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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28

개념미술, 어렵지 않아요

21세기 영국의 개념미술 작가 라이언 갠더의 개인전 <변화율>이 스페이스K에서 9월 17일까지 열린다.

영국의 개념미술가 라이언 갠더.

라이언 갠더
1978년 영국에서 태어난 라이언 갠더는 맨체스터와 암스테르담에서 인터랙티브 미술과 순수 미술을 공부했다.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2012년 카셀 도쿠멘타에서 주목받으며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했다. 회화, 설치, 조각, 사진,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이며 관람객에게 어떤 답을 하든 틀릴지 모른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작품을 감상하라고 말한다. 프랑스 퐁피두 센터와 영국 테이트를 비롯해 뉴욕 현대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스페이스K 서울에서 선보이는 개인전에서는 ‘Natural and Conventional Signs(A Few Painted Signs, Whilst Most Stood Motionless Eyes towards the Moon)’를 감상할 수 있다.






Up Ended Breuer Chair after Several Inches of Snowfall, Wassily Model
B3 Chair, Marble Resin, 80×86×73.5cm, 2016

‘변화율’이라는 제목이 참 재밌습니다. 전시 보도자료에서 이에 대해 말하며 ‘시간’과의 연결 고리를 짚으셨죠. 그런데 비율 (rate)이라는 부분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각자 인식하는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는 것, 즉 시간의 상대성에서 출발한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정확히 짚으셨어요. 흥미로운 것은 시간이 죽음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거대하고 강력한 미스터리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또 어떤 문화권의 사람이든 죽음이나 시간의 미스터리를 이해한다는 점에서 아주 보편적인 주제이기도 하죠. 여러 세대에 걸쳐 인류는 시간과 변화율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려 노력해왔습니다. 여러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상반되기도 하죠. 왜 이렇게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시간의 양태가 달라지는지에 대해 통일된 견해는 없습니다. 물론 시간은 변하지 않아요. 이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변할 뿐입니다. 한 가지 정말 흥미로운 개념은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느낄 때 기억은 더 빨리, 많이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경험과 만남으로 점철된 바쁜 삶을 살며 계속해서 새것을 탐색하고 경험할 때 더 많은 기억이 생성되거나 더 많은 것을 기억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삶의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삶이 충만하다 느끼게 되죠. 반대로 최근에 아이가 생겨 몇 달 동안 계속해서 기저귀를 갈고 놀아주며 반복적인 삶의 패턴과 리듬을 느끼면 새로운 것이 없으니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흘러간다 싶을 수 있죠. 새로운 경험을 하지 못하니 새로 기억할 것도 없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도 늙어 기억력이 감퇴하고 이전의 기억은 사라집니다. 보통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것만이 기억으로 남게 되죠. 어떤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놓는다면 대개 몇 년 후 그 순간은 잊고 그 순간의 개념이나 기표(signifier)만 기억하게 됩니다. 기억의 기억이나 다름없죠.

이번 전시는 특히 작가님이 보는 세상의 구조와도 관련 있는 듯합니다. ‘관습적 기호(conventional sign)’와 ‘자연적 기호(natural sign)’의 조화라고 말씀하셨는데, 정확히 이는 어떤 구조인가요? 제 생각에 작가, 특히 개념주의나 사회학적 예술을 하는 작가라면 주변 세계를 둘러보는 것으로 작업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겁니다. 사회학적 혹은 인류학적 관점에서 세계를 보기 시작하면 자동으로 사물을 정의하고 분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명확한 분류법은 사물을 자연적 기호와 관습적 기호로 분류하는 기호학적 접근일 것입니다. 관습적 기호는 다른 인간이 전하는 정보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자연적 기호는 다른 인간이 구성하거나 만들지 않은 정보를 받아들일 때 생깁니다. 이 둘을 가르는 차이는 의도의 유무입니다. 이번 전시 출품작에는 관습적 기호와 자연적 기호를 동시에 다룬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깨진 유리창 작품이 있죠. 저에게 깨진 유리창은 추상화인 동시에 전시 공간을 벗어나면 그냥 깨진 유리창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자연적 기호를 모아 예술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놓으면 관습적 기호가 되는 것입니다. 또 제 작품 속 고양이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기호 간 형식성(formality)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에겐 인간의 특성을 투사하기 때문에 집고양이는 더욱 인간에 가깝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의인화라는 흥미로운 주제가 등장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떠돌이 고양이를 차용했습니다. 사람으로 치환하면 이들의 존재는 엘리트주의가 만연한 예술 세계에 역사적으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가 존재했다는 것, 사람들이 종종 예술에 접근하길 어려워한다는 점을 강렬히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고양이는 단순한 조각품이 아니라 관람객, 혹은 인사이더에 대비되는 아웃사이더로 해석할 수 있는 거죠.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여러 작가의 ‘좌대’도 인상적입니다. 브루스 매클레인, 조너선 멍크, 에바 헤세, 수전 힐러, 톰 프리드먼의 좌대를 차용하셨죠. 많은 작가 가운데 이 5명의 작가를 선정한 이유가 있다면요? 제가 그들을 고른 이유는 아마 기대하시는 것과는 다를 겁니다. 별생각 없이 골랐다고 할까요. 저는 취향이라는 것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훌륭한 점 중 하나는 우리가 마음의 이론(theory of mind)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이를 공감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술 작품을 볼 때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좋은 작품인가?’ 그리고 ‘내가 이걸 좋아하는가?’입니다. 이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얘기를 드리는 이유는 제가 마음의 이론에 근거해 작품을 선정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제가 특별히 그 작가나 작품을 좋아해서가 아니라(개인적 선호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작품인가?’ 그리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인가?’ 하는 점을 중점적으로 봤습니다. 사실 순응적 구성주의 관점에서 골랐는데, 작품의 부피나 덩치, 모양, 높이,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을 봤습니다. 작품이 인지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눈에 보이는 모양을 두고 결정을 내렸다고 하니 아마 이상하게 들리겠죠. 하지만 예술 작품이 인지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려면 시각적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작가님의 작업 세계에서 중요하게 꼽히는 작품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The Artwork Nobody Knows’가 개인적으로 제게는 감성적으로, 이성적으로 많은 부분을 건든 작품이었어요. ‘가장 연약한(vulnerable)’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가장 취약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정신력도 놀라웠어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제가 ‘만들지 말걸’ 생각하는 작품이 10점 정도 있는데 이 작품이 그중 하나입니다. 어쩌다 보니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휠체어 사용자는 이를 잘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냥 도구로써 휠체어를 사용하는 거죠. 저는 그 작품에서 가장 연약한 상태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자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마다 ‘연약한’이라는 단어에서 여러 가지 다른 것을 떠올릴 겁니다. 제 경우는 항상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에 흥미를 느껴왔습니다. 실제로 걸어가다 무언가에 걸려 비틀거리다 넘어지는 모습에서 통제력을 잃는다고 봤어요. 그래서 넘어진 제 모습을 보여주자 했는데,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보니 제가 바닥에 쓰러져 있고 휠체어가 그 옆에 거꾸로 뒤집혀 있는 형상이 된 겁니다.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 어떻게 끝날지 예상이 가능한 작품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이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난 그 작품은 그래서 저에게 실패작입니다. 하지만 제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현실에 반응하며 사람들과 충돌해 많은 질문거리를 던졌고,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을 고민하게 하며 이전에는 가보지 못한 곳으로 데려다준 작품이기도 하죠. 의도한 대로 성공하든 성공하지 못하든 종착지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실험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Letter to a Young Artist,
Discarded Letter, 22×17.6cm, 2019~2020






The End, Animatronics,
Mouse, Audio, 19.5×24×22cm, 2020






The Thermals Made Me Lazy, or The Squatters (Smoky Meet Monk’s Deflated Sculpture II, 2009), Wood,
Latex, Resin, Synthetic Fur, Paint, Animatronics, 10.2×50.8×34.3cm, 2020






2012년 카셀 도큐멘타에서 선보인 ‘I Need Some Meaning I can Memorise(The Invisible Pull)’.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 [변화율] 전경.

2012년 카셀 도쿠멘타에서 선보인 ‘I Need Some Meaning I can Memorise’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텅 빈 전시장에 기분 좋게 불어오는 미풍이 바로 작품이었어요. 저는 이 작품이 시각예술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일종의 고정관념에 대한 작가님의 도전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방금 드린 말씀과 좀 모순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 작품을 선보이고 나서 ‘좀 의미 있는 일을 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그것을 봤든 보지 않았든 관람객의 마음속에 스토리로서 존재하는 점 때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예술 작품은 실제 세계에서만 기능한다고 믿습니다. 갤러리나 미술관의 냄새, 너무 가깝게 서 있는 다른 관람객의 존재, 허기진 느낌 또는 작품의 제목을 보느라 너무 가까이 다가간 관람객이 남긴 자국 등 이러한 모든 것이 우리가 알아채지는 못하지만 진정한 경험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미풍에 관해서는 직접 본 사람이든 보지 못한 사람이든 누구나 직접 본 것처럼 그 작품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아무것도 없는 갤러리에 불어온 한 줄기 바람이 그 자체로 이전에 갤러리를 방문했을 때와는 다른 독특하고 즉물적인 경험을 선사했기 때문이겠죠.

그동안 작가님은 좋은 예술은 결코 한 가지 결론이나 해석을 낳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문득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예술의 의미가 궁금해집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마음의 이론과 취향의 개념에 바탕을 두고 답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 관점에서 말씀드리면, 먼저 예술은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도록 영감을 주거나 동기를 부여하고, 생각을 다양화합니다. 이것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나이를 먹을수록 보수적 세계관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예술의 목적은 사람들이 질문하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한 질문을 다시 하고 새로운 답을 찾아 규범에 순종하지 않는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기대에 저항하고 추측하고 세상을 다르게 만드는 것. 제가 현실에 대해 느끼는 한 가지 불만은 세계화의 영향으로 모든 것이 단조롭고 단일하며 순응적으로 변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예술의 목적은 사회적이기보다는 보다 도덕적인 개인의 의무에 가깝습니다. 여기에는 저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 포함되는데, 저는 제 두뇌, 인지능력, 창의성을 시험하는 것을 즐깁니다. 저를 놀라게 하는 것을 즐기고 제가 만들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을 만드는 일을 즐깁니다. 여기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지금의 저와는 다른 삶을 사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낄 수 있죠. 이런 것을 돈을 받고 하는 일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특혜라고 생각합니다.

작업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으시나요?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연구를 어떻게 진행하는지도 알려주세요. 사실 간단합니다. 저는 10×15cm 사이즈의 사진을 수만 장 찍어 인덱스 카드 상자에 보관하는데, 이런 상자가 60개쯤 됩니다. 사진 하나하나에 그걸 찍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메모한 포스트잇을 붙여 60개의 상자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있도록 했고, 각각의 상자는 새로운 작품과 연관이 있습니다. 가끔 저를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작품을 계획하는 제 모습이 지하실에서 기괴하게 체계적인 방식으로 살인을 계획하는 연쇄살인마 같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기억력은 컴퓨터의 RAM이나 하드드라이버와 달라 필요한 모든 것을 저장할 수는 없어요. 또 어떤 기억이 필요해도 쉽게 접근해 빼내지 못할 수 있죠. 그래서 스튜디오에 생각하는 방을 만들어 거기에 그 모든 것을 기록해 보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방을 ‘줌 룸(Zoom Room)’이라고 부르는데, 렌즈를 줌인하듯 사색에 몰두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놓았어요. 당연하던 일상이 더는 당연하지 않죠. 작가님은 지금의 팬데믹 상황을 어떻게 겪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코로나19 전후로 작업 환경이나 철학에 변화가 생겼나요?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코로나19로 느린 일상을 경험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재평가하고, 시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죠.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제는 제 삶의 주도권을 다시 찾고 싶습니다. 제 작업은 대부분 낯선 곳을 여행하거나 낯선 문화를 접할 때 느끼는 문화적·사회적 차이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현재는 여행을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자극이나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재료를 모으는 능력이 고갈된 상태죠. 저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에 수년간 여러 나라에 머물렀는데, 그런 경험은 저에게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마주치는 체계, 기호, 몸짓, 손동작, 문화적 의미 등을 행동의 이면에 존재하는 언어로부터 해석하는 작업은 진정 심오한 경험입니다. 지금 이러한 자극이 무척 부족한 상태라 이전에 가보지 못한 곳에 정말 가보고 싶네요.

새로운 환경에서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또 예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시각도 바뀌어야 할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예술에 구체적으로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면 예술을 멋지게 만드는 모든 혼란, 비밀스럽고 마법 같은 것, 불확실성, 불명확성 같은 것이 사라져 예술이 고유의 맛을 잃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예술의 역할은 ‘역할을 갖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예술이 사회와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 간 틈새를 메우는 거품 충전재(expanding foam)처럼 실패에 저항할 수 있는 뻔뻔함이자 대담함,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예술을 과거와 현재를, 현재와 현재를 잇는 교량으로 보고 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스페이스K 서울, 라이언 갠더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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