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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28

한국 미술의 영토 확장

서울이 아트 마켓의 블루오션으로 전 세계 미술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화상으로 진행한 토크 장면. 사진 안지섭

김택상
현대미술 작가로 리안갤러리, 도쿄 다구치 파인 아트, 리만머핀 갤러리 등에서 다수의 전시를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케이트 림
미술 저술가로 대표 저서로 [Park Seo-Bo: From Avant-Garde to Ecriture], [Language of Dansaekhwa: Thinking in Material], [Making Sense of Comparative Stories of Art: China, Korea, Japan] 등이 있다.

정준모
전시 기획자이자 평론가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덕수궁미술관 관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이자 여러 문화 정책 사업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리만머핀 서울의 김택상, 헬렌 파시지안 2인 전시 [Reflections and Refractions] 전경. ⓒ 리만머핀

지난해에 한국에 상륙한 글로벌 아트 페어를 계기로 많은 해외 미술 관계자가 한국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그들의 작품 세계를 탐구하는 기회를 가졌죠. 그중 인상 깊은 만남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김택상 지난해 말부터 영국, 미국, 독일의 갤러리 담당자가 제 작업실을 방문했습니다. 아시아에서만 작품 활동을 해온 저는 서구 갤러리들이 작업실을 방문하고 본격적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건 처음 경험하기에 한국 미술계를 둘러싼 환경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지난 2월 2일부터 리만머핀 서울에서 조각가 헬렌 파시지안(Helen Pashgian)과 함께 2인전 [Reflections and Refractions]를 선보이고 있어요. 국적이 다른 두 작가의 공통분모를 찾아 주제를 정했죠. 리만머핀 레이철 대표가 한국성을 가진 작가, 한국의 전통을 재해석하는 자신만의 방법론을 가진 작가를 찾고 있다고 2018년에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읽어보니 왜 그가 나를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해소되더라고요. 물론 이런 상황은 미술계뿐 아니라 팬데믹 이전부터 이어진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해외 메이저 갤러리들이 한국 작가를 눈여겨보기 시작했고, 지금은 본격적으로 그들의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거네요. 그렇다면 그들이 궁금해하는 ‘한국성’이란 무엇일까요? 각자 생각하는 한국성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정준모 한국의 근대화는 사실 해외에서 수입된 수동적 문화예요. 그래서인지 우리는 그 콤플렉스를 가릴 양으로 한국성을 찾습니다. 한국 작가의 그림에는 한국성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지요. 1950~1960년대 한국 추상 작품은 한국성을 드러내고자 오방색도 아닌 색동의 단청 색깔을 화면에 도입해 한국성을 표현하고자 했거든요. 모더니즘의 실체를 연구하고 이를 표현하기보다는 서양미술의 모더니즘, 그 외피만 차용함으로써 서구적 조형론이나 미학적 논거가 약한 상태로 모더니즘과 한국성을 동시에 추구해온 모순을 이제라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케이트 림 제 생각에 한국성은 한국화의 전통 방식도 아니고 서양화를 배우는 것도 아닌, 그 둘이 서로 융합해 제3의 실체가 된 거예요. 예를 들어 윤형근 작가는 유화물감에 테레빈유를 많이 섞어 끈적임을 없애고 먹물처럼 묽게 만들어 번지는 느낌으로 작업했습니다. 서양 재료로 동양화 같은 느낌을 구현한 거죠. 이것을 서양인들은 새롭게 보고, 우리는 또 한국인에게 익숙한 감성을 느끼게 됩니다. 한국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해갑니다. 김택상 한국 작가들의 몸에는 이미 한국인만의 문화적 유전자가 존재합니다. 동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내면 자신만의 방법론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중요한 건 처음부터 한국성을 찾겠다고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자연스럽게 체득해야 한다는 거예요. 머리로 인식하는 것은 나보다 앞선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것인데, 흔히 그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며 살죠. 몸으로 체득한 것만이 내 것이고 ‘우리다움’, 즉 한국성이죠. 이를 먼저 갖추고 나아갈 좌표를 찾아야 합니다.

한국이 수동적 근대화를 이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현시점에 우리는 어떤 능동적 노력을 통해 세계 속 한국 미술이 자리 잡게 할 수 있을까요? 정준모 한국 미술이 세계 미술과 어떻게 상호작용할지 생각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성을 이야기할 때 늘 나오는 ‘향토색’은 일본 비평가들이 1920~1930년대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상을 주며 사용한 언어거든요. 이런 표현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전통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거예요. 그 흐름에서 한국성을 찾아야 합니다. 제가 작년에 미술사 용어 사전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한국 미술 사조를 해외에서 인식하려면 세계 미술사에 우리가 들어가야 하거든요. 가만히 있으면서 그들이 찾아 넣어주길 바라선 안 돼요. 자구적 노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미술계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한국 작가들이 글로벌 전략을 위해 로컬 재료와 전통 방식의 탐구에서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케이트 림 작가가 의도적으로 특별한 재료를 선택했다면, 그 시작은 재료의 특성에 의존해 내 작품이 빛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겠죠. 그러나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 재료를 스스로 연마해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게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융합된 작품을 내놓는 한국 작가가 있습니다. 그 경지에 이른 작품을 보면 정작 재료가 향토적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작품에서 우러나는 힘 때문에 저절로 이끌리게 됩니다. 어떤 재료와 방식을 선택하든 그건 작가의 자유입니다. 작가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면 돼요. 결국은 작품에 나타난 힘이 어떻게 전 세계 관람객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가는지가 중요합니다.

‘좌표’를 찾아가려면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요? 방향을 찾기 위한 나침반 같은 역할은 누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택상 지도 위에서 길을 찾으려면 먼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한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선진국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 위치입니다. 선진국이란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길을 제시하는 국가입니다. 현 위치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방향 설정을 해야 합니다. 국제 무대에서 자국 문화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인정받는 것은 ‘문화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제3자의 관점에서 누가 이길지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사자로서 이겨야 해요. 철저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정의하지 못하면 타인의 관점에서 왜곡되어 정의될 수밖에 없어요. 지난 세월 한국 미술이 그래왔습니다.





상하이 웨스트번드에서 열린 한국작가 10인전 <컨투어리스> 전경. ⓒ 노블레스 컬렉션

문화 전쟁이라고 말씀하시니 현 상황이 보다 구체적으로 와 닿습니다. 철저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한국 미술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택상 일본 건축이 어떻게 서구 건축계에서 어필할 수 있었는지 연구해보니 서양 문화와 소통할 수 있는 키워드를 추출하고, 그것을 개념화해 프레젠테이션을 잘해왔어요. 말하자면 브랜딩이죠. 이런 사례가 우리가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입니다. 저는 우리 콘텐츠를 해외에 어떤 방법으로 보여줄 것인지가 우리 앞에 놓인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작업해온, 한국성을 갖춘 작가가 있습니다. 이들이 이룬 미학적 성취, 방법론의 참신함을 추출해 개념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정준모 한국 미술이 지금보다 힘을 키우고 세계의 미술과 조우하려면 이제 훌륭한 한국 작가만으로는 안 되죠. 작가의 작품을 재료로, 전시를 그 재료로 만든 요리로 본다면 근사한 상을 차려낼 수 있는 셰프의 발굴과 지원, 육성이 필요합니다. 한국은 정책적으로 미술계에 많은 지원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대부분 작가의 생계 지원에 집중되어 있었어요. 이제는 더 넓은 시야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를 만들어내는 인력을 키워야 해요. 케이트 림 전시와 함께 그것을 기록하는 출판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전시와 출판은 서로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박서보 작가의 책을 출판하며 영문 원고를 써서 세계 유명 미술 출판사 여러 곳에 보냈어요. 그중 한 출판사에서 보낸 답장이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 아직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책을 낼 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원고의 퀄리티보다 발행 시기다.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에 맞춰 출판하면 미술관에서 책을 다 구입할 것이기 때문에 출판사는 손해 없이 홍보 효과를 누리며 명목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는 냉정하면서도 현실적인 이들의 답변에 대응하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의 한국 미술이 마켓에 따라 급성장했기 때문에 자리를 갖추기도 전에 금방 식어서 성장 동력을 잃어버릴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준모 잘 팔리는 작가가 많다고 세계적 위상을 갖춘 것은 아닙니다. 한국 미술을 ‘세계 속 현상’으로 끌고 가려면 시장이 아니라 미술사적 검증을 통해 가치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물이 내려와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시장에서 흘러넘치는 물줄기를 위로 올리려고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죠. 물론 미술관 전시라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전시 하나를 하려면 리서치 기간을 포함해 적어도 4~5년은 준비해야 하거든요. 이를 지속 가능하게 백업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정책이라는 것이 결국 미술계의 생태 환경을 만드는 일이거든요. 국립현대미술관의 아트뱅크가 바로 그런 일을 하려고 만든 곳입니다. 역량 있는 한국 작가의 해외 순회전을 지속적으로 기획하는 것이 아트뱅크의 주된 역할입니다. 이곳이 잘 운영되도록 작가를 비롯해 미술계 전체가 관심 있게 지켜보고 힘을 보태야 합니다.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지속적으로 전시할 수 있게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군요. 그렇다면 전시에 동반되는 이론적 측면, 즉 학계에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케이트 림 미술비평이나 미술사 이론은 서구 미술을 기본으로 형성되어 있어요. 그 바탕 위에 한국 미술사를 일종의 변형으로 추가해야 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해외에서 외국어로 한국 미술을 설명하려면 서구의 특정 미술 사조와 연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단색화와 모노크롬 회화의 차이를 설명하려면 이 둘의 표현 방법과 형식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 한국 미술을 얘기하는 평론가들은 한국 작가도 알아야 하고 외국 작가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동시에 이해시킬 수 있어요. 몇 배로 어려운 일이지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블레스 컬렉션은 지난해 11월에 상하이에서 열린 ‘웨스트번드 아트 페어’에서 한국 작가 10명의 그룹전을 선보였습니다. 전시의 주최자로서 궁금해지네요. 이 전시는 어떻게 보셨나요? 향후 방향성에 대한 조언도 부탁드립니다. 케이트 림 전시 제목이 ‘컨투어리스’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무윤곽선’이라는 테마로 묶어 해외에 선보인 전시였죠.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이 한 명의 미술인으로서 매우 반가웠습니다. 다만 이런 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되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더 나아가 전시가 이루어진 현지의 미술계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것과 우리와의 공통점을 찾아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사람들은 내가 아는 것에 더 관심이 있거든요. 현지 작가와 한국 작가를 매치해 전시하면 두 작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드러나면서 양측 모두에게 존재감이 생깁니다. 그러면 이 전시가 더욱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늘 다 같이 온라인에 모여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국 미술의 미래를 위한 소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이상적인 결과는 어떤 모습일까요? 김택상 우리가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해요. 그러려면 내가 존재함으로써 주변을 이롭게 한다는 자각이 있어야 해요. 한국 문화가 자국의 이익을 넘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다면 한국인은 자긍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죠. 저는 한국 미술이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에디터 박수전(노블레스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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