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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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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의 1970년대 지은 빌라에 사진과 디자인, 미식 그리고 사람이 모였다. 위 아 오나가 이동하는 다이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선보인 까사 이데알.

야외에는 헤이의 ‘팰리세이드 코드(Palissade Cord)’ 체어를 놓았다.
미식 경험을 선사하는 야외 정원 테이블.

매년 여름,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아를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사진 축제인 ‘아를 국제 사진 축제(Les Rencontres de la photographie d’Arles)’가 열려 도시 전체가 전시장이 되고 역사적 건축물과 골목, 오래된 산업 시설까지 현대사진을 품은 문화 공간으로 거듭난다. 매년 전 세계 예술 관계자와 컬렉터의 발길이 이곳을 향하지만, 올해는 1970년대 지은 빌라가 미술관과 갤러리보다 더 크게 주목받았다.
2026년 7월 문을 연 까사 이데알(Casa Ideale)은 겉보기엔 게스트하우스이자 레스토랑이지만, 사진 전시장이기도 하다. 한 가지 용도로만 이곳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내부에는 카를라 소차니 컬렉션의 사진 작품이 걸려 있고, 피에르 샤포, 조 콜롬보, 에토레 소트사스, 가에타노 페세 등 거장의 가구가 놓여 있다. 저녁이 되면 포르투갈 출신 셰프 길 노게이라가 선보이는 다이닝이 시작되고, 투숙객은 관람객이라기보다 실제로 그 공간에 사는 사람처럼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숙박과 전시, 디자인, 미식이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 공간인 셈이다. 이 프로젝트는 노마딕 컬리너리 스튜디오 위 아 오나(We Are Ona)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예술을 환대하는 방식’을 집이라는 형태로 확장한 결과다. 위 아 오나 창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카 프론자토(Luca Pronzato)가 이 공간을 이끌고 있다. 소믈리에 출신인 그는 지난 수년간 전 세계를 무대로 셰프와 디자이너, 건축가, 예술가를 연결하는 다이닝 프로젝트를 기획해왔다. 샤넬, 생 로랑, 자크뮈스 등 브랜드는 물론 밀란 디자인 위크와 아트 바젤, 세계 각지의 문화 행사에서 100회가 넘는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다이닝을 단순한 식사가 아닌 몰입형 문화 경험으로 바꾸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까사 이데알을 통해 루카는 ‘이동하는 레스토랑’이라는 위 아 오나의 정체성을 더 긴 시간 머물 수 있는 형태로 발전시켰다. “우리는 그동안 며칠간 존재하는 레스토랑을 만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오래 지속되는 경험이 가능할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기존 공간에 레스토랑을 만드는 대신 호스피탤리티 자체가 하나의 매체가 되는 집을 설계하기로 했습니다.” 음식과 디자인, 예술, 그리고 사람이 만나는 본질은 유지하되 단 하룻밤의 저녁 식사가 아닌 며칠간 체류하며 경험하도록 계획한 것이다.
출발점은 호텔을 짓는 대신 기존 건축물을 발견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루카 프론자토가 선택한 장소는 아를 외곽에 자리한 빌라 뱅크(Villa Bank). 1970년대 프랑스 건축가 에밀 살라가 설계한 이곳은 프랑스 ‘20세기 문화유산(Patrimoine du XXe siecle)’으로 지정됐으며, 풍경을 향해 열린 구조 속 방과 복도, 거실이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된다. 프론자토는 인터뷰에서 공간을 처음 마주한 순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빌라 뱅크는 놀라울 만큼 관대한 공간이었습니다.
에밀 살라는 유려하게 이어지는 공간과 부드러운 곡선, 실내와 실외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구조로 이곳을 설계했어요. 그래서 이 건축물은 자연스럽게 사람을 한 곳에 모으고, 공간을 오가게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이끕니다.” 그래서 그는 일반 호텔의 인테리어 스타일링이 아닌 빌라 전체를 하나의 살아 있는 컬렉션처럼 큐레이션했다. 아내 클라라 코르네, 그리고 다운타운+ 갤러리의 루나 라파누르와 함께 공간을 구성했는데, 피에르 샤포의 원목 다이닝 테이블과 의자, 조 콜롬보의 모듈형 체어, 장 프루베의 침대, 가에타노 페세의 의자, 에토레 소트사스의 가구와 조명 등 디자인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 시대를 초월해 하나의 공간 안에서 공존한다. 여기에 캐나다 조명 브랜드 보치와 덴마크의 HAY 가구가 더해지며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와 함께 소차니 재단과 협업해 개관전으로 준비한 <프롤로그(Prologue)>를 통해 카를라 소차니가 수십 년간 수집한 사진 컬렉션 중 67여 점을 이곳에서 선보였다. 헬무트 뉴턴, 어빙 펜, 사라 문 등 패션과 다큐멘터리 사진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벽면을 채웠다. 이로써 투숙객은 아침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작품을 만나고, 거실 소파에 앉아 거장의 사진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금속 벽난로 옆 가에타노 페세의 ‘펠트리(Feltri)’ 체어와 헤이의 옐로 모듈러 소파.
벽에는 헬무트 뉴턴, 어빙 펜, 사라 문 등 거장들의 작품이 가득하다.
스카우트 디자인 스튜디오의 ‘퐁피두(Pompidou)’ 라탄 체어와 가에타노 페세의 화병, 에토레 소트사스의 캐비닛과 거울, 보치 조명이 어우러진 공간.

최근 하이엔드 호스피탤리티는 아름다운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그 장소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경험하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예술가 레지던시와 아트 컬렉션, 셰프 협업, 지역 문화 프로젝트를 호텔의 프로그램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이러한 흐름의 일환이다. 그러나 까사 이데알은 서로 다른 콘텐츠를 한 곳에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과 디자인, 사진, 미식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각 요소가 하나의 집에서 서로의 경험을 완성하도록 만들었다. 호스피탤리티에 대한 프론자토의 철학은 완벽하게 연출된 공간이지만 고급스러운 서비스가 아니다. ‘멋진 환대’란 오히려 편안하게 머물도록 하고 공간과 작품,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관계 맺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직업 특성상 많은 경험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고급 자재, 오브제로 완벽하게 구성된 곳이 아니라 개인적인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까사 이데알은 외부의 자연과 환경을 고려해 설계된 건축물 안에서 의미 있는 디자인을 직접 사용하며, 예술 작품을 일상의 풍경으로 받아들이고, 식탁에서 낯선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는 모든 과정을 환대의 일부로 고려했다. 좋은 공간에서 실제로 살아보는 경험은 디자인과 예술품을 소유하거나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경험을 만들어내는 매개체로 이해하도록 만든다. 첫 번째 까사 이데알이 아를에서 시작된 것도 이러한 철학과 맞닿아 있다. 세계적인 아를 국제 사진 축제가 열리는 동안 세계 각국의 사진가와 큐레이터, 컬렉터, 디자이너가 도시를 찾고, 도시 전체가 사진과 예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활기를 얻는다. 그 한가운데에서 까사 이데알은 단순한 숙소를 넘어 사람들이 만나고 머물며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만들어가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아를이 가장 활기를 띠는 여름 동안 이곳에서는 전시와 다이닝, 레지던시가 도시의 리듬과 함께 이어진다. 아를을 시작으로 까사 이데알은 건축적 개성이 뚜렷한 여러 장소로 확장될 예정이다. 중요한 점은 동일한 공간을 복제하지 않고, 각 장소가 지닌 역사와 건축, 지역 문화,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창작자와 협업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브랜드가 여러 곳에 똑같이 생기지 않고, 같은 철학을 다른 장소의 언어로 번역해 매번 새로운 작업으로 즐거움을 선사하길 기대해본다.
이번 프론자토의 프로젝트는 오늘날 하이엔드의 기준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엇을 소유하는지보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어디에 머무는지보다 누구와 어떤 기억을 만드는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위 아 오나가 오랫동안 다이닝을 통해 탐구해온 것도 바로 그 기억과 관계의 가치였다. 이제 그 경험은 식탁을 넘어 집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새로운 럭셔리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삶이 아니다. 더 좋은 문화와 공간 속에 살아보고, 더 오래 기억할 만한 시간을 보내는 삶에 가깝다. 그래서 프론자토는 까사 이데알을 호텔이라 부르기를 주저한다. 그렇다고 갤러리나 레지던시로 정의하기에도 부족하다. 그의 표현처럼 이곳은 ‘그 모든 것의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는 ‘문화적 집(cultural house)’이다. “나는 쉽게 정의되지 않는 장소를 좋아한다”라는 프론자토의 이 한마디는 까사 아이디얼 전체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 양윤정(프리랜서)
  • 에디터 김수진
  • 사진 위 아 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