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진이 풀어내는 현의 이야기
한수진이 풀어내는 현의 이야기

열다섯 살에 폴란드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이자 최연소로 2위를 수상하며 일찍이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은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배운 지 불과 8개월 만에 세계적 음악 영재 학교 예후디 메뉴인 스쿨에 입학했고, 이후 영국 왕립음악원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 등을 거치며 연주자로서 기반을 다졌다. 현재 영국과 유럽, 한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섬세한 해석과 깊은 감성, 그리고 흔들림 없는 음악적 진정성으로 ‘특별한 음악성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받는 그녀가 걸어온 길과 무대 밖 생각,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전하고 싶은 음악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오랜 시간 무대 안팎에서 바이올린과 함께해왔어요.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첫인상은 어떻게 남아 있나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어머니가 악기를 연습하는 소리가 제게 가장 처음 떠오르는 기억이에요. 어린 시절의 경험임에도 여전히 위로처럼 다가오곤 하죠. 그렇게 어머니를 따라 연주랄 것도 없이 무작정 소리를 내봤는데 당연히 엉망이었고, 그 충격에 ‘바이올린은 배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게 제가 바이올린과 직접 마주한 첫 장면이고요.(웃음) 이후 기본 자세를 익히는 단계부터 다시 천천히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이 악기를 더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렇다면 첫 무대에 대한 기억은 어땠나요? 예후디 메뉴인 스쿨 입학을 몇 달 앞두고 선생님이 준비하신 클래스 콘서트에 참여한 순간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 경험이 제 음악 세계의 첫 단추라는 걸 분명히 느꼈어요. 누군가 작곡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지만 그 안에서 가장 나답고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죠.
열다섯 살에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이자 최연소로 2위를 차지했죠. 그 경험이 연주 인생에 남긴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도전 의식이 아닐까 해요. 사실 경쟁보다는 경험을 위한 배움의 자리라 생각하고 나간 콩쿠르였거든요. 파이널 진출자로 제 이름이 호명됐을 때는 믿기지 않았고, 기권하겠다며 울기도 했어요. 그때 어머니가 “기회가 주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테니 깊이 생각해보고 결정하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이 큰 위안이 됐고 결국 파이널 무대에 올라 감사하게도 수상으로 이어졌어요. 무대의 기억은 아득하지만, 파이널을 준비하던 그 며칠 동안의 마음가짐과 과정이 지금의 저를 형성한 토대가 되었어요. 새로운 도전을 앞두거나 안일해질 때면 그 순간을 떠올리곤 합니다.
본인의 커리어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을 꼽는다면요? 정말 셀 수 없이 많아요. 먼저 펠릭스 안드레예프스키(Felix Andrevski) 선생님이 큰 영향을 주셨어요. 정형화된 레슨 방식을 떠나 ‘해야 하는 것’이 아닌 ‘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두도록 늘 이끌어주셨죠. 스토리텔링의 중요성도 강조하셨고요. 선생님께 들을 수 있는 가장 안 좋은 평가가 ‘Too Good’이었는데, 그 말에는 ‘소리·음정·박자 모두 좋지만 그게 전부라면 음악이 아니다’라는 뜻이 담겨 있어요. 또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와 이브리 기틀리스(Ivry Gitlis) 같은 거장들은 “피곤하면 피곤한 대로 연주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셨어요. 그런 조언 덕분에 예술은 완벽함이 아니라 인생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더 깊이 알게 됐죠. 그리고 귀한 악기를 아낌없이 후원해준 찰스 비어(Charles Beare)도 빼놓을 수 없는 은인이에요. 그분의 지원 덕에 제 상상을 뛰어넘은 소리를 세상에 내보일 수 있었으니까요.
영국과 한국, 두 나라의 문화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두 살에 영국으로 건너가 직접적으로는 영국 문화 속에서 자랐어요. 연주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천천히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분위기라 제게 큰 도움이 됐죠. 음악을 해석할 때 정신적 여유와 가능성이 항상 뒷받침된다는 든든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 기반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힘을 길러준 것 같아요. 한편 한국의 정서는 훨씬 열정적이고 감정에 솔직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 음악에도 그 감성이 자연스레 스며 있다고 생각하고요. 흔히 말하는 ‘한’이라는 정서가 제 음악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이 한수진의 연주를 두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고 해요. 악보를 읽고 해석하는 본인만의 루틴이 있나요? 작곡가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는 편이에요. 그 시기의 편지나 기록에는 종종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거든요. 바이오그래피를 읽으며 작곡가의 삶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당시 감정이 어땠을지 추리하기도 하고요. 악보의 표기 역시 세심히 들여다봅니다. 여기에 연주자로서 직감이 더해지죠. 분석과 직감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연주에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늘 음색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성향적으로 집착이 강한 편은 아닌데, 음색만큼은 예외죠.(웃음) 어깨받침을 빼고 연주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예요. 이브리 기틀리스가 몸의 일부가 될 테니 불편하더라도 꼭 시도해보라고 권유하셨거든요. 처음에는 몸에 무리가 가서 그만두려 했는데, 어느 순간 확실한 차이를 느꼈어요. 단순히 어깨받침을 뺀다고 해서 곧바로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조금만 이상해도 바로 드러나고, 날것에 가까운 소리가 나죠. 그런데도 저는 그 솔직한 소리에 점점 끌리게 됐어요.
음악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이 있다면요? 진정성이에요. 알고는 있어도 실천하기 어려울 때가 많죠. 충분히 진심을 다했다고 생각해도 예전 연주와 비교해보면 달라진 점이 보이곤 해요. 그럴 때마다 다시 겸허하게 태도를 돌아보고 자세를 고치려고 노력합니다. 진정성이 없다면 그건 음악을 손상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그 진정성이라는 건 결국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보나요? 존중과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작곡가를 향한 존중, 음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청중을 향한 애정처럼요. 그리고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것도 중요하고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 아는 부분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 면이 있다는 건 한편으로는 감사한 일이에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 발전할 수 있다는 증거니까요.
요즘 가장 큰 음악적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음악을 넘어 하나의 총체적 예술을 꿈꾸고 있어요. 표현주의 시기의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게잠트쿤스트베르크(Gesamtkunstwerk)’, 즉 종합예술이죠. 당시에는 실패한 시도가 많았지만 지금의 한국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언젠가 음악과 미술, 춤, 미디어 아트 등이 어우러진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바이올린 외 한수진을 지탱하는 관심사가 있다면요? 가장 크게는 음악교육의 장벽을 낮추는 일이에요. 영국의 장학제도와 시스템을 떠올리며 한국의 현실을 접했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이 환경 때문에 성장 기회를 잃는 현실을 목격했거든요. 한국에도 지속 가능한 지원 시스템이 생긴다면 상상 그 이상의 K-클래식 시대를 맞게 될 것으로 믿어요. 또 장애인 음악교육과 협업에 대한 관심도 높고요. 이전에 발달장애 아이들과 협연하기도 했고, 2026년 자폐사랑협회 홍보대사로 활동할 예정이라 기대가 큽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대로 연주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요즘 제 안에 크게 자리하고 있어요.
지난 2025년, 음악적으로 이룬 성과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저 자신을 가장 깊이 들여다본 해였어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음악적 모습은 어떠해야 할지 그런 질문을 꾸준히 던지면서 제 면면을 똑바로 마주하게 됐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상상하는 제 모습까지 모두 함께 놓고 바라보니 생각이 좀 더 체계적으로 자리 잡더군요. 특히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진행한 비발디·피아졸라·막스 리히터 세 작곡가의 ‘사계’ 리코딩 작업이 큰 전환점이었어요. 음반은 내년에 발매되고, 또 이를 기념해 내한 투어가 있을 예정인데요. 오케스트라와의 결이 놀랄 만큼 잘 맞았고, 서로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음악의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그 순간이 정말 소중했어요. 그래서 2025년의 가장 큰 성과는 ‘내가 어떤 음악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새해에는 어떤 한 해를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하나요? 더 많은 도전을 하고 싶어요. 해석의 문을 열어두되, 그 기반을 더 깊고 날카롭게 다지고 싶달까요. 특히 2026년 9월 금호아트홀에서 공개할 바흐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바로크 스타일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어요. 바흐의 음악은 구조적으로 너무나 완벽한데, 그 안의 감정은 또 벅차오를 만큼 뜨겁잖아요. 그 모순된 지점이 제게는 늘 강한 울림을 줘요. 그런데 바로크 연주법을 공부하다 보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규범이 자칫 표현을 억누르는 장벽이 되기도 하거든요. 저는 그 부분을 더 파고들고 싶어요. 왜 그런 주법이 생겼는지, 어떤 화성적 근거가 있는지, 그리고 그 위에서 제 직감은 무엇을 말하는지 그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이성적 분석과 직감이 서로를 확장해주는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2026년에는 그런 과정이 더 단단하게 정리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제 음악의 가능성을 넓혀갈 수 있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