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향한 행복한 여정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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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04

완벽을 향한 행복한 여정

서울시향의 새 마에스트로, 얍 판 츠베덴.

얍 판 츠베덴(Jaap Van Zweden)의 지휘는 보는 것만으로도 음악이 들리는 것 같다. 이는 클래식 지휘자의 손짓을 이해하지 못하는 평범한 관객이라도 그의 공연을 볼 때 체험하게 되는 경험이다. 츠베덴의 손끝과 몸짓을 관찰하면 음의 고저와 길이가 읽혀 흐름을 더 쉽게 따라갈 수 있다. 연주가 진행되는 내내 단원들과 아이 컨택하며 원하는 음을 요구하는 그는 비교 불가능한 열정을 보여준다. 그만큼 정확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무척 엄격하다는 인상도 준다. 츠베덴의 정확하게 계산된 음악 속에는 우연과 혼란이 없다.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한 다음, 오케스트라를 그 해석에 맞는 연주가 가능하도록 완벽하게 트레이닝해 무대에 올리는 이 엄격한 마에스트로는 관객의 기대에 매번 부응한다. 헌신에 가까운 몰입으로 공연을 완성하는 만큼 그가 맡은 오케스트라는 늘 향상된 연주를 들려주는 것으로 정평이 났고, 그에게는 ‘오케스트라 트레이너’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그런 츠베덴이 2024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에서 지휘봉을 잡는다. 정명훈, 오스모 벤스케에 이어 서울시향의 3대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것. 2023년 객원 지휘자로 서울시향 포디엄에 몇 차례 오른 바 있는 그는 사실 검증이 불필요한 세계적 클래식 거장이다. 네덜란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과 함께 자랐으며, 열아홉 살에 세계적 오케스트라 로열 콘세르트헤바우의 최연소 악장으로 부임하는 등 연주자로서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 이후 17년간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면서 게오르그 솔티,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레너드 번스타인 등 전설적 지휘자들과 호흡을 맞췄다. 오랜 시간 연주자로서 성공적 커리어를 쌓은 츠베덴을 지휘자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은 레너드 번스타인이다. 독일 순회공연 중 번스타인이 그에게 말러 교향곡 1번 지휘를 맡기며 지휘자의 길을 권유했다. 당시 서른일곱 살이던 그는 새로 시작하기엔 다소 늦은 출발이지만, 음악에 대한 헌신적 태도에 거장과의 수많은 공연 경험이 더해져 빠르게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과 댈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던 그는 지금도 두 악단의 명예 지휘자, 계관 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2018년부터는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 2021년부터 홍콩 필하모닉 음악감독을 맡고 있으며, 2024년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서울시향과 새로운 음악적 여정을 앞둔 츠베덴은 앞으로 5년의 부임 기간 동안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크게 네 가지 꼽았다. 첫 번째로 꼽은 것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과 협업이다. 오페라나 발레는 물론 젊은 지휘자와의 협업 등을 함으로써 단지 클래식 음악만이 아닌 예술을 강화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두 번째 목표는 서울시향의 해외 투어다. 서울시향이 국제 무대에 걸맞은 역량을 갖췄음을 증명하고 시민들이 이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젊은 지휘자 양성. 매년 여름 스위스에서 젊은 지휘자들을 가르칠 정도로 미래의 젊은 음악가 육성에 관심이 많은 그는 2025년부터 한국의 젊은 지휘자를 선발하고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마지막은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전곡 레코딩이다. 작곡가 말러에 대한 존경심을 숨김없이 드러내온 그는 “악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최고 작곡가 중 한 사람”이라며 그의 음악을 통해 인간이 느끼는 모든 종류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간 서울시향의 기존 행보에서 더욱 도전적 과제를 제시한 이 새로운 리더에게 그중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목표에 대해 묻자 그는 “하나도 없다”고 답했다. “우리는 계획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철저하게 준비할 것입니다.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계획의 문제가 아니라 수행의 문제니까요.” 보다 완벽한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엄격하게 단련된 생활이 필요하다는 그에게 반문했다. 음악의 존재 이유는 즐거움인데, 통제된 환경에서 탄생한 음악이 즐거움을 줄 수 있겠느냐고. 츠베덴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물론이죠. 저는 오케스트라를 완벽하게 준비시키고, 무대에서 자유롭게 놓아줍니다. 그 순간 가장 매력적인 음악이 탄생하죠.”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새롭게 부임했는데, 뉴욕 필하모닉과 홍콩 필하모닉에 이어 서울시향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요? 가장 큰 이유는 그간 제가 만나온 한국인 음악가들과의 교류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 훌륭한 한국인 음악가를 많이 알고 있는데, 그들의 일하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재능도 뛰어나지만, 최선의 결과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공통점이 있거든요. 그런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지난해 서울시향과 몇 차례 공연을 했는데요.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그들과 어떤 것을 이뤄가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단원들과 제가 앞으로 음악적 모험을 함께 떠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보아온 서울시향의 강점은 재능을 갖춘 연주자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더 좋은 건 단원 모두가 매우 열심히 임한다는 거예요.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제가 그들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까 고민 중입니다. 동시에 그들이 제게 무엇을 보여줄지도 기대되고요. 평소 좋아하는 문장 중 “천국으로 가는 길이 천국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천국으로 가는 과정 그 자체가 천국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해도 지휘자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감독님의 음악 색깔은 어떤가요? 그건 제가 아닌 청중이 답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말씀하셨듯이 모든 지휘자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하거든요. 굳이 설명하자면 저는 늘 110% 이상 준비해요. 철저히 준비하고 무대에 오르는 순간 오케스트라를 놓아줍니다. 그게 제 스타일이에요. 110% 이상 준비한다니, 다소 엄격하게 느껴집니다. 대화 속에서도 ‘근면’이나 ‘훈련’ 같은 표현이 많이 등장했어요. 그런 통제된 패턴 속에서 완성된 음악을 통한 즐거움이 있을까요? 물론이죠. 적어도 저는 그런 과정 속에서 얻은 성취를 통해 큰 행복을 느낍니다. 목표를 명확히 인지하고 노력하다 보면 도달하는 이상적인 순간이 와요. 그 순간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는 관객을 존중하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바보가 아니거든요. 오케스트라가 최고 소리를 위해 헌신했는지 바로 알아챕니다. 그러니 늘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것이 음악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방법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집단이라, 모두가 음악에 헌신하도록 이끈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모두가 저와 같은 사고방식을 지녀야 하는 건 아니죠. 단, 무엇을 위해 음악을 만들어가는지 인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돈되고 체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을 조직적으로 꾸려야 최선의 음악을 할 수 있거든요. 일상에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무대에서 드러납니다. 집중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단원들의 일상에 관심을 가지려 해요. 도울 수 있다면 돕기 위해서요. 그런 과정을 통해 오케스트라가 음악에 집중하고 헌신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저는 우리가 매일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늘 깨어 있어야 해요. 무엇을 향상시킬지, 어떤 것을 다르게 해볼지 고민하기 위해서요.
서울시향을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음악을 소화하는 오케스트라로 만들겠다고 했어요.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각각의 음악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개인적으로 오케스트라를 다듬어가는 것을 좋아해요. 카멜레온처럼 모든 음악 스타일을 소화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하죠. 이 전제에는 완벽한 연주력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다른 스타일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다른 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지 알아야 해요. 손을 어떻게 다르게 쓰는지, 어떻게 스타일을 다듬는지. 이런 것은 철저한 연습으로만 완성됩니다. 클래식, 모던, 낭만주의. 어떤 음악이든 완성하기 위해서는 테크닉이 받쳐줄 수 있어야 해요.
또 다른 취임 목표 중 다양한 예술 분야와의 협업이 있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할 예정인가요? 오페라, 댄스, 합창단, 젊은 지휘자, 음악 학교 등과 협업할 예정입니다. 저는 서울시향이 하우스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모두와 함께 작업하는 연결 장소 같은. 도시를 진짜 강하게 만드는 것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고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지휘자 양성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나요? 음악인으로서 새로운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것을 젊고 유능한 인재와 공유하려고 합니다. 단순히 가르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중심부로 끌어들여야 해요. 리허설을 보게 하고 오케스트라 앞에 설 기회를 줄 생각입니다. 지휘는 음악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는 일인데, 대부분의 젊은 지휘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연습하거든요.





©서울시향

이루고자 하는 목표 중 가장 도전적인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없습니다. 한 번에 하나씩 해나갈 예정이에요. 오케스트라가 조금씩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만이 답이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간은 리허설 시간이에요. 모두가 완벽한 음악을 위해 무언가를 함께 고쳐가요. 개인이 아니라 전체와 하나의 음악을 위해 헌신하죠. 그런 것들이 매우 중요해요. 큰 그림을 함께 바라보고 그리는 것.
눈에 띄는 계획 중 하나가 또 있어요. 작곡가 정재일과 서울시향의 협업인데요. 클래식 작곡가가 아닌 그에게 손을 내민 이유가 궁금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음악 때문이죠. 정말 훌륭하고 많은 영감을 줘요. 그뿐 아니라 재능 있는 음악가들과 협업할 기회가 생긴다면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다른 장르의 음악을 배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대중을 잃거든요. 정재일과는 이미 두 차례 미팅했고, 현재 그가 서울시향을 위해 곡을 쓰고 있어요. 9월에 야외에서 콘서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 싫어”라는 반응이 아니라 “오! 뭐 하는 거야? 궁금하다!”라고 주목하길 바라요.
음악가 집안에서 자랐어요. 평생 음악을 해온 셈인데, 한순간도 지겨운 적이 없었나요? 단 한 번도 없어요. 사람들이 종교가 있냐고 물어보면 늘 있다고 답해요. 음악이라고. 제게 악보는 바이블과 같아요. 정말 성경책처럼 다루거든요. 제가 만들어갈 음악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수도승이 수련하듯 저를 단련해요. 그런 과정을 이해하는 단원들과 계획한 대로 그 결과를 세상에 드러내는 과정을 항상 즐기고 있습니다.
얍 판 츠베덴은 세계가 인정하는 지휘자입니다. 그럼에도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는 데 용기가 필요하거나 일종의 도전을 하는 순간이 있을까요? 물론이죠. 저와 오케스트라 사이에는 아주 가느다란 선이 있어요. 제 경우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출 때 그들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관찰하고 계속 향상시키는 작업에 빠져 있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더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면 그것에 집중해 단원들을 이끌다가 선을 넘는 순간도 있죠. 그럴 때 그들이 나를 싫어하기 시작해요.(웃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늘 조심합니다. 그럼에도 최고가 되고자 하는 목표는 변함없어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올바른 방식으로 노력해도 저를 싫어하는 연주자가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대신 우리는 음악적 가족이라는 믿음으로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 데 집중합니다.
마지막으로 클래식 음악의 묘미는 무엇인지, 사람들이 왜 서울시향의 공연을 보러 가야 하는지 말씀해주신다면. 저는 결코 “사람들은 클래식을 더 많이 들어야 해요”라고 말하지 않아요. 관객 입장에서 그래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오케스트라를 홍보하는 최고 방법은 음악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관객이 스스로 찾아올 수 있도록 매력적이어야 하죠. 관객이 오지 않는다면 순전히 우리 잘못이니까. 전 불평해본 적이 없어요. 사실 제 공연장은 늘 관객으로 가득 차거든요.(웃음)

 

에디터 남미영(denice.n@noblesse.com)
사진 김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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