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이야기
신록의 계절, 정원은 가장 깊은 얼굴을 드러낸다.
무릇 ‘정원’을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식물이 있는 장소를 상상한다. 그러나 정원이라는 존재는 그보다 훨씬 깊다. 그 안에는 인간과 자연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 스며 있으며, 이는 곧 단순한 물리적 장소를 넘어 정원을 문화와 철학, 감정이 겹겹이 쌓인 공간으로 확장한다.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구성하고 가꾼 정원은 결국 인간의 해석을 품은 자연이다. 그렇기에 정원은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왔는지를 비추는 거울이자 시대와 사회의 가치관과 미학이 응축된 풍경이 된다.
<마리안네의 일곱 계절 정원 일기>는 ‘20세기 정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칼 푀르스터의 정원을 이어받은 딸 마리안네 푀르스터가 20년에 걸쳐 가꾼 시간을 담은 기록이다. 독일 포츠담 북서쪽, 보르님 평야에 자리한 ‘칼 푀르스터 정원’은 지금도 가드너들의 순례지로, 마리안네는 매일같이 이곳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며 그날 눈과 마음에 담은 정원의 표정을 세심하게 일기로 남겼다. 초봄부터 봄, 초여름과 한여름, 가을과 늦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일곱 계절을 따라 흐르는 이 기록은 정원 곳곳을 밝히는 식물과 그 사이에 기대어 사는 동물, 그리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겹씩 포개져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 곁에서 정원사로서 기초를 다지고, 벨기에 브뤼셀에서 30여 년간 정원 디자이너로 활동한 마리안네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정원을 지키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간을 가꾸었다. “아버지가 오래전에 만든 이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의 과제였다”는 그의 말처럼 이 정원은 마리안네가 평생에 걸쳐 완성한 하나의 작품이기도 하다.
에버랜드 식물 총책임자 이준규의 에세이 <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 국내 최대 규모인 테마파크 내 크고 작은 정원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그는 정원을 ‘시(詩)’에 비유하며, 인간의 감정과 시간이 스며드는 공간으로 바라본다. 울타리를 걷어내고 사람과 꽃이 자유롭게 마주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등 사람과 식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온 그의 시도는 정원이 통제가 아닌 상호작용 아래 이루어지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결국 이 책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때 드러나는 정원의 가치를 환기하며, 정원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속도와 감각을 다시금 일깨운다.
한국 정원 연구가 신지선의 <당신 곁의 한국 정원>은 ‘정원은 식물로 예쁘게 가꿔진 곳’이라는 익숙한 정의에서 한 걸음 물러날 때 비로소 한국 정원의 다채로운 매력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오늘날 남아 있는 정원 유적 대부분 조선시대 때 조성한 것으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동안 정원이라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치던 30곳을 따라 돌과 나무, 물이 빚어낸 풍경 이면에 깃든 실제 공간을 향유했던 이들의 의도와 안목, 삶의 태도를 천천히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서울 경복궁과 창덕궁부터 담양 명옥헌, 경주 독락당, 구례 운조루 등 전국 곳곳의 정원에 스며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 고요한 산책이 시작된다.
- 에디터 손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