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프레도 람의 세계
탈식민과 디아스포라를 비롯한 동시대 시선 속에서 20세기 모더니즘의 경계를 확장한 예술가 위프레도 람의 작업이 새롭게 읽히고 있다. 국내 첫 대규모 판화전 <위프레도 람: 새로운 신세계>에 맞춰 그의 유산을 이어가는 스테판 람과 에스킬 람을 만나 여러 세계를 가로지르며 구축한 독자적 예술과 현재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20세기 모더니즘의 한복판을 가로질렀지만, 어느 하나의 미술사적 범주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았던 위프레도 람. 쿠바에서 태어나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를 오간 그는 유럽 아방가르드 언어와 아프로-쿠바 문화, 신화와 자연, 시를 자신만의 시각언어로 변형했다. 한때 피카소와 초현실주의의 영향 아래 설명되던 그의 작업은 오늘날 모더니즘의 경계를 확장한 독자적 실천으로 다시금 읽히고 있다. 이러한 재평가의 중심에는 작품과 아카이브를 보존하는 동시에 새로운 연구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위프레도 람 재단이 있다. 장남 스테판 람(Stèphane Lam)은 홍콩을 거점으로 아시아를, 차남 에스킬 람(Eskil Lam)은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을 담당하며 아버지의 유산을 동시대적 시선 속에서 확장해간다. K&L 뮤지엄의 국내 첫 대규모 판화전 <위프레도 람: 새로운 신세계>를 계기로 두 사람을 만나 가족의 기억 속 위프레도 람과 현재 다시 쓰이는 그의 예술적 유산에 대해 물었다.
위프레도 람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그를 어떤 예술가로 소개하고 싶은가요?
에스킬 하나의 장소나 전통에 속하기를 거부한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는 서로 다른 문화적 경험을 깊이 의식하면서도 이를 완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변형했습니다. 그의 작업 안에는 유럽 모더니즘과 아프로-쿠바 문화, 초현실주의, 신화, 자연, 시 등이 공존하지만 어느 하나를 그대로 옮겨놓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경험으로부터 새로운 시각언어를 창조한 거죠. 그래서 저는 그를 ‘분류 불가능한, 눈부신 시각 시인’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두 분에게 람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모습은 무엇인가요?
에스킬 1970년대 초 함께 떠난 아시아 여행입니다. 한 달 넘게 인도와 스리랑카, 네팔을 여행했습니다. 아버지는 영상 촬영하는 것을 좋아하셨고, 저는 조수 역할을 했습니다. 스테판 이탈리아 작업실에서 아버지와 나눈 긴 대화가 기억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게 하고 싶어 하셨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한국 전시는 판화를 중심으로 합니다. 위프레도 람의 예술에서 판화는 어떤 의미인가요?
에스킬 판화는 람의 작업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결코 회화에 부차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시는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성취였고, 그래서 아티스트 북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 안에서 시인의 언어와 아버지의 드로잉이 만났죠. 이는 문학을 이미지로 설명하는 삽화가 아니라 이미지와 텍스트가 서로를 비추고 확장하는 진정한 대화였습니다. 스테판 문학과 시는 람에게 결코 주변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술가와 시인, 지식인이 끊임없이 생각을 주고받는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게라심 루카, 르네 샤르, 알랭 주프루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과의 협업에서도 텍스트와 이미지는 어느 한쪽에 종속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관계가 그의 작업이 지닌 모호함과 풍요로움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위프레도 람을 다시 조명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에스킬 모더니즘과 근현대미술사를 유럽이나 북미의 시각만으로 서술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람은 언제나 모더니즘의 일부였지만, 동시에 그 경계에 도전했습니다. 정체성, 이주, 실향, 문화적 만남, 서로 다른 지식 체계의 관계처럼 그의 작업이 제기한 질문도 매우 동시대적입니다. 그는 이 질문에 단순한 답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 점 때문에 지금도 우리에게 강하게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최근의 관심은 ‘재발견’이라기보다 처음부터 그의 작업에 존재했던 면모를 이제야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에 가깝습니다.
위프레도 람은 오랫동안 피카소와 큐비즘, 초현실주의의 관계 속에서 설명돼왔습니다. 최근 가장 크게 달라진 시선은 무엇인가요?
스테판 람을 더 이상 유럽 아방가르드의 ‘위성’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쿠바의 피카소’나 또 한 명의 초현실주의자로 설명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큐비즘과 초현실주의를 모델이 아닌 도구로 활용했으며, 글로벌하고 탈식민적 모더니즘의 주체였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앞으로 위프레도 람의 유산을 어떻게 이어가고 싶은지, 또 미래 관람객에게 어떤 예술가로 남기를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스테판 앞으로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예술가로 남았으면 합니다. 다음 세대가 반복하는 고정된 해석으로 굳어지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에스킬 우리 역할은 사람들이 계속 람을 새롭게 발견하는 조건을 지키는 것입니다. 아카이브를 발전시키고, 진지한 학술 연구를 지원하며,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그의 작업에 접근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와 작가, 연구자들이 그의 작업과 계속 관계 맺도록 하는 일도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