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s House | Noblesse

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The Artist’s House

ARTNOW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구글 검색과 ai 답변에서
노블레스 닷컴을 우선적으로 보여줍니다.

작품이 예술가가 만들어낸 세계라면 그가 머문 공간에는 그 세상을 가능하게 한 시간이 있다. 매일 바라본 풍경과 손이 자주 닿은 물건, 곳곳에 남은 작업 흔적까지. 집과 작업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품만으로는 알 수 없던 한 사람의 취향과 예술이 탄생한 순간 순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윤형근, 도널드 저드, 조지아 오키프 등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오랜 시간 머물며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간 곳. 시간이 멈춘 듯 여전히 그들의 온기를 품고 있는 공간을 소개한다.

Courtesy of the Estate of Yun Hyong-keun & PKM Gallery. © Sun Namgoong.
Courtesy of the Estate of Yun Hyong-keun & PKM Gallery. © Sun Namgoong.

윤형근의 집

오는 9월,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 윤형근의 집이자 작업실이 대중에게 공개된다. 작품만큼 삶의 태도와 취향도 뚜렷했던 그는 1983년 가족과 함께 머물며 그림 그릴 보금자리를 구상했고, 동생이자 건축가인 윤도근이 설계를 맡아 이를 구체화했다. 주거와 창작의 기능은 물론 세부 디자인까지 작가의 생각을 반영한 덕분에 한국적 정서와 서구 모더니즘의 미감이 공존하는 독특한 건축이 완성되었다. 윤형근은 이곳에서 작고할 때까지 20여 년간 작업을 이어갔고, 최근 유족의 뜻에 따라 복원을 마친 내부에는 그 시간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손때 묻은 고가구와 도자기, 즐겨 읽던 서적은 생전의 배치에 가깝게 자리를 지키고 작품과 기록물, 출판 자료도 생활의 흔적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어느 방을 지나도 수집가이자 생활인이며 화가인 윤형근의 면모가 차례로 드러나 그의 예술 세계가 형성된 배경을 읽을 수 있다. 10월까지 공개한 뒤 2027년 봄 재개관하며, 개관을 기념해 PKM갤러리에서는 <윤형근을 다시 상상하다>전이 열린다.

Donald Judd Art © Judd Foundation / 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
Donald Judd Art © Judd Foundation / 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

101 스프링 스트리트

아직 오늘날의 화려한 소호가 만들어지기 전 도널드 저드는 스프링 스트리트 모퉁이에 있는 5층짜리 주철 건물을 사들였다. 작품을 제작하고 보관하는 작업실을 넘어 가족이 생활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과 가구를 가장 이상적인 방식으로 배치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당시 공장과 창고가 즐비하던 소호에서 건물 전체를 한 작가의 생활과 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는 일은 그 자체로 실험에 가까웠다. 저드는 기존 구조를 가능한 한 남겨둔 채 층마다 서로 다른 기능을 부여하고, 자신의 작품은 물론 댄 플래빈을 비롯한 동료 작가들의 작품과 알바르 알토, 헤릿 릿펠트 등의 가구를 세심하게 배치했다. 이렇게 한번 공간에 들인 작품은 쉽게 옮기지 않았다. 작품을 어떤 높이에서 보고, 주변에 무엇을 두어 건축과 어떤 관계를 맺게 할 것인지까지 예술의 일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훗날 그의 작업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 된 ‘영구 설치(permanent installation)’가 이곳에서 시작됐다. 저드 재단은 건축에 남은 그의 개입과 작품의 위치를 최대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춰 공간을 복원했다. 저드가 배치한 작품과 가구가 그대로 머무는 공간을 걷다 보면 그에게 ‘어디에 놓이는가’가 왜 그토록 중요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Successió Miró 2025. © Juan Gavilán.

더 세르트 스튜디오

호안 미로는 오래전부터 한곳에 정착해 마음껏 작업할 수 있는 큰 스튜디오를 꿈꿨다. 그 바람이 현실이 된 것은 63세가 되던 1956년, 마요르카에 자리를 잡으면서다. 설계를 맡은 이는 오랜 친구인 모더니즘 건축가 주제프 류이스 세르트다. 미로는 작업 공간과 작품 보관 공간을 나누고 대형 캔버스를 충분히 다룰 수 있게 해달라는 등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전했다. 세르트는 이를 바탕으로 작업 중인 그림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층고의 널찍한 갤러리를 마련하고 자연광이 안으로 부드럽게 스며들도록 빛의 방향과 양까지 세심하게 조절했다. 그렇게 완성한 공간은 미로의 손을 거쳐 또 다른 표정을 갖게 됐다. 벽에는 엽서와 신문 스크랩, 드로잉이 빼곡히 붙었고, 돌과 조개, 민속공예품처럼 평소 모아온 물건이 물감과 붓, 캔버스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미로는 이곳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많은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했다. 오늘날에도 작업 도구와 캔버스, 그가 곁에 두고 바라본 수많은 오브제가 당시 모습에 가깝게 보존돼 있어 완성된 작품만으로는 알 수 없던 미로의 구상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아틀리에 데 로브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의 정물화에서 수없이 본 항아리와 병, 천이 캔버스 밖에 존재한다. 엑상프로방스 북쪽 로브 언덕에 자리한 ‘아틀리에 데 로브’에는 그가 그림의 모델로 삼은 사물부터 팔레트와 작업 도구, 외투와 가방까지 생전에 사용한 물건이 여전히 남아 있다. 마치 완성된 그림을 거꾸로 따라가 화가의 현실에 도착한 듯한 곳이다. 생의 마지막 몇 해를 이곳에서 보낸 세잔은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빛 아래 주변 풍경과 곁에 둔 사물을 바라보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 시간이 고스란히 남은 아틀리에는 서거 120주기를 맞은 2026년 대대적 복원을 거쳐 지난 7월 다시 문을 열었다. 260여 점의 유품을 복원하고 보존 환경을 개선했으며, 관람객을 위한 공간으로 쓰이던 1층도 당시 모습에 가깝게 되돌렸다. 한 세기가 훌쩍 흐른 지금, 그림 속에 머물던 세잔의 시선이 다시 현실의 풍경과 이어지는 곳이다.

Photo by Krysta Jabczenski. © Georgia O’Keeffe Museum.
Photo by Krysta Jabczenski. © Georgia O’Keeffe Museum.

조지아 오키프 홈 앤 스튜디오

뉴멕시코의 황량한 사막과 뼈, 꽃을 자신만의 강렬한 이미지로 바꿔놓은 조지아 오키프에게 집은 또 하나의 캔버스였다. 아비키우에서 폐허에 가까운 주택을 발견한 그는 무엇보다 안뜰의 기다란 흙벽과 그 가운데에 놓인 문에 마음을 빼앗겼다. 결국 집을 사들여 친구 마리아 샤보와 함께 수년에 걸쳐 복원했고, 1949년부터 이곳을 주요 생활 거점으로 삼았다. 지역 전통의 흙벽과 나무 천장은 살리면서 넓은 창으로 자연광을 끌어들이고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를 배치해 자신에게 필요한 집을 만들었다. 돌과 동물의 뼈 등 수집한 물건이 집 안 곳곳에 놓였고, 정원에서는 직접 채소와 과일을 길렀다. 오늘날 이곳을 거닐다 보면 목화나무와 안뜰의 검은 문처럼 익숙한 작품 속 이미지가 특별한 영감의 원천이기에 앞서 그가 날마다 마주한 삶의 풍경이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사진 제공 플랫폼 건축사사무소, 종로구. © 홍재승, glimworkers.
사진 제공 플랫폼 건축사사무소, 종로구. © 홍재승, glimworkers.

김창열 화가의 집

캔버스 위에 실제로 맺힌 듯한 물방울을 반복해 그리며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구축한 김창열. 그가 2021년 세상을 떠나기 전 30여 년간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작업한 평창동 자택이 지난 5월 ‘종로구립 김창열 화가의 집’으로 문을 열었다. 생전 자신의 작업 공간을 시민과 나누고 싶어 한 작가의 뜻을 잇기 위해 유족과 종로구가 협약을 맺고 오랜 삶의 터전을 공공 문화시설로 새롭게 조성한 것이다. 리모델링은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홍재승과 최수연이 맡아 사적 주택의 흔적을 지우기보다 삶과 창작의 시간이 함께 읽히도록 공간을 정돈하는 데 집중했다. 지상 1층 기획전시실과 아카이브실에서 대표작과 자료는 물론 완성작 뒤에 가려져 있던 미완성 작품까지 볼 수 있지만 집의 진면목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지하 1·2층은 김창열이 실제로 그림을 그리던 작업실로 가구와 집기뿐 아니라 물방울 형상을 구상하기 위해 오려둔 종이 조각, 손에 익은 붓, 대형 캔버스 앞을 오가며 사용한 긴 이동 의자까지 마지막 작업 당시 모습에 가깝게 되돌려놓았다. 완성된 물방울 회화 너머에 존재한 실험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한 점의 물방울이 태어나기까지 과정을 보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Photo by Henry Moore Foundation.

헨리 무어 스튜디오 앤 가든

둥글게 몸을 웅크린 인체와 비어 있는 여백을 결합한 거대한 조각 작품으로 20세기 영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헨리 무어. 1940년 전쟁을 피해 아내 이리나와 함께 런던에서 약 40km 떨어진 전원 마을 페리그린으로 이주한 뒤, 19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부부는 주변 농지를 조금씩 사들이고 가꾸어 잔디밭과 과수원, 숲, 양 떼가 노니는 들판으로 이뤄진 드넓은 조각 정원을 완성했고, 무어는 작품을 대지 곳곳에 옮겨놓으며 풍경과 가장 잘 맞닿는 위치를 끊임없이 탐색했다. 정원에 흩어진 6개의 작업실도 창작 과정에 따라 저마다 다른 역할을 맡았다. 수백 개의 마케트와 미완성 조각, 뼈와 돌, 조개껍데기 등 조형 연구물이 빼곡한 ‘본 마케트 스튜디오’에서는 형태의 출발점을, 조각을 다듬고 작품을 촬영하는 장소로 쓰인 ‘옐로 브릭 스튜디오’에서는 조각이 완성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 2026년 봄, 과거 작업 재료와 양의 사료를 보관하던 ‘시프 필드 반’이 증축과 리모델링을 거쳐 다시 문을 열었다. 헨리 무어의 생애와 작품을 조망하는 전시장과 관람객이 직접 만들고 배우는 창작 스튜디오 두 곳을 갖추면서 이곳은 한 조각가의 흔적을 보존하는 장소에서 그의 창작 방식을 오늘도 이어가는 살아 있는 예술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Photo by Jann Averwerser.

빌라 슈투크

화가가 자신의 집을 거대한 작품처럼 만들면 어떤 모습일까? 독일을 대표하는 상징주의 화가 프란츠 폰 슈투크는 1890년대 후반 직접 구상한 저택 빌라 슈투크에서 그 답을 보여줬다. 화가이자 조각가인 그는 건축과 인테리어, 가구와 장식에 이르기까지 공간을 이루는 거의 모든 요소에 관여하며 자신의 미학을 집 안에 펼쳐놓았다. 신고전주의 건축 안으로 들어서면 황금빛 장식과 어두운 색채, 신화적 이미지가 뒤섞인 응접실과 음악실, 작업실이 차례로 나오고, 그가 디자인한 가구와 조각, 회화가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무대 같은 풍경을 완성한다. 삶과 예술의 경계를 두지 않은 슈투크에게 집은 일종의 종합예술 작품이었다. 2024년부터 대대적 보수에 들어간 빌라 슈투크는 건축설비와 외벽을 정비하고 정원을 복원하는 등 2년에 걸친 작업을 마친 뒤 올해 5월 다시 문을 열었다. 역사적인 방에는 좀처럼 공개하지 않던 초기 회화와 새롭게 수집한 작품을 더해 100여 년 전 한 예술가가 꿈꾼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LATEST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