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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4

NOBLE BUBBLES

빈티지 샴페인의 복잡 미묘한 아름다움.

돔 페리뇽 1988 P3.

크리스탈와인컬렉션 이준혁 대표와 나눈 이번 호 와인 이야기는 빈티지 샴페인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이다. 빈티지 샴페인은 특정 수확 연도, 즉 빈티지가 좋을 때 그 연도를 기념하기 위해 양조한다. 이준혁 대표는 해당 빈티지 연도마다 느끼는 추억이 각자 다른 만큼 선물하기 좋고, 특별한 컬렉팅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많은 이가 알고 있듯, 샴페인은 크게 빈티지 샴페인과 논빈티지 샴페인으로 나뉜다. 논빈티지 샴페인은 단일 연도가 아닌 다른 연도 샴페인을 섞어 블렌딩한다는 점에서 빈티지 샴페인과 구분된다. 포도 작황이 좋은 해에는 그해의 특정한 테루아가 반영된 빈티지 샴페인을 생산할 수 있는데, 숙성 기간도 훨씬 길다. 논빈티지 샴페인이 ‘티라주(tirage, 2차 발효를 위해 병 속에 당분과 효모를 넣는 것)’ 후 15개월 이상 숙성하면 출시가 가능한 반면, 빈티지 샴페인은 법적으로 반드시 3년 이상 숙성을 거친 후 세상에 나올 수 있다. 기본 7~8년간 숙성을 거친 ‘빈티지’만 출시하는 돔 페리뇽에는 외노테크 빈티지가 있는데, 이는 2차 숙성이 가능한 돔 페리뇽 중 선별해 다시 한번 숙성한 셀렉션이다. 그중에서도 P2와 P3는 각각 15~16년간, 25년간 숙성 후 내놓는 최상급 빈티지 샴페인. 좋은 빈티지를 생산하기 위해선 운도 따라야 한다. 기후변화에 따라 예상을 뒤엎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와인메이커가 빚어낸 종합예술
빈티지를 달고 세상에 나오는 샴페인은 기본적으로 그 빈티지의 ‘좋은’ 특징을 잘 보여주고, 오래 숙성할 수 있는 해에 생산한다. 하지만 좋은 빈티지임에도 생산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간혹 어려운 빈티지 샴페인을 만들기도 한다. “크루그의 ‘클로 드 메닐ʼ이라는 플래그십 와인은 1999년이 꽤 괜찮은 해였음에도 빈티지 샴페인을 생산하지 않았어요. 크루그의 와인메이커에게 이유를 물은 적이 있는데, 병입까지 끝났지만 자신이 생각한 퀄리티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이처럼 빈티지 샴페인은 와인메이커의 성향 그리고 실력을 기반으로 저마다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2003년의 볼랭저 샴페인 ‘바이 볼랭저(By Bollinger)’는 매우 어려운 빈티지였지만, 와인메이커의 탁월한 실력과 감각 덕분에 독특한 캐릭터의 빈티지 샴페인을 생산할 수 있었다. 돔 페리뇽에서 30년간 셀러마스터이자 와인메이커로 일하며 2008 빈티지를 마지막으로 만든 리샤르 조프로아는 2003년 빈티지인 P2에 대해 “많은 사람이 너무 어려운 해였다고 말하지만, 나는 굉장한 에너지를 발견했다. 애착을 지닌 빈티지”라고 표현했다. 즉 기후 영향에 따른 포도 품질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지만, 그다음은 와인메이커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달렸다는 뜻이다. ‘자연’과 ‘인간’의 역할이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방증이다.
실력이 뛰어난 와인메이커는 더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더라도 적당한 당도와 산도를 갖춘 건강한 포도 작황을 위해 친환경적 비오디나미 농법으로 포도밭을 관리하고, 테루아의 특성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당분을 채우는 도사주(dosage) 과정에서 설탕량을 절반으로 줄이기도 한다. 오래 숙성하기 위해서는 알코올 도수가 높아야 하고, 도수를 높이기 위해 발효 전 설탕을 넣는 보당을 하는 것이 일반 과정 중 하나. “그럼에도 좀 더 빠른 숙성을 위해 설탕을 전혀 쓰지 않기도 해요. 실제 내추럴 스파클링 와인을 일컫는 ‘브뤼 네이처’가 최근 트렌드 중 하나입니다. 이 또한 해당 와인메이커의 철학에 따른 것이죠.”

숙성의 미학
이준혁 대표가 추천하는 최근 빈티지는 2018·2019·2022년이다. 앞으로 숙성을 위한 오랜 기간이 필요하겠지만, ‘전설적 빈티지’가 될 거라고 기대한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빈티지 샴페인의 숙성 기간은 최소 15~20년. 그 이상 숙성하면 더 좋다. “2000년대에서 압도적으로 좋은 빈티지인 2008 빈티지도 지금 시음 적기라고 할 순 없어요. 지금 마실 만한 빈티지는 2002년으로 70% 정도는 풍미가 올라왔어요. 또 1996 빈티지가 이제 막 맛있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1988·1990년은 지금 정점에 있는 좋은 빈티지입니다. 그보다 좀 더 앞선 1976 빈티지는 절정을 조금 지난 느낌이고요. 인생으로 치면 50대가 넘어가는 느낌이랄까. 관리를 잘한 50대 여인이 20대가 흉내 낼 수 없는 성숙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처럼, 숙성이 잘됐다면 곱게 농익은 맛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또 오랜 숙성을 거쳐 나오더라도, 최소 2~3년 이상 셀러에 두었다가 따는 것이 좋다.
좋은 생산자가 만든 빈티지 샴페인은 오픈한 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실 것을 추천한다. “보통 하루 전 오픈하곤 해요. 조금 따라서 테이스팅한 뒤 다시 캡이나 스토퍼로 막아 조금씩 공기를 주입합니다. 천천히 브리딩해주는 거죠. 훨씬 맛있어요. 많은 이가 샴페인은 버블이 없어질까 봐 따자마자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다음 날에도 버블이 짱짱하게 살아 있어요.”
얘기를 나누는 동안 글라스에 따라놓은 샴페인의 버블이 몽글몽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흔히 보던 그 모습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진 건 기분 탓이었을까. 문득 영화 <안녕, 헤이즐>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헤이즐과 어거스터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샴페인을 마실 때 “오늘 두 사람의 잔에 세상 모든 별을 담았다”며 돔 페리뇽을 소개하던 레스토랑 서버의 대사. 그 별을 품에 담는 것만으로도 언제 어디서나 샴페인을 즐길 이유는 충분하다. 테루아의 풍미를 가득 머금은 채 오랜 시간을 버텨온 빈티지 샴페인이라면 더더욱.





왼쪽부터 앙리 지로의 아르곤 2002 빈티지, 크리스탈 루이 로드레 1996 빈티지, 크루그 클로 드 메닐 브뤼 블랑 드 블랑 2002 빈티지, 자크 셀로스 밀레짐 2008 빈티지, 떼땡저 꼼떼 드 샴페인 블랑 드 블랑 1976 빈티지. 모두 이준혁 대표가 아끼는 샴페인으로 직 셀러에서 숙성 중이다.

 

에디터 이정주(jjlee@noblesse.com)
도움말 이준혁
사진 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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