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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재구성되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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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쓰이고 지워지는 이야기를 품은 도시, 베를린. 전시 <천 번의 베를린>은 그 변화의 궤적을 예술이라는 언어로 펼쳐 보인다.

Elif Saydam, Zu Spät(III), 2021.
Carsten Höller, Mushroom Suitcase, 2008.

베를린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도시다. 예술과 정치, 이주와 기억, 새로운 가능성과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도시의 표정을 바꾼다. 함부르거 반호프 국립현대미술관(Hamburger Bahnhof–Nationalgalerie der Gegenwart)이 개관 3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소장품전 <천 번의 베를린(A Thousand Times Berlin)>은 이러한 변화의 층위를 따라간다.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현재까지, 베를린이 어떻게 예술가들에 의해 현대성을 재창조해왔는지 50여 명의 작품 70여 점을 통해 살펴본다. 전시는 네 가지 주제로 구성, 각 장마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베를린의 화려한 문화적 이미지는 물론 도시가 품고 있는 분단의 기억과 이주, 소속감과 배제, 세계화 속 불균등한 현실 등을 함께 드러낸다. 첫 번째 장 ‘변화하는 도시’에서는 통일 이후 베를린이 경험한 급격한 변화를 다룬다. 1990년대에 베를린은 비어 있는 건물과 저렴한 작업 공간, 기존 질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분위기로 전 세계 예술가들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성과 개방성 이면에는 불확실성과 긴장도 존재했다. 제니 홀저, 제임스 리처즈, 로이 릭턴스타인 등의 작품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 속 이미지와 권력, 기술, 인간의 관계를 질문한다. 특히 제임스 리처즈의 영상 작품 ‘Qualities of Life: Living in the Radiant Cold’은 제목 자체가 암시하듯 차가운 표면과 접촉한 신체가 열을 잃는 감각에서 출발해 신체와 기술, 도시와 환경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대한 은유를 표현한다. 전시장에 놓인 차가운 금속 의자는 이러한 관계를 몸으로 느껴볼 수 있는 매개체다.

함부르거 반호프 국립현대미술관 외관.
함부르거 반호프 국립현대미술관 외관.Roy Lichtenstein, Reflections On “The Artist’s Studio”, 1989.

두 번째 장 ‘연결된 세상’에서는 더 이상 한 장소에 갇힌 도시가 아니라 이미지와 정보, 사람과 자본이 이동하는 세계적 네트워크 속 베를린을 만난다. 공간이 전환되면서 서로 등을 맞댄 형태로 배치한 버니 로저스의 ‘Self-portrait as Clone of Jeanne d’Arc’와 트레이시 에민의 ‘I’ve Got It All’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마치 하나의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내놓는 듯한 모습이다. 여성의 이미지와 욕망, 자기표현을 둘러싼 두 작가의 상반된 시선은 작품 자체뿐 아니라 전시장 안의 관계를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한편 젊은 작가 체밀레 자힌의 ‘BB–Born to Bloom’은 한쪽 구석진 공간을 가득 채우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스위스 알프스와 쿠르드 산악 지역의 이미지를 한 화면에 아우른 작품은 인터넷 영상, 쿠르드 관련 아카이브, 개인 기록물, 스위스군 홍보 영상 등을 빠르게 교차시키며 대중문화적 이미지와 정치적 비평을 결합한다.

Klára Hosnedlová, Untitled(from the Series Embrace), 2025. Eliza Douglas & Anne Imhof, Signature VII(Eliza), 2017.
Cosima von Bonin & Michel Würthle, Smoke, 2008.
Slavs and Tatars, Mother Tongues and Father Throats, 2012. Andreas Gursky, Singapore Stock Exchange I, 1997. Joseph Beuys, Unschlitt / Tallow, 1997.
Rirkrit Tiravanija, untitled 2010(All the Days on the Autobahn), 2010.

세 번째 장 ‘삶의 현실’에서는 다시 베를린과 독일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로 시선을 돌린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베트남 출신 작가 자인보와 숭띠애우가 눈에 띄며, 이즈미르와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엘리프 사이담의 ‘Zu Spät’ 연작은 베를린의 편의점 같은 존재 슈페티(Späti)를 모티브 삼아 전통적 장식 요소와 결합함으로써 일상적 도시 문화와 장인정신을 둘러싼 시각적 코드 사이의 긴장감을 일깨운다. 줄리 머레투, 마리오 파이퍼, 안드레아 피클 등의 작품은 이주자와 다양한 연령의 베를리너를 통해 개인의 삶에 틈입하는 역사적 변화를 보여준다. 함부르거 반호프 주변에는 여전히 베를린장벽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전시는 역사를 고정된 기념물이 아니라 계속 재해석되고 변화하는 것으로 바라본다. 미헬 마예루스, 모니카 본비치니, 코지마 폰 보닌 등이 기억과 향수, 유머와 저항을 통해 과거와 미래가 끊임없이 협상하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지막 주제 ‘살아 있는 역사’를 구성한다. <천 번의 베를린>전은 수많은 경험과 기억이 중첩된 열린 공간으로서 베를린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최근작과 비교적 먼 과거의 작품들이 공명하는 모습은 결국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우리는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 에디터 정희윤
  • 글 이미솔(아트 칼럼니스트)
  • 사진 함부르거 반호프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