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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4색 아트 퍼니처 디자이너

CULTURE

기능과 예술, 공예와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4인의 아트 퍼니처 작가들을 만났다.

부드러움의 힘
고재효

직선으로 재단한 목재가 우아한 나선을 이루고, 단단한 구조는 유기적 흐름으로 이어진다. 목재의 물성과 가구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익숙한 형식에서 벗어난 고유의 조형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 ‘시작’과 ‘출발점’을 뜻하는 이름의 스튜디오 효시를 운영하는 아트 퍼니처 작가 고재효는 나무라는 가장 전통적인 소재를 통해 자신만의 곡선 미학을 구축해왔다.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설계 관련 업무를 거쳐 본격적으로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직접 손으로 만들면서 자신만의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고, 목재는 그 생각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재료였다. 목공을 익히는 과정에서는 직선과 수직, 수평을 기반으로 한 제작 방식을 익혔지만 개인 작업을 이어가며 보다 자유로운 선을 목재에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점차 구체화됐다. “평면적으로 스케치한 형태가 실제로 만들어보니 안과 밖, 깊이감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실험은 오늘날 그의 조형 언어를 대표하는 ‘컬리 루프(Curly Loop)’ 시리즈로 발전했다.
컬리 루프 시리즈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그의 대표작이다. 단순히 곡선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반복되는 리듬과 균형을 연구하며 목재만이 구현할 수 있는 유기적 흐름을 탐구한다. 최근에는 큰 구조에 곡선을 적용하는 데서 나아가 손잡이 같은 세부 요소에도 이러한 조형 언어를 녹여내고 있다. 오는 8월에 열리는 개인전에서는 컬리 루프를 한층 확장한, 보다 자유로운 형태의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고재효에게 아트 퍼니처는 조형성과 사용성 중 하나를 택하는 작업이 아니다. 작업 초기에는 조형미에 무게를 뒀지만, 작업을 이어가며 사용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사용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미적 완성도를 해치지 않는 균형점을 찾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다. “중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구가 실제로 사용될 때 디자인과 조형성도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고 믿거든요.”
재료를 향한 시선 역시 일관되어 있다. 나무의 결과 물성은 디자인에 따라 달라지고, 제작 과정에서 생기는 갈라짐이나 자투리 목재도 작가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된다. 일반적으로 하자로 여기는 틈이나 가공 흔적마저 하나의 조형 요소로 받아들이고, 제작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형태를 새로운 작업으로 발전시키기도 한다. 그에게 목재는 정해진 답을 구현하는 재료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매개체다.
AI와 디지털 제작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도 그는 손으로 만드는 과정의 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화면 안에서 구현될수록 직접 만지고 사용할 수 있는 가구와 공예의 존재감은 더욱 선명해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고재효가 오늘도 같은 재료를 붙이고 깎으며 새로운 곡선을 탐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쓰임 너머의 서사
김현희

김현희는 가구라는 친숙한 사물을 통해 동시대 현상과 감각을 읽어낸다. 쓰임을 전제로 한 가구는 그의 손에서 이야기와 조형성을 품은 오브제로 확장된다. 목조형 가구를 전공하며 목재의 구조와 짜임을 익힌 그는 일찍이 나무를 넘어 철, 플라스틱, 아크릴 같은 동시대 물성으로 작업의 언어를 넓혀왔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과 동시대성을 처음 본격적으로 풀어낸 작업은 ‘규방(Q Bang)’ 시리즈다. 독일 교환학생 시절, 낯선 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되묻는 경험은 자연스럽게 ‘한국’, ‘여성’, ‘동시대’라는 키워드로 이어졌다. “아이덴티티를 이야기할 때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큼 지금 이 시대의 나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주 출신인 그는 할머니 집에서 봐온 고가구와 본가 현관 앞에 놓여 있던 제주식 반닫이를 오래 기억해왔다. 전통 가구에 대한 개인적 기억은 과거 여성이 머물던 규방과 그 안의 가구를 연구로 구체화됐다. 그에게 규방 가구는 단지 아름다운 장식의 대상이 아니라 당시 여성의 삶과 사회적 위치를 비추는 구조였다. “규방 가구는 화려하고 장석마다 좋은 의미를 품고 있지만, 여성의 자아를 드러내기보다는 가족과 부귀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모든 벽면이 막혀 있다는 점이 사회로 나아갈 수 없던 여성의 상황과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장식적 요소와 프레임은 유지하되 벽을 허물고, 안과 밖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게 됐어요.”


그가 전통 가구를 다루는 방식은 계승보다 재해석에 가깝다. 기존 장인의 기술과 역할을 존중하되, 현대 작가로서 해야 할 일은 전혀 다른 물성과 기술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고 본다. 장석을 레이저 커팅하거나 일러스트, CAD 같은 디지털 툴을 활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화이트 노스탤지어(White Nostalgia)’ 연작에서는 반투명한 아크릴을 통해 뒤주와 함 등의 형태를 새롭게 풀어냈다. 빠르게 생산하고 살아내야 하는 도시적 속도 속에서 고향과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며 시작된 작업으로, 특히 반투명한 아크릴은 그의 작업에서 기억과 시간의 감각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아크릴 안에 담긴 사물은 보일 듯 보이지 않고, 분명 존재하지만 흐릿하게 왜곡되는데, 작가는 그 상태를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과 닮았다고 말한다.
최근 작품 ‘애프터 이미지(After Image)’는 재료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다시 한번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전 작업이 서사에서 출발해 재료를 선택했다면, 이 연작은 대량생산과 조립, 편리함과 가벼움으로 상징되는 동시대의 공산품에서 시작됐다. 알루미늄 프로파일을 뼈대로 삼고, 아크릴에 나뭇결을 입히는 방식으로 목재 이미지를 오늘의 물성 안에서 다시금 불러낸다. “‘애프터 이미지’는 오히려 재료에서 먼저 접근한 작업입니다. 조금 불완전하고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제가 보는 동시대 이미지 그 자체라고 생각했어요.”
김현희가 가구를 주요 매개로 삼는 이유는 그것이 삶 가까이에 머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조각이 특정한 장소나 제도 안에서 감상되는 대상이라면, 가구는 집 안에서 사람의 몸과 시간을 함께 통과한다. “가구는 조용히 놓여 있지만, 생김새와 형태에 따라 사람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바꾼다고 믿어요. 그래서 최소한의 실용성은 염두에 두되, 그 안에 서사를 담으려 합니다. 제 작업이 누군가에게 하나의 서사를 동화처럼 들려주고, 그것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으면 해요.”

익숙하고도 새로운
김병섭

김병섭 작가의 아트 퍼니처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서로 다른 재료와 시대가 한 곳에 병치되는 풍경에서 출발한다. 공간 디자인을 전공한 그에게 가구는 건축과 인테리어를 넘어 또 하나의 표현 매개체였다. 오랜 시간 사용자의 삶과 함께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하나의 조각처럼 존재하는 가구 방식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컴퓨터 속 모델링으로 끝나는 설계가 아니라 직접 만들고 만지며 물성과 비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그를 아트 퍼니처로 이끈 계기 중 하나였다.
2024년 밀란 디자인 위크와 2025년 3데이즈 오브 디자인, 올해 초에 열린 개인전 등 국내외 전시와 디자인 페어에 참여하며 활동 무대를 넓혀온 그의 작업은 새로운 재료를 찾기보다 익숙한 재료를 다르게 바라보는 데 집중한다. 건축 현장에서 흔히 사용하는 합판은 여러 겹을 붙여 원목처럼 깎아내고, 부식을 피해야 하는 금속은 오히려 산화시켜 예상치 못한 표정을 만든다. 오래된 자개장 역시 해체하거나 재해석하기보다 일부를 그대로 가져와 다른 재료와 나란히 배치한다.


대표작 ‘내러티브(Narrative)’ 시리즈 역시 같은 맥락에서 탄생했다. 그는 한국에서 오래 살고 공부했지만 오히려 서양식 의복과 음식, 아파트 풍경이 더 익숙했던 자신의 경험에 주목했다. 할머니 집에서나 볼 수 있던 자개장과 항아리, 경복궁 옆 높이 솟은 빌딩, 현대식 아파트 안에 놓인 오래된 장롱처럼 서로 다른 시대가 공존하는 서울 풍경이 그에게는 오히려 새롭게 다가왔다고. 작가는 이를 전통의 계승이나 현대적 재해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풍경과 감각을 고스란히 작품 안으로 가져온다. 자개장은 자개장인 채로, 장승은 장승인 채로 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형태를 새롭게 해석하거나 변형하기보다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좋아하는 금속이나 선반 같은 요소를 더해 서로 다른 재료와 시대를 병치한다. 서로 다른 재료를 자연스럽게 섞지 않고 일부러 대비시키는 방식 역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서울 풍경을 작품 안으로 옮겨오기 위해서다. 시리즈 이름을 ‘내러티브’라고 붙인 이유도 형태보다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 의자로 만드는 발상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 사물을 선택했고,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작가의 관심은 가구를 넘어 공간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벽과 바닥, 천장, 조명까지 하나의 내러티브로 연결되는 환경을 구상하는 한편, 해외 전시에서 경험한 자유로운 교류 문화를 국내에도 만들고자 한다. 오는 8월 연희동 넌컨템포에서 전시를 여는 동시에 후배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 그리고 디자인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워크숍을 준비 중이다. 이어 그는 작업을 오래 할수록 작품은 결국 사람을 통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실감한다는 말을 남겼다. “설계와 제작은 치밀한 계산 과정이지만, 작품을 소개하고 공감하며 소장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몫이에요. 아트 퍼니처를 만든다는 건 단순히 가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느낍니다.” 서로 다른 사물을 병치해 새로운 풍경을 만들듯,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또 하나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김병섭이 만들어가는 아트 퍼니처의 세계다.

금속의 무한 확장
윤여동

금속은 한없이 차갑고 단단해 보이지만, 녹는 순간 가장 유연한 물질로 변한다. 윤여동 작가는 이러한 금속의 물성을 바탕으로 장신구와 오브제를 넘어 첫 가구 시리즈 ‘안트로포(Anthropo)’를 선보이며 작업의 영역을 아트 퍼니처로 확장했다. 금속을 녹여 틀에 붓는 주물 기법으로 완성한 스툴과 테이블, 콘솔은 그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조형 언어를 가구라는 새로운 매개체로 풀어낸 첫 결과물이다.
윤여동의 작업은 작은 금속공예에서 출발했다. 장신구를 만들며 금속을 다루기 시작했고, 이후 테이블웨어와 라이프스타일 오브제를 제작하며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의 물건을 만드는 즐거움을 익혔다. 대표작 와인 버킷 ‘가니메드(Ganymed)’ 시리즈 역시 그 시기의 산물이다. 반면 더 큰 작업에 대한 갈증을 늘 품고 있었다. “가구나 월 작업처럼 스케일이 큰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다만 큰 작업을 하려면 공간도, 작업 환경도 모두 갖춰져야 했죠.” 그런 작가에게 지난해 마련한 새 작업실은 오랜 염원을 현실로 옮기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렇게 탄생한 첫 가구 시리즈가 ‘안트로포’로, 인간을 뜻하는 그리스어 ‘안트로포스(Anthropos)’에서 이름을 본떴다. 처음 제작한 스툴의 다리를 다듬는 과정에서 사람의 다리를 닮은 유기적 실루엣을 발견했고, 그 형태는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모티브로 이어졌다. 시리즈 작업은 판재를 접고 구부리는 대신 금속을 녹여 형태를 만드는 주물 방식을 택했다. 직선적이고 규격화된 인상보다 사람이 손으로 빚은 듯한 유기적 곡선과 미묘한 흔적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가구를 봤을 때 ‘윤여동이 만든 작품이구나’ 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하나의 스툴에서 시작된 형태는 테이블과 콘솔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며 안트로포만의 조형 언어를 완성해갔다.


금속은 그에게 형태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자유로운 재료다. 판재가 되기도 하고 봉이나 파이프로 변형되기도 하며, 열로 녹여 부으면 원하는 형상을 구현할 수도 있다. 그는 작업 과정에서 손을 거치며 조금씩 달라지는 형태와 우연히 만들어지는 흔적 역시 금속이 지닌 중요한 가치라고 말한다. “디자인과 손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 금속공예의 매력입니다. 그래서 만드는 사람의 생각이 훨씬 많이 반영되죠.” 그런가 하면, 작가에게 아트 퍼니처는 기능과 조형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작업이면서도 조금 더 예술에 가까운 영역으로 다가왔다. 사용하는 데 불편함은 없어야 하지만, 동시에 보는 이에게 ‘왜 이게 가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갤러리에서도, 일상의 공간에서도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가구를 꿈꾸는 이유다. “공예는 결국 손을 타면서 완성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생활 속에서 쓰이고 만져질 때 비로소 작품도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금속 오브제부터 가구까지 작업의 스펙트럼을 넓히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감각을 믿게 된 일이다. 초기에 사람들의 반응을 의식했다면, 이제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는 문손잡이부터 가구까지 금속으로 하나의 공간을 완성하는 것. 윤여동이 그리는 다음 풍경은 하나의 오브제가 아닌 자신의 조형 언어가 스며든 공간 전체다.

  • 에디터 손지수, 이호준
  • 사진 박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