욕 현대미술관(이하 MoMA) 건립에 앞장선 현대미술의 후견인이다. 사실 젊은 시절 데이비드가 예술품을 바라본 태도는 아버지와 비슷했다. 크리스티 장식미술 파트 전문가 베키 맥과이어(Becky MacGuire)에 따르면 데이비드는 예술품 수집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모친과 함께 골동품 상점에서 중국 조각품을 구입하곤 했지만 현대미술 구매에는 신중을 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MoMA 초대 관장 앨프리드 바(Alfred H. Barr, Jr.)와 그의 아내 마거릿 스콜라리 바(Margaret Scolari Barr)와 교류하면서 180도 달라졌다. 데이비드에게 이들은 현대미술 안내자였다. 덕분에 데이비드는 프랑스 인상파 작품에 관심을 가졌고, 점차 현대미술로 시야를 넓혔다. 인상파 작품은 록펠러 부부가 완벽한 소장 체계를 갖춘 후에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번 경매에 나온 모네의 ‘활짝 핀 수련’, 마네의 ‘라일락과 장미’가 대표적 예시다.




3 파블로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소녀’. 이번 경매에서 1241억 원에 낙찰됐다.
4 경매 추정가 74억~106억 원이 책정된 에두아르 마네의 정물화 ‘라일락과 장미’.
5 데이비드와 페기 록펠러.
6 나폴레옹 1세를 위해 제작한 세브르 도자기 마를리 루주(Marly Rouge) 시리즈.


격식에 구애받지 않은 록펠러 부부
데이비드와 페기 록펠러가 본격적으로 작품 수집 활동을 펼친 1950~1960년대. 둘의 예술적 감성이 풍부해지면서 컬렉션도 대담해졌다.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인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소녀’와 마티스의 ‘목련 옆에 누워 있는 오달리스크’가 이들의 수중에 들어간 것도 이때다. ‘꽃바구니를 든 소녀’는 피카소의 장밋빛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높은 예술성이 특징이다. 이에 크리스티 인상파.현대미술 부회장 코너 조던(Conor Jordan)은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록펠러의 부모님은 피카소의 작품에 의혹과 배타적 시선을 보냈다. 그렇기에 ‘꽃바구니를 든 소녀’ 소장은 록펠러 부부의 심미적 관점이 획기적으로 변했음을 의미한다. 즉 록펠러 가문의 컬렉팅 역사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라고 밝혔다.
디자인적 선과 열정적 색채로 몽환적 세계를 창조한 마티스의 ‘목련 옆에 누워 있는 오달리스크’. 초월적 경지가 엿보이는 이 그림은 아들 데이비드 록펠러 주니어가 가장 애착을 보인 작품이다. 그는 여기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음을 고백했다. “작품은 시골 별장의 창가 쪽에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신문을 읽으며 마티스 그림을 바라봤다. 이렇게 아버지는 예술의 아름다움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예술이 뛰어난 미를 갖춰야 한다는 게 록펠러 부부의 생각이었지만 구상 작품만 모은 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점차 추상미술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소장품 영역을 확장했다.
록펠러 부부는 중국 예술로도 컬렉팅 범위를 넓혀갔다. 베이징협화의학원 병원 건립을 비롯해 중국 내에 자선기관을 세우는 등 자선사업을 한 것이 중국 예술품 수집의 계기. 덕분에 이번 경매에서 강희제가 청나라 황제로 있을 당시 제작한 불상과 19세기 수출용 중국 도자기 찬기 세트를 볼 수 있었다.

나눌수록 커지는 사랑
록펠러 가문은 예술품을 생활공간 곳곳에 두고 일상을 함께하는 전통을 오랫동안 지켜왔다. 그중 전통적 사고에 얽매이지 않은 록펠러 부부는 친지와 친구들이 깜짝 놀랄 만한 일을 하곤 했다. 르누아르의 누드화 ‘거울에 비친 가브리엘’을 눈에 띄는 거실 벽에 장식한 것. 이는 보수적인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린 파격적 설치였다. 부부는 집을 엄숙한 미술관처럼 만드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미학을 사랑한 페기 록펠러는 늘 작품 하나하나를 집 안의 따뜻한 분위기와 어우러지게 두곤 했다고. 부부의 아들 또한 이러한 방식에 공감했다. 데이비드 록펠러 주니어와 그의 아내 수전 록펠러도 부모님의 철학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컬렉팅 기준을 만들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작품 구매보다는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에 가서 직접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선호한다. 다소 독특한 수집 방식에 대한 이유를 물으니 “집 안에 작품을 돋보이게 할 적합한 공간이 있을 때 그것을 구입한다. 이는 부모님에게 배운 것이다. 언제나 물화(物化)된 사물에 지나치게 연연하면 삶에 대한 이해를 잃게 된다고 말씀했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가족에 대한 사랑, 자연과 환경, 다음 세대의 미래라는 걸 가르쳐주었다”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2010년, 록펠러 부부는 부호들의 재산 사회 환원 서약인 ‘더 기빙 플레지’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사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이보다 20년 앞서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러 자선사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예술품 경매를 통한 사회 환원 계획을 세워왔다. 데이비드 록펠러 주니어는 이런 부모님의 결정에 놀라지 않았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누린다는 것은 더욱 특별한 책임을 동반한다’는 정신을 따르겠다는게 그의 입장. 데이비드 록펠러 주니어는 언젠가 소장품을 떠나보내야 하고, 이는 곧 가문이 가장 중요시하는 공익사업의 실천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또 부모님의 가르침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 “예술품과 일생을 같이한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누리는 데 힘써야 한다. 어떠한 작품도 진정한 네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잠시 보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데이비드와 페기 록펠러 부부의 철학 말이다. 

 

에디터 정순영(jsy@noblesse.com)
쑤신(Susie Su)   사진 제공 크리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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