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의 미학
8월, 미술관 전시로 읽는 브랜드 문화 후원의 현재.

아래쪽 알렉산드라 카수바, ‘스펙트럼 통로’. 사진 홍철기, 리움미술관 제공
브랜드와 기업의 예술 후원 방식이 다채로워지고 있다. 선택한 전시, 함께하는 작가와 기관, 관람객에게 제안하는 경험 방식에는 예술을 바라보는 태도가 담긴다. 8월, 서울의 주요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몇몇 전시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1층에서 10월 25일까지 열리는 유영국 탄생 110주년 기념 회고전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는 불가리의 후원 아래 더욱 의미 있는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회화와 부조, 사진, 드로잉, 아카이브 등 170여 점을 통해 작가가 60여 년간 구축한 작업 세계를 들여다보는 이번 전시에서 불가리는 한국 근대미술의 중요한 성취를 널리 알리는 데 힘을 보탰다. 유영국에게 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닌 색과 형태, 내면의 질서를 탐구하는 출발점이었다. 강렬한 원색과 절제된 기하학, 반복과 변주를 거쳐 산은 그의 화면 안에서 고유한 추상 언어가 되었다. 이런 선명한 색과 구조적 아름다움은 불가리가 오랜 시간 다뤄온 색채와 조형미, 장인정신의 가치와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브랜드가 어떤 예술 곁에 서는지에 따라 그 문화적 태도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이번 후원은 불가리와 한국 근대미술이 만나는 의미 있는 접점으로 남는다.
보테가 베네타가 후원하는 리움미술관 전시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은 또 다른 방식의 문화 후원을 보여준다. 11월 29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전후 현대미술사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여성 작가의 환경 작업을 다룬다. 주디 시카고, 리지아 클라크, 정강자, 난다 비고, 야마자키 쓰루코 등 11인의 작업은 빛과 공간, 소리와 움직임을 통해 관람객이 작품을 경험하고 감각하게 한다. 보테가 베네타는 전시를 후원하는 것은 물론, 개막을 기념한 컬처 다이얼로그와 라이브 공연도 진행했다. 안무가 송주원, 영화감독 이경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 시각예술가 문경원, 미술감독 류성희가 패션과 예술의 접점을 이야기했고,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과 보컬리스트 정미조의 공연이 이어졌다. 전시의 감각과 작품에서 비롯된 질문을 대화, 공연, 관람객 경험 등으로 확장하며 예술을 하나의 문화적 교류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LG전자가 함께하는 〈MMCA×LG OLED 시리즈〉는 기업의 기술 후원이 작품 제작의 토대가 되는 사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상징적 공간인 서울박스를 무대로 동시대 작가에게 작품 제작비와 기술 인프라를 지원하고, 대형 신작 제작을 통해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새로운 경험을 제안한다. 올해 참여 작가로 선정된 김 크리스틴 선은 사운드와 언어, 드로잉, 퍼포먼스, 영상을 넘나들며 소통의 구조를 탐구해온 기존 작업을 토대로 애니메이션 기반의 대형 영상 설치를 공간에 구현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후원은 전시의 이름을 알리는 것을 넘어 작품의 언어를 확장하는 재료가 된다.
앞선 세 전시는 작가와 작업을 소개하는 자리이자, 브랜드와 기업이 예술 곁에 어떤 태도로 머무는지를 보여주는 현재의 장면이기도 하다. 지금 미술관에서 이어지는 이 흐름은 좋은 후원이 작품의 배경을 넘어 더 깊이 있는 예술적 경험과 대화가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