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세계가 머무는 곳
눈을 사로잡는 찬란함과 그 안을 파고들수록 드러나는 묘한 균형. 토모카즈 마츠야마가 펼쳐 보이는 새로운 가능성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까?

토모카즈 마츠야마의 그림은 동서양 미술사부터 오늘날의 시각 문화까지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온 이미지가 한 화면에 모인다.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이 선명한 색과 촘촘한 문양을 따라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이전에는 없던 풍경을 만들어낸다. 마츠야마는 각각의 차이를 하나로 섞어 지우는 대신 저마다 흔적을 간직한 채 한 화면 안에 머물게 한다. 그렇게 완성한 장면은 현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이상하리만큼 익숙하다. 수많은 문화와 가치가 끊임없이 교차하면서도 각자의 모습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가는 오늘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마츠야마가 그려온 것은 서로 다른 것이 각자의 모습 그대로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인지도 모른다. 오는 9월 한국 첫 개인전을 앞둔 토모카즈 마츠야마와 그가 그려온 공존의 풍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여러 경험이 그러데이션처럼 겹치면서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20대 초반에는 스노보더를 꿈꿨지만 큰 부상을 당하면서 그 길을 포기해야 했고, 이후 2002년 뉴욕으로 건너가 대학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디자인은 사람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주어진 목적과 기능에 맞춰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잖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제 안에서 시작된 질문으로 사회와 마주할 수 있는 또 다른 표현의 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언어는 문화나 맥락, 각자의 배경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시각언어는 말보다 빠르고 직관적으로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죠. 저에게 예술은 말로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생각이나 감정에 형태를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다시 누군가에게 질문을 건네는 방식입니다. 돌이켜보면 예술가가 된 것은 어느 날 내린 결단에 의해서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전환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작품에는 일본 에도 시대의 우키요에부터 서양 고전 회화 그리고 현대 대중문화 이미지까지 폭넓은 레퍼런스가 등장합니다. 이들을 한 화면에 불러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이미지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 현실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처럼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다 각 이미지가 지닌 맥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 화면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각기 다른 것들이 한자리에 모일 때 오히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복잡한 모습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이미지가 섞여 있지만 결국 하나의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나요? 우선 모든 요소를 동등하게 바라보고 화면 전체를 관통하는 조형적 논리에 따라 다시 배치합니다. 시대와 문화가 다른 모티브라도 색채와 윤곽, 밀도, 배치의 관계를 조정하면 연속적 공간으로 만들 수 있죠. 그렇다고 각 이미지의 출처나 차이까지 지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마다 다른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해요. 저는 그 안에 복잡함과 질서가 함께 존재하는 상태를 만들고 싶습니다. 작업할 때는 머릿속으로 구상한 모습과 실제 캔버스를 계속 비교하면서 큰 흐름부터 세부적인 것까지 조율합니다. 가까이에서는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고, 멀리서는 전체가 하나의 장면으로 보일 수 있게 하죠. 그렇게 흩어져 있던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순간 작품이 완성됩니다.
경계를 나누지 않는 시선은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성장한 경험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자란 덕에 자연스럽게 어느 한쪽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여러 관점을 함께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 작업을 통해 특정한 정체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계나 가치의 차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바라보는 시선에 가깝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님이 만든 풍경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유토피아라고 말한 적이 있죠. 연작 ‘Fictional Landscape’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저에게 유토피아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향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시대가 각자 차이와 긴장을 잃지 않은 채 한곳에서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에 가깝습니다. 회화를 통해 현실에서는 아직 성립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내고, 이를 우리가 세계를 상상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오른쪽 Miles Ahead More, Acrylic and Mixed Media on Canvas, 91 ×91cm, 2025.
작년에 도쿄 아자부다이힐스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First Last>에서는 그렇게 만들어온 세계가 전시장 전체로 확장된 듯했습니다. 공간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전시는 작품이 공간과 대화하고, 여기에 관람객의 움직임과 시선이 더해져 새로운 관계가 피어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벽과 바닥, 작품과 작품 사이의 거리부터 눈길이 머물고 이동하는 동선까지 세밀하게 조율합니다. 개별 작품들이 홀로 존재하는 데서 나아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며 하나의 세계를 열어 보이고자 하는 것이죠. 저에게 공간은 작품을 설명하는 무대가 아니라 관람객과 작품이 만나 새로운 방식으로 교감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오는 9월 리안갤러리에서 작가님의 한국 첫 개인전이 열립니다. 전시를 앞둔 소감을 들려주세요. 최근 한국 미술계를 보면 세계적 흐름을 빠르게 받아들이면서도 고유의 문화와 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아트 페어와 미술관, 갤러리, 컬렉터의 활동도 활발하고, 미술이 그 안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여러 분야로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가는 점도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이처럼 역동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되어 무척 뜻깊게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 <Homing In Dedicated>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homing in’은 과거의 장소나 하나의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것들에 다시 한번 집중한다는 의미에 가까워요. 제 작업 방식은 뉴욕에서 형성되었지만 아시아의 문화적 유산과 시각적 기억은 여전히 깊은 뿌리로 남아 있습니다. 물리적 거리를 두고 살아오면서 그 기억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조금씩 달라져왔고요. ‘dedicated’에는 그렇게 변화해온 뿌리를 지금의 자리에서 들여다보고, 앞으로도 창작을 통해 계속 탐구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이어온 고민과 표현을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보다 오랫동안 쌓아온 작품 세계를 지금의 감각에 맞게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 의미를 두고 있어요. 그 변화는 눈에 보이는 형식은 물론, 작품에 담긴 생각과 관람객에게 전달되는 방식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특히 ‘Homing In Dedicated’, ‘But Beautiful Misty’ 등 신작에는 말을 탄 인물이 자주 등장하죠. 기마상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말을 탄 인물의 모습은 시대나 문화, 사회구조에 따라 권력이나 정복, 이동 혹은 자유처럼 서로 다른 의미를 짊어져온 미술사 속 이미지입니다. 제 작품에서는 그 역사적 도상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인물과 풍경을 겹쳐놓습니다. 이를 통해 오랜 시간 이어져온 고정된 의미를 해체하고 오늘날의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탈바꿈시키고자 합니다.
그처럼 익숙한 이미지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작품 앞에서 관람객이 무엇을 발견하길 바라시나요? 작품을 하나의 정답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고 다시 멀어지기도 하면서 화면 속에 존재하는 관계와 긴장, 낯선 어긋남을 각자의 시선으로 발견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에서 시작된 새로운 질문 하나쯤 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결국 작가님의 그림은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질문을 발견하게 하는 매개처럼 느껴집니다. 계속 작업하게 하는 힘도 그 질문에 있을까요? 예술을 이어가는 힘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만은 아닙니다. 빠르게 달라지는 사회에서 느끼는 위화감이나 그 안에서 생기는 물음에 작품으로 응답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창작은 지금 이 시대를 기록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우리가 마주한 복잡한 현실을 미래에 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만큼 저 역시 그 흐름을 예민하게 보며 표현을 발전시켜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