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의 미래를 향한 김주원의 시선 | Nobl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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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의 미래를 향한 김주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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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무용수에서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다시 국립발레단의 중심에 선 김주원의 지금을 묻다.

오버사이즈 실루엣의 미니멀한 톱과 시어한 롱스커트 모두 SPORTMAX, 퍼를 장식한 스트랩 샌들 힐 FENDI, 다이아몬드 (총 15.63캐럿)를 파베 세팅한 더블 로우 네크리스, 다이아몬드(총 1.15캐럿)를 파베 세팅한 링 모두 버터플라이 컬렉션 GRAFF

김주원에게 국립발레단은 가장 치열했던 젊은 시절을 보낸 무대이자 발레리나로서 꿈을 키운 곳이다. 15년간 수석 무용수로 활동한 뒤 단체를 떠나 독립적으로 무대를 이어가며 교육과 창작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고, 부산오페라하우스 발레단 예술감독과 대한민국발레축제 대표 겸 예술감독을 맡으며 작품과 예술가를 이끄는 경험을 쌓았다. 그렇게 무대 안팎을 두루 거쳐 제8대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다시 국립발레단에 돌아온 지금, 무대 위에서 익힌 집요함과 섬세함은 이제 자신의 춤을 넘어 국립발레단의 미래를 향하고 있다.

15년 가까이 무용수로 몸담은 국립발레단에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돌아왔습니다. 처음 제안받았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당시 부산오페라하우스 발레단 예술감독과 대한민국발레축제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거의 하루 전날 임명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 날 오게 됐죠. 국립발레단은 15년이라는 제 젊은 시절을 오롯이 보낸 곳이고, 이후 다시 15년 가까이 밖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돌아온 셈이잖아요. 행복하고 감격스러운 한편, 책임감도 크게 느꼈죠. 제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보낸 곳에 전혀 다른 역할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참 묘했어요.

무용수 시절과 비교할 때 국립발레단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무용수는 어느 정도 이기적이어야 해요. 아주 작은 몸의 변화까지 살피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거든요. 특히 발레는 사소한 불편함 하나에도 동작이 달라질 만큼 섬세한 예술이니까요. 저 역시 그렇게 35년을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저보다 단원들의 몸이 훨씬 중요해졌어요. 한 명 한 명을 눈과 마음에 담으면서 그들의 장점과 부족한 부분을 세심하게 살피곤 하죠. 무용수는 애정을 담아 자신을 바라봐주고, 자기 일처럼 고민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큰 힘이 되거든요. 저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제 춤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후배들을 위해 에너지를 쓰는 거죠. 그런데 그것도 참 행복해요.

국립발레단이 쌓아온 전통 중 이어가고 싶은 것과 새롭게 더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요? 국립발레단이 곧 한국 발레의 역사라고 생각해요. 역대 단장님들이 쌓은 전통과 성취를 잘 지켜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그래서 처음부터 제 색깔을 보여주기보다 지금까지 국립발레단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고 배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뿌리가 튼튼하고 기본이 확실할수록 새로운 시도도 더 단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잖아요. 그 기반을 지키면서 지금 시대와 만나는 예술을 고민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제게는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가 함께함으로써 누군가가 조금 더 따뜻해지고 성장하면 좋겠어요.

미러와 프린지 디테일의 블랙 실크 드레스 FENDI,
다이아몬드(총 15.63캐럿)를 파베 세팅한 더블 로우 네크리스,
다이아몬드(총 4.99캐럿)를 파베 세팅한 이어링,
다이아몬드(총 1.15캐럿)를 파베 세팅한 링 모두 버터플라이 컬렉션 GRAFF

그런 가치관의 바탕에는 무용수로서 쌓아온 시간도 있을 듯합니다. 완벽을 향해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좌절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넘어왔나요? 저는 좌절할 때는 충분히 좌절하는 편이에요. 현실을 인정하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들여다보죠. 대신,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스스로 납득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면 이후의 결과는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이거든요. 그렇게 마주한 좌절은 실패라기보다 다음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레슨이 돼요. 어떤 길이 내게 맞는지 아닌지를 알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적당히 해보고 돌아서면 그것이 정말 내 길이 아니었는지 알 수 없잖아요. 돌이켜보면, 이런 태도는 어린 시절부터 발레를 하며 자연스럽게 익힌 삶의 방식인지도 모르겠어요.

무용수의 삶에는 흔히 ‘정점’과 그 이후를 나누는 시선이 따라붙습니다. 긴 무대 경험을 거친 지금, 그 구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저는 무용수의 삶을 ‘올라간다’, ‘내려간다’고 표현하는 게 조금 슬퍼요. 물론 최고 체력과 테크닉을 발휘하는 시기가 있고, 클래식발레가 ‘젊음의 예술’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죠.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났다고 해서 한 사람의 예술까지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 역시 어느 순간 <지젤>의 마지막 무대를 치렀고, <돈키호테>와 <호두까기 인형>에도 하나씩 이별을 고했어요. 당시에는 그것이 마지막일지 몰랐지만요. 그래서 어떤 무용수가 그 시기를 지날 때 ‘이제 내려가는 중’이라는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클래식발레와 조금씩 이별하며 새로운 춤을 찾아가는 또 하나의 챕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국립발레단 역시 그런 무용수들에게 다음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면 좋겠고요.

그럼에도 클래식발레를 오랫동안 사랑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요? 클래식발레가 태어난 시대를 생각하면 가끔 ‘신이 내린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지젤>과 <백조의 호수> 같은 작품들을 보면 그 시대의 예술은 자연에서 출발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요즘, 그런 예술을 배우고 표현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감각을 다시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또 클래식은 빨리 익힐 수 있는 예술도 아니에요. 오래 기다리고, 숙성하고, 반복해서 몸에 새겨야 비로소 표현할 수 있죠. 그 시간이 사람을 굉장히 겸허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클래식발레는 기다리는 법과 깊어지는 법을 알려주죠. 그래서 저는 그 앞에 서면 여전히 겸손해지곤 해요.

앞으로 국립발레단이 어떤 분위기의 단체가 되기를 바라나요? 앞서 말했듯이 단원들이 ‘나는 사랑받는 무용수다’라는 마음으로 춤추면 좋겠어요. 제 시선과 노력이 닿아 충분히 보살핌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하고요. 하지만 발레단은 무용수만으로 완성되는 곳이 아니에요. 발레 마스터, 사무실 직원, 무대 스태프까지 정말 많은 사람이 하나의 공연을 위해 움직이죠. 그래서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이곳에서 자신의 역할과 존재의 의미를 충분히 느끼며 일하면 좋겠어요. 결국 좋은 무대는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아요. 서로를 존중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생기는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가 무대에 고스란히 담겨 관객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몰입하고,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공연으로 이어지는 발레단을 만들고 싶어요.

브라운 더블브레스트 재킷과 페이즐리 실크 롱 드레스 모두 ETRO, 다이아몬드(총 1.15캐럿)를 파베 세팅한 버터플라이 컬렉션 링 GRAFF

국립발레단의 예술적 방향은 어떻게 그리고 있나요? 국립발레단은 한 가지 색만 가져서는 안 되는 단체예요. 이 정도 규모의 발레단이라면 클래식발레를 충분히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무용수들이 최상의 몸과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클래식발레 레퍼토리는 반드시 필요하고요. 전체 레퍼토리의 60~70%는 클래식의 기반을 지키되, 나머지는 다양한 창작과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어야 해요. 동시에 국립발레단만이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작품도 만들어가야죠. 시대보다 한 걸음 앞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역시 예술의 역할이니까요. 다만 지금 당장 ‘김주원표 국립발레단’을 화려하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우선은 무용수들의 컨디션과 기량, 연습 과정의 기본부터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오히려 국립발레단에서 ‘김주원’이라는 이름이 사라질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뒤에서 작품과 무용수들이 충분히 빛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고 싶어요.

취임과 동시에 이미 예정된 여러 무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남은 하반기 시즌은 어떻게 채워갈 계획인가요? 10월 13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되는 정기 공연 <지젤>을 시작으로 11월에는 <카멜리아 레이디>, 12월에는 <호두까기 인형>을 선보이고, 그 사이 지역 공연도 계속 이어집니다. 제가 8월에 취임한 만큼 올해는 새로운 계획을 서둘러 보여주기보다 이미 예정된 무대를 충실히 이어가면서 국립발레단의 현재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이에요. 제가 떠나 있던 15년 동안 달라진 발레단의 호흡과 템포를 익히고, 그 안에서 앞으로 더 발전시켜야 할 부분을 차분히 살펴보려고요. 하반기는 말 그대로 공연으로 시작해 공연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될 것 같아요. 개인적인 계획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당분간은 대부분을 국립발레단과 함께하려 합니다.

새로운 역할로 국립발레단과 다시 마주한 요즘, 가장 기대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빨리 내일 아침이 오면 좋겠어요. 발레단에 가고 싶어서요.(웃음) 사실 저는 적당히 거리를 두거나 쿨하게 사는 사람은 아니에요. 꽤 적극적이고 뜨겁고, 무엇이든 마음을 많이 쓰는 편이죠. 어쩌면 조금 촌스러울 만큼 열렬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다만 예술에 대해서는 여전히 예민하고 날카로워요. 쉽게 타협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지점도 분명히 있고요. 다만 그 날카로움은 누군가를 향하기보다 저 자신에게 더 많이 향하는 것 같아요. 사람에게는 따뜻하되, 예술적인 방향은 중심을 확고히 지키는 것. 지금은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발레단에 가는 게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