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예술과 무대
예술이 일상에 머무는 삶을 꿈꾼다면 2026년은 한층 숨 가쁜 한 해가 될 것.
우리 곁에 찾아올 공연과 전시가 이토록 다채롭다.

매해 초, 세계의 주요 공연장과 미술관은 새로운 기획과 프로그램을 앞다퉈 선보이며 예술의 새로운 지형을 그린다. 특히 올해 주목할 전시와 공연은 단순한 화제성을 넘어 동시대 예술의 방향성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제안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클래식 분야에서는 신작 오페라와 기념 페스티벌, 장기 프로젝트의 완결성이 두드러지고,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회고전과 아카이브 기반 전시가 예술사의 서사를 새로이 정립하며 문화 예술 판도를 재편한다.
클래식 분야의 국외 일정은 상반기부터 굵직한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새해에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재단이 모차르트 탄생 270주년과 모차르트 위크 70주년을 맞아 대표 레퍼토리를 새로운 편성과 구성으로 재정비한 축제를 마련한다. 2026년 3월,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는 바그너의 〈지크프리트〉를 새 프로덕션으로 선보이며 시즌의 문을 연다. 이어 4월, 벨리니의 〈청교도〉, 5월에는 브리튼의 〈나사의 회전〉을 연속해 무대에 올리며 기존 레퍼토리 큐레이션을 한층 넓혀간다. 도쿄 신국립극장의 경우, 1월 경쾌한 오페레타 〈Die Fledermaus〉 공연으로 시작해, 6월에는 슈트라우스의 대규모 심리극 〈Elektra〉를 신규 프로덕션 무대에 올리며 한 해의 청사진을 그린다. 가을 무렵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미시 마조리(Missy Mazzoli)의 세계 초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미국 현대문학을 오페라로 옮긴 실험적 시도라는 점에서 2026 시즌을 대표할 신작 공연으로 클래식계의 많은 이목을 끌고 있다. 11월에는 파리 국립오페라가 수년간 이어온 바그너의 ‘RING’ 프로젝트 전막 사이클 완성을 통해 대형 서사의 무게감을 다시금 증명하며 한 해의 마무리를 담당할 계획이다.

오른쪽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열린 갈라 콘서트에서 연주를 펼치는 랑랑. ⓒ Berlin Philharmonie
국내 클래식계의 흐름 역시 초반부터 밀도 있게 전개된다. 1월에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롯데콘서트홀과 대구콘서트하우스 등에서 리사이틀을 선보이며 사실상 국내 투어를 진행한다. 그의 월드 투어와 연동된 이번 내한은 정제된 해석과 고유의 사운드를 국내 주요 도시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더한다. 이어 2월 예술의전당에서는 피아니스트 랑랑의 리사이틀이 열리니 대중성과 기량을 겸비한 라이징 뮤지션의 명연주를 눈과 귀로 즐길 수 있을 것. 창단 70주년을 맞이한 KBS교향악단이 올해를 기념하는 시즌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펼친다는 점도 놓치지 말자. 말러를 중심으로 구성된 심포닉 시리즈와 4월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될 <카르멘> 콘서트 오페라 등 한국 대표 오케스트라가 장기간 축적한 역량과 사운드를 직접 경험할 기회다.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기념적 회고전’과 ‘서사의 재배치’라는 시대적 흐름이 뚜렷한 전시가 연이어 존재감을 드러낸다. 국외에서는 3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라파엘로 대규모 회고전이 그 포문을 연다. 미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포괄적 개념의 라파엘로 전시로, 고전 회화를 감정·서사 중심으로 재조명해 르네상스 회화를 현대적으로 되짚는다. 다음 달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마르셀 뒤샹 회고전이 이어진다. 현대미술의 혁명적 전환을 이끈 300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같은 시기, 일본 모리 미술관에서 열리는 론 뮤익의 개인전 또한 주목할 만하다. 한편 2026년에는 대형 여성 작가의 예술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획도 여럿이다. 프랑스 퐁피두 메츠 센터에서는 20세기 여성 조각의 거장 루이스 네벨슨의 독창적 예술 세계를 펼쳐내는 대규모 설치전이 1월부터 8월까지 개최된다. 뉴욕 구겐하임은 약 다섯 달간 산업적 재료와 시적 설치를 결합해온 캐럴 보브의 회고전을 준비해 철제 튜브와 구조물을 활용한 현대 조각의 새로운 시선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외에도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는 투병 이후 신작을 포함한 40년의 궤적을 정리하며 개인적 기록이 시대의 감정으로 확장되는 순간을 포착해온 트레이시 에민의 회고전이 2월부터, 프리다 칼로 전시가 6월에 연이어 진행된다. 도쿄 국립신미술관 또한 4월부터 모리 하나에 탄생 100주년 회고전을 마련해 패션과 시각 문화의 경계에서 독자적 언어를 구축한 디자이너의 유산을 재조명한다. 프랑스의 경우 뤽상부르 미술관의 리어노라 캐링턴 전시와 파리 현대미술관의 리 밀러 회고전을 2월과 4월 두 달간 순차적으로 개최하며 오랫동안 여성 초현실주의자의 작업을 중심 무대로 옮겨놓는다.

국내 미술계도 초반부터 중요한 흐름을 만든다. 1월 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보존되지 않는 예술’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시간이 작품을 바꾸고 지우는 과정을 관람 경험으로 전환한다. 이어 2월 말 리움미술관이 티노 세갈 개인전 소식을 전하며 다시금 국내 관람객에게 대형 아티스트의 깊이 있는 예술 세계를 선보인다. 관람객의 참여를 통해 전시의 구조 자체를 경신하는 작가답게 ‘전시란 무엇인가’라는 제도적 질문을 한국 관람객에게 다시 던지는 드문 기회가 될 것. 티노 세갈이 상반기를 책임진다면 하반기에는 구정아 작가가 그 흐름을 계속 이어간다. 미술관 전역을 활용하는 대규모 설치와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관람 방식과 시선의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정렬하는 올해 한국 미술계의 결정적 장면을 펼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