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다채로운 뮤지엄 다이닝의 세계
작품 감상의 여운을 좀 더 오래 누리고 싶다면? 예술 공간 속 독창적인 다이닝 플레이스를 방문해보자. 예술 작품을 오마주한 디저트부터 진귀한 컬렉션에 둘러싸인 채 즐기는 식사까지, 그야말로 예술적인 하루를 만끽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Marcel
뉴욕 매디슨 애비뉴의 브로이어 빌딩 아래층에 가면 1960년대 어퍼이스트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의 레스토랑이 모습을 드러낸다.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의 이름을 따온 레스토랑 ‘마르셀’은 소더비 뉴욕 본사에 위치한다. 파리 출신 셰프 마리-오드 로즈(Marie-Aude Rose)의 주도 아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클래식 프랑스 요리를 선보인다. 오리 콩피와 대구 그라탱, 2~4인이 함께 즐기는 코트 드 뵈프, 구운 파인애플과 강황·생강 크림을 곁들인 랍스터, 프렌치 햄과 콩테 치즈를 올린 사워도 타르틴 등을 맛볼 수 있다. 공간 디자인은 뉴욕 기반의 세계적 디자인 스튜디오 로먼 앤 윌리엄스가 맡았다. 짙은 월넛 패널에 촛불이 일렁이는 다이닝 룸에서는 소더비에서 판매하는 미술 작품과 디자인 오브제를 주기적으로 교체해 전시한다. 마음에 드는 작품은 실제로 구매할 수도 있다. 여기에 경매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던 소더비 와인 셀러의 희귀 빈티지까지 이용하면 식사는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해진다. 레스토랑과 함께 운영하는 라 메르스리 파티스리(La Mercerie Patisserie)에서는 글레이즈드 마들렌, 바삭한 페이스트리 안에 커스터드를 채운 플랑 등 감각적인 프랑스식 페이스트리를 내놓는다. 마르셀 브로이어의 건축과 세계적 수준의 미술 작품, 프랑스 요리가 한데 어우러진 이곳에서의 식사는 한 편의 예술 작품 그 자체다.
Elise
하이 뮤지엄 오브 아트,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얼라이언스 시어터가 한자리에 모인 애틀랜타의 문화 예술 캠퍼스 우드러프 아트 센터. 이곳에 위치한 ‘엘리스’는 프랑스 요리를 이탈리아 감각으로 풀어내는 셰프 크레이그 리처즈(Craig Richards)가 이끄는 레스토랑이다. 대표 메뉴인 카초 에 페페 리소토는 2년 숙성 파르미자노레자노와 페코리노로마노, 다섯 가지 후추로 로마의 고전적 파스타를 리소토로 재해석한 요리다. 토끼 라구 탈리아텔레와 참치 타르타르, 훈연 굴도 별미다. 인테리어는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기존 건물을 스미스 헤인스 스튜디오가 새롭게 단장했다. 밝은 목재와 화이트 톤에 붉은색과 녹색을 더하고, 애틀랜타 작가 토미 테일러와 소냐 용 제임스, 크리시 리드의 작품을 곳곳에 배치했다. 프랑스 생산자를 중심으로 엄선한 100여 종의 와인과 창의적 칵테일도 함께 맛볼 수 있다. 음악과 공연엔 술과 미식이 빠질 수 없는 법. 우드러프 아트 센터를 방문한다면 공연과 함께 엘리스에서 식사도 즐겨보길 추천한다.
Oberon
‘오베론’은 뉴 뮤지엄 신관에 새로 오픈한 레스토랑이다. OMA가 설계한 감각적인 공간에 다양한 예술가들의 손길이 닿아 인테리어부터 남다르다. 이언 쳉의 인터랙티브 설치, 김민재의 테이블과 조명, 메리 핑이 디자인한 직원 유니폼, 그리고 식사 막바지에 제공하는 초콜릿 패키지 디자인에는 로리 앤더슨이 참여했다. 공동 총괄 셰프를 맡은 줄리아 셔먼(Julia Sherman)은 오랫동안 음식과 예술의 관계를 탐구해온 시각예술가로, 2014년 MoMA PS1에서 샐러드 가든을 선보이기도 했다. 오베론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감상한 후 편안히 즐길 수 있는 한 끼에 집중한다. 메뉴는 허드슨밸리 지역의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모던 아메리칸 요리가 중심이다. 직접 만든 파스타와 담백하게 조리한 생선, 여럿이 나눠 먹기 좋은 샐러드부터 블랙배스 크루도, 데빌드 에그, 로스트 캐비지, 샹트렐 버섯과 완두콩 파스타, 무화과잎을 입힌 치킨 등을 맛볼 수 있다. 건축과 디자인, 음식이 각자의 언어로 조화롭게 말하는 오베론. 현시점 가장 현대적이고 캐주얼한 아트 다이닝 경험이 이곳에서 기다린다.
Westmoreland
뉴욕 5번가의 프릭 저택을 새롭게 단장한 공간에 들어선 프릭 컬렉션의 첫 카페. ‘웨스트모얼랜드’라는 이름은 프릭 가문이 1911년부터 사용한 전용 열차에서 가져왔다. 테마는 지역 생산자의 제철 식재료를 중심으로 한 컨템퍼러리 아메리칸 퀴진. 메뉴는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며, 프릭 가문에서 즐긴 음식과 즐겨 사용한 식재료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클래식 시저 샐러드와 참치 니수아즈, 클럽 샌드위치, 치킨 밀라네제처럼 친숙한 요리에 섬세한 조리법을 더하며, 토마토 탈리아텔레와 포칭한 송어, 제철 채소를 활용한 리소토도 맛볼 수 있다. 디저트로는 엘더플라워 크렘 파티시에를 곁들인 딸기 타르트와 다크·화이트 초콜릿 무스 등을 제공하고, 티 샌드위치와 직접 만든 페이스트리로 구성한 애프터눈 티도 이용 가능하다. 인테리어는 헨리 클레이 프릭이 살던 옛 저택과 새롭게 정비한 정원에서 영감을 얻어 짙은 녹색과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꾸몄다. 여기에 프릭 컬렉션의 소장품에서 영감을 얻은 대런 워터스턴의 벽화와 장식이 곳곳에 어우러지면서 한층 깊은 예술적 풍경을 완성한다.
O Anatolian Café
로테르담에 위치한 페닉스는 ‘이주’를 주제로 한 역사박물관으로 사랑과 이별, 고향과 소속감, 정체성과 새로운 삶에 관한 이야기를 동시대 미술과 사진, 개인의 기억을 통해 풀어낸다. 1923년에 지은 옛 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는데, 이곳은 과거 로테르담 항구에서 사람들이 미국과 캐나다 등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던 장소였다. 페닉스에서는 음식 역시 이주의 이야기를 전하는 하나의 매체다. ‘오 아나톨리안 카페’는 이스탄불의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네오로칼(Neolokal)을 이끈 셰프 막수트 아슈카르(Maksut Aşkar)가 주방을 책임진다. ‘O’는 터키어로 ‘그’, ‘그녀’, ‘그것’, ‘저것’을 가리키는 짧고 흔한 단어로,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되지 않길 바라는 의지를 드러내는 네이밍이다. 치즈와 올리브, 꿀, 허브를 곁들인 아침 식사부터 렌틸 수프와 만티, 메제와 샌드위치, 바즐라마와 피데까지. 아나톨리아 지역의 음식 문화에 주목해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가정식과 길거리 음식을 재해석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색다른 미술, 색다른 미식을 원한다면 이곳에 방문할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Yozora
퐁피두센터 메츠에 자리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요조라’. 일본어로 ‘밤하늘’을 뜻하는 이름처럼 시적인 분위기가 넘실댄다. 미쉐린 1스타 셰프 샤를 쿨롱보(Charles Coulombeau)가 이끄는 이곳은 약 20석 규모로, 오마카세에서 영감을 받아 프랑스와 일본의 식문화를 한 코스로 풀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 북동부 로렌 지역의 제철 식재료와 일본의 감각이 교차하는 12코스 또는 16코스 테이스팅 메뉴를 선보인다. 무엇보다 특별한 점은 미술관 전시와 연계한 디저트다. 그간 카타리나 그로세, 피에르 술라주, 쿠사마 야요이,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의 작품을 모티브 삼아 작품의 형태와 색, 질감을 차용한 흥미로운 비주얼의 디저트를 공개해왔다. 작년에는 카텔란의 ‘Comedian’에서 영감을 받아 캐러멜라이즈한 바나나를 활용한 트롱프뢰유 디저트를 만들었고, 올해는 루이즈 니벨슨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디저트를 선보인다. 전시장에서 마주한 작품이 식탁 위 한입 디저트로 다시 나타나기까지. 세상에서 가장 긴 전시 경험이 이곳에서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