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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09

요즘 샴페인

요즘 샴페인을 마신다는 건, 변화와 진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현재와 마주하는 일이다.

전 세계 와인 생산자가 부러움을 듬뿍 담아 상업적으로 성공한 와인의 전형으로 샹파뉴산 샴페인을 손꼽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다. 하지만 어느새 상황이 달라져 샴페인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 와인을 즐기는 사람 대부분은 프로세코 와인 정도면 흡족해한다. 필자의 나라에선 이제 영국산 스파클링 와인도 샴페인으로 용인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변화는 샹파뉴 지방에서 일어났다. 무엇보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크다. 사실 모든 와인 생산지가 점점 뜨거운 여름을 나고 있지만, 탄산 효과를 위해 베이스 와인의 산도를 높게 유지해야 하는 이 지역에선 중요한 문제가 된다. 평균 산도가 낮아져 과거보다 농익은 포도 맛의 샴페인이 늘어난 것. 하지만 꼭 나쁘다고만 할 순 없다. 수확량을 최대로 뽑아내기 위해 덜 익은 포도까지 모조리 수확한 뒤 베이스 와인과 최종 숙성된 와인에 설탕을 첨가하는 옛 제조 방식은 이제 한물간 듯 보인다. 요즘 샴페인은 나무에서 시간을 두고 충분히 익혀 진짜 개성을 확보한 포도로 만들 확률이 높다.
포도밭에서 새로운 생명체(지렁이)를 발견하게 된 것도 긍정적 변화로 여겨진다. 과거 이 지역의 줄지어 선 포도나무 사이엔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었다.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파란색 비닐 조각은 볼 때마다 눈에 거슬릴 정도였다. 다행히(!) 요즘은 환경을 염려한 지속 가능한 농법의 적극적 보급으로 지피 작물과 유기 농법을 적용하거나,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재배한 포도를 만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상당히 습한 기후대에서는 채택하기 쉽지 않기에 그들의 시도가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빠르게 진행되는 또 다른 변화는 소규모 농장주가 기구를 조직하고 힘을 합쳐 움직인다는 점이다. 샹파뉴 지방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드는 1만6000명의 농장주 사이엔 항상 정치적·경제적 분열이 존재했다. 한때 둘로 확연히 갈라지기도 했으나 대형 샴페인 하우스가 포도원을 사들이면서 경계선이 흐려졌다. 이 지역의 소규모 농장주는 보통 포도를 한곳에 팔거나 협동조합에 넘기는데, 최근 직접 고유의 샴페인을 만드는 실력자가 속속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레콜탕 마니퓔랑(Recoltant Manipulant)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해 매년 4월 신제품을 선보이며 전 세계 구매자와 언론을 끌어들인다. 샴페인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논빈티지 혼합주와 비교해 이들의 와인은 매해 뚜렷한 차이를 보이기에 특히 신선한 기삿거리에 목마른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덕분에 명성과 함께 몸값이 치솟아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의 저렴한 가격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샴페인 생산은 대단히 자본집약적 사업이다. 스틸 와인보다 양조 과정이 복잡하고 숙성 기간이 길어 설비는 물론 저장고를 마련하는 데 큰 비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많은 농장주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포도 수확량 일부를 계속 외부에 판매할 수밖에 없다. 저명한 생산자의 경우 그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에 과거 주조한 와인(리저브 와인)을 첨가해 복합미를 완성하지만 소규모 농장주는 그만큼 와인 비축량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구보다 테루아가 명확한 와인을 만들 수 있다. 필리포나, 빌카르 살몽, 크루그 같은 유명 샴페인 하우스에서도 단일 포도원의 포도로 만든 샴페인을 보유하고 있지만, 소규모 농장주는 샹파뉴에서도 아주 작은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을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이들이 만든 샴페인 뒤 라벨에 포도 재배 지역과 수확 시기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블렌딩의 미덕을 강조한 전통적 샴페인 제조법을 거스르는 사례가 늘어 단일 품종 포도로 만든 샴페인의 종류가 다양해진 점도 흥미롭다. 과거에도 샤르도네 100%의 블랑 드 블랑을 소비했지만, 이제는 피노 누아 또는 피노 므니에로만 사용한 샴페인, 아르반이나 프티 메슬리에처럼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특산 포도로 만든 샴페인도 종종 볼 수 있다. 위대함보다는 참신함으로 승부하는 와인이지만, 그럼에도 무사안일한 자세로 일관하던 이 지역에서 진정한 혁신과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최근에는 샴페인 특유의 공격적 탄산보다 부드럽고 오래가는 거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 위해 일부 샴페인 하우스와 농장주는 병에서 2차 발효를 일으키는 이스트와 설탕 첨가량을 다소 줄이는 추세다. 샴페인 양조 시 거꾸로 세워놓은 병에 쌓인 침전물을 제거하고 와인과 설탕의 혼합물로 다시 병을 채우는 과정이 있다. 과거엔 법적인 최소 알코올 함량(당시는 7%, 현재는 9%)을 맞추기 위해 리터당 첨가물이 12g에 달했는데, 요즘은 앞서 말했듯 더욱 잘 익은 포도를 얻을 수 있기에 리터당 7g을 유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특정 농장주 사이에 첨가물을 더 조금, 심지어 아예 넣지 않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흔히 ‘도자주 제로’라고 표현하는데, 첨가물의 양이 적은 경우 숙성으로 보완할 수 있어도 첨가물이 전혀 없는 와인은 편하게 마시기엔 조화롭지 못하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기후변화로 인해 농익은 포도를 수확한 덕에 무탄산 코토 샹프누아(Coteaux Champenois)에 대한 지역적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도 눈여겨볼 것. 지난 6월 샹파뉴 지방을 집중적으로 돌아다니는 동안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로 만든 훌륭한 스틸 와인을 여러 종 접했다. 로제 샴페인의 귀환도 눈에 띄었는데 더 이상 상업적 부록처럼 함부로 취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뒤 라벨에 적힌 작은 글귀로든, 숫자로든, 혹은 QR코드로든 병 속에 담긴 정보를 소비자와 공유할 준비가 된 샴페인 생산자 수가 늘어난 것도 환영할 만하다. 물론 이 모든 변화는 결국 샴페인이 과거 어느 때보다 훌륭한 품질을 자랑한다는 사실로 집약된다. 

 

에디터 이재연(jyeon@noblesse.com)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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