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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06

순간을 영원처럼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박정혜, 이미정, 정이지, 최윤희 작가 4인의 그룹전이 개최된다.

박정혜, Anonym, Acrylic on Linen(Mounted on Wood Panel), 121×93cm, 202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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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혜 Park Junghae
생각의 밀물과 썰물 속에서 추상은 극대화된다. 박정혜는 사물이 지닌 고유의 선과 면에서 시각적 기호를 채집해 기하학적 회화를 선보인다. 빛을 주제로 작업해온 작가는 시공간에 반응한 빛의 형상을 기표로 시각화하거나 날씨에 따라 변하는 빛의 형상을 그려왔다. 따스한 오후의 햇빛 같은 난색 빛을 그려온 작가는 최근 바다, 밤, 우주에서 느낄 수 있는 푸르스름한 짙은 빛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작업에는 항상 리본이나 종이로 만든 오브제가 등장하는데, 이는 빛의 형상을 담는 매개체로 사용된다. 일상적 소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종이 모형에는 각기 다른 빛이 담겨 있고, 그것이 작가의 손에 의해 배치되고 화면에 스며들면서 캔버스 위에 작가만의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클래식 음악 트랙에서 자주 발견되는 ‘작자 미상’이라는 키워드에서 출발한 ‘Anonym’, 바다에서 볼 수 있는 빛의 입자와 운동감에서 영감을 받은 ‘Lighthouse Keeper’, ‘My Captain’ 등 작가가 최근 영감을 받은 주제를 제목과 도상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이미정, The Shadow Effect_Ta-da!, Acrylic on Canvas, 116×91cm, 2023.

이미정 Lee Mijung
동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유심히 관찰하며 오브제를 만들고, 이를 연극 무대처럼 연출하는 이미정.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유행시키며 유사한 공통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지점을 흥미롭게 여긴 작가는 시대마다 변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가치를 탐색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저마다 취향이 담긴 정돈된 집의 이미지를 인터넷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 그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감춰진다. 작가는 집을 정돈하는 효과, 그 결과만이 노출되는 현상을 관찰하며 ‘그림자 노동’으로 불리는 가사 노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The Shadow Effect’ 시리즈에서는 저절로 되는 일은 없지만, 저절로 완성되는 환상을 이야기하기 위해 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에서 효과를 빌려온다. 애니메이션 속 요정이 요술봉을 휘두르며 부리는 마법 같은 검은 그림자의 손, 핑크빛 천, 반짝거리는 흰색 거품처럼 보이는 빛의 이미지가 그것. 실제 일상을 만화적 효과로 표현한 화면은 현실에서 마주하는 황홀한 환상을 드러낸다.





정이지, 영원한 어제, 116.8×91cm, Oil on Canvas, 2023.

정이지 Jeong Yiji
스쳐 지나가는 찰나임에도 슬로모션처럼 마음에 영원히 저장되는 장면이 있다. 작가는 이렇듯 잊고 싶지 않고, 붙잡고 싶은 과거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작업을 이어왔다. 영화의 클로즈업 장면 혹은 스냅사진이 연상되는 화면에서는 작가 고유의 나른하면서 편안한 감성이 느껴진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거나 대상을 자세히 지켜보는 행위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작가는 인물과 나눈 감정, 낭만적 분위기를 만들어낸 사물을 캐치해 캔버스에 기록한다. 그날 빛의 색감과 온도, 인물의 인상을 그려내는 맑은 붓 터치에는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영원한 어제’ 속 눈빛은 관계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긴장감을 내포하며 작품 속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작가가 마주한 순간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보는 이의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전시장에서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마주한 관람객은 슬로모션처럼 남아 있는 자신의 소중했던 순간을 상기하며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과거 장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최윤희, 안으로 당기고#4, 32×32cm, Oil on Canvas,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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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 Choi Yoonhee
최윤희는 일상에서 체험한 감정과 감각의 변화를 회화로 재현하는 작가다. 비가시적 대상이 담고 있는 시간을 탐구하는 작가는 일상에서 경험한 공기, 바람, 빛 같은 비가시적 존재의 외형을 그려왔다. 외부에서 영향을 받은 일종의 풍경화를 그리는 작가는 최근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신체 풍경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면에 축적되어온 감정은 신체에 상흔 같은 흔적을 남긴다. 작가는 이러한 몸 어딘가에 켜켜이 쌓인 감정의 흔적을 천천히 수면 위로 끌어올려 섬세하게 관찰했다. 화면 속 반투명하고 짙은 색 면과 그 위에 그려진 세밀한 선은 감정의 실타래 같기도, 혈관에서 흐르는 감각의 형상 같기도 하다. 작가는 직접 물감을 손으로 문질러 탁한 자국을 남기는 방식으로 작업하는데, 이는 작가의 내면이 육체를 통해 색과 도상을 만들고 화면 안으로 흡수되며 신체성이 더해진 추상 작업을 만들어낸다. 눈으로 인지할 수 없는 감정이 신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상상은 우리의 감각을 예민하게 자극한다.

 

에디터 조인정(노블레스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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