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그 이토의 작업에서 발견한 희망
일상의 페인트로 예술 언어를 써 내려가는 그레그 이토의 작업에서 발견한 희망.

오랫동안 말을 직업으로 삼아서일까. 아직도 처음 만나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더구나 내게는 낯선 단어가 어떤 이에겐 익숙하며, 지울 수 없는 역사와 고통의 중력을 감당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는 더더욱 그렇다. 히바쿠샤(被爆者). 아이슬란드 영화 <터치>를 보다 처음 접한 단어다. 원폭 생존자를 뜻하는 이 단어에는 무서운 저주가 숨어 있다. 아이슬란드 청년과 일본 여인의 풋풋한 사랑이 어디로 향할지, 히바쿠샤를 모르는 사람은 짐작하기 어렵다. 영화의 결말을 옮기지는 않겠다. 다만 그 단어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가져온 가해국과 피해국이라는 이분법을 내려놓게 되었다. 국가라는 거대한 이름 뒤에는 언제나 그 이름과 무관하게 고통받은 개인이 있다. 이들의 아픔은 파편화되고 누락되어 잊힌 역사가 된다. 하지만 사라져야 할 것은 고통이지, 고통을 품고 살아낸 삶의 증거는 아닐 것이다.
일본계 미국인 작가 그레그 이토(Greg Ito)를 만난 것은 영화를 본 직후였고, 누가 펑크 낸 자리였으니 우연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나는 칼 융의 ‘동시성’에 더 가까운 만남이라 생각한다. 일본계 미국인인 작가의 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정부에 의해 강제수용소에 격리되었다. 집과 직장, 재산을 남겨둔 채 오직 ‘가방 2개’에 담을 수 있는 것만 챙겨 떠나야 했던 암흑기, 똑같이 격리 수용된 할머니를 만나 사랑에 빠져 가정을 이뤘다. 그레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이 이야기를 들어 할아버지보다 더 생생하게 전할 수 있을 정도다. 가족의 신화가 된 이 이야기를 캔버스에 옮기면서 그의 작품은 시작되었다.
삶의 전부를 가방 2개에 욱여넣고 떠나야 했던 조부모. 그의 작품에 가방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작은 가방에 담긴 삶에 대한 의지도 잊지 않았다. 랜턴과 촛불이 그 역할을 맡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 빛과 화사한 색채가 다름 아닌 일반 ‘하우스 페인트’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가장 저렴하지만 세상의 모든 건물을 칠할 수 있는 페인트로 그는 칠흑의 시간을 경이의 빛으로 물들이는 데 성공한다.
“할아버지는 간판장이였어요. 낡은 페인트통을 모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작가는 여전히 할아버지의 유산인 하우스 페인트를 쓴다. 수백 가지 색상이 담긴 카탈로그를 펼쳐놓고 필요한 색을 똑같이 조색할 때, 그는 할아버지가 거리의 표지판을 그리던 정직한 노동의 시간과 조우한다. 가장 평범하면서 일상적인 재료를 예술 언어로 승화하는 이 지난한 과정은 색과 색이 부딪혀 기쁨과 슬픔이라는 역동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에서 영감받았다. 그는 찰나의 순간에 피고 시드는 꽃과 불타는 문을 캔버스에 병치해 낙담 바로 옆에 자리한 희망에 눈을 돌리게 만든다.
전쟁은 국경을 가르지만, 고통과 예술은 국경을 모른다. 그레그 이토가 그린 빛도 국경을 통과해 상처 입은 존재를 고루 비추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