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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항해가, 신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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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클래식 언어로 장르를 넘나드는 소프라노 신델라가 자신의 목소리를 보다 넓고 깊게 확장하는 방식.

블랙 슈트 셋업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소프라노 신델라는 정통 성악 교육의 궤적을 충실히 밟아온 음악가다.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 서울대학교를 거쳐 로마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으로 이어지는 이력은 클래식 언어를 체계적으로 축적해온 과정에 가깝다. 특히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 본과 5년 과정을 2년 만에 마쳤다는 기록에서, 그의 음악이 재능이나 감각에 기대기보다는 밀도 높은 훈련과 자기 점검 위에서 구축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는 오페라와 가곡이라는 전통적 레퍼토리를 단단히 체화하며, 소프라노로서 중심을 세운 결정적 시간이었다.
이후의 행보는 흥미로운 방향으로 확장된다. 신델라는 클래식의 틀을 벗어나기보다는 클래식 언어를 유지한 채 다른 음악으로 스며드는 방식을 선택했다. 가곡과 칸초네, 올드 팝과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레퍼토리는 넓어졌지만 발성과 호흡, 딕션과 프레이징이라는 성악의 원칙은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장르를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로 서로 다른 음악을 번역해온 셈이다. 그 결과 그의 무대는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에서 무리한 타협 없이도 설득력을 획득한다. 때로 ‘프리마돈나’라는 단어를 떠올릴 법한 강한 존재감과 중심을 지녔지만, 그가 지향하는 건 거리를 두는 권위가 아닌 관객 앞에서 음악을 어떻게 책임지는가에 대한 태도에 가깝다. 그 결과 무대 형식은 제각기 다르지만, 그의 음악은 늘 ‘소프라노 신델라’라는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된다. 무대 위에 프리마돈나로 서는 순간, 앙코르에서 관객 곁으로 내려가 음악으로 사람을 만나는 순간을 오가며 확장을 거듭할수록 중심을 더욱 선명히 해왔다. 정통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음악적 범위를 정교하게 넓힌 신델라의 지금은 클래식과 대중이라는 이분법 너머에서 음악가가 어떤 태도로 자신의 언어를 오래도록 지켜가는지를 보여준다.

로마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 본과 5년 과정을 2년 만에 마쳤다는 이력에 눈길이 갑니다. 당시에는 ‘조기 졸업’이라는 사실이 특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다만 그 시기의 저는 이상하리만치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가능한 선택지를 현실적으로 검토한 결과가 월반이었어요. 지금 남아 있는 건 속도보다는 밀도예요. 짧은 시간에 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거든요. ‘이 소리를 왜 선택하는가?’, ‘이 해석은 음악적으로 설득력이 있는가?’, ‘지금의 내가 이 곡을 책임질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이 늘 따라왔어요. 여유가 없었기에 오히려 타협이 줄었고, 그만큼 소리는 더 정확해졌죠. 그 시간 덕분에 음악을 감각적으로 ‘느끼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구조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예원–서울예고–서울대–산타체칠리아로 이어지는 이력은 이른바 ‘엘리트 코스’로 불리기도 합니다. ‘엘리트’라는 단어는 계획성과 전략이 전제되는데, 제 선택은 늘 그보다는 감각에 가까웠어요. 어떤 목표를 세우고 경로를 설계하기보다는 그 시점의 제 상태에서 무엇이 더 필요한지 계속 묻는 과정에 가까웠죠. 노래가 좋아 예원에 갔고, 더 깊이 배우고 싶어 예고에 갔으며, 성악이라는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서울대를 선택했어요.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산타체칠리아로 향했죠.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코스’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제 안에서는 늘 과정이었어요.

클래식 창법을 바탕으로 가곡, 칸초네, 올드 팝, 대중가요까지 아우르는 행보가 인상적입니다. 스스로는 이 확장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제가 해온 확장은 ‘무엇을 더 하겠다’가 아닌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언어로 어디까지 말할 수 있나’에 가까웠어요. 저는 성악 발성이라는 언어로 훈련된 사람이고, 그 언어는 오페라뿐 아니라 서사가 있는 노래, 감정의 곡선을 가진 노래라면 충분히 번역될 수 있다고 믿어요. 그 믿음이 저를 계속 움직이게 했어요. 저는 곡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대중성’을 묻지 않아요. 대신 ‘이 곡을 소프라노로서 말할 수 있는가’를 먼저 보죠. 단지 높은 음역을 소화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호흡, 공명, 딕션, 프레이징이 음악적으로 설득되느냐에 대한 질문이에요. 교집합은 의도적으로 만드는 지점이라기보다 결과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이죠. 클래식 언어로 노래를 번역했을 때도 곡이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의미가 생기며 관객에게도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거든요. 장르를 넓힐수록 ‘나는 어떤 방식으로 노래하는가’에 대한 물음의 답이 더 선명해져요.

언제부터 노래가 삶의 중심이 되었나요? 기억을 더듬어보면, 노래가 없던 시기를 떠올리기가 오히려 어려워요. 어릴 때부터 내게 노래는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었으니까요. ‘평가’이기 전에 ‘자연스러운 장소’였고요. 공연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내가 노래로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래서인지 무대에 설 때면 두려움을 넘어 내가 가장 명확해지는 기분을 느껴요. 지금도 음악은 내게 직업보다는 ‘언어’에 가까워요. 어떤 감정을 말로 정리하려고 하면 오히려 왜곡되기도 하는데, 음악 안에서는 그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거든요.

니트 케이프와 실크 드레스 모두 gabriela hearst, 이어 커프와 링 모두 SILIPIn

관객에게 신델라를 가장 잘 보여주는 한 곡을 꼽는다면? 메리 홉킨의 ‘Those Were the Days’가 떠오르네요. 크로스오버 레퍼토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시기에 만난 곡이기도 하고, 지금도 무대에서 부르는 노래예요. 이 곡은 구조적으로도 제가 가진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펼칠 수 있게 해줘요. 앞부분에서는 호흡을 길게 하면서 서정적으로 감정을 쌓고, 후반으로 갈수록 관객과 호흡하며 밝게 확장되죠. 그 과정에서 저는 ‘해석자’로서 나와 무대 위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는 사람으로서 나를 동시에 드러낼 수 있다고 느껴요.

크로스오버 뮤지션으로서 본격적인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 무대는 KBS1 프로그램 <열린음악회>에서 부른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였습니다. 그 무대를 선보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 무대는 제게 하나의 검증이었어요. 당시에는 성악가가 트로트를 부른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러운 선택이었고, 제작진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다른 곡을 권유하는 분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그 곡을 꼭 하고 싶었어요. 중요한 건 장르가 아니라 태도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함춘호 선생님과 기타 편성으로 클래시컬하게 편곡해 하나의 서정적 가곡처럼 무대를 꾸몄어요. 호흡의 흐름, 감정의 고조, 마지막까지 구조를 모두 성악적 맥락 안에서 가져갔죠. 이후 곡을 선택하는 기준이 더 분명해졌어요. 대중성보다 ‘내 언어로 번역 가능한가’를 먼저 보게 됐다는 의미예요. 지금 돌아보면 그 무대가 제 음악 인생에서 하나의 명확한 변곡점이 됐어요.

해당 무대를 계기로 기타리스트 함춘호 선생님과의 인연도 이어졌죠. 새로운 도전에 걱정도 많았지만, 선생님의 기타 연주 덕분에 결과적으로 큰 반응을 얻었어요. 이후 자연스럽게 음악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어느새 10년 넘게 함께 무대를 이어오고 있어요. 지금 제게 선생님은 함께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존재이자 음악적으로 가장 든든한 동료예요. 선생님은 가끔 “델라, 나는 너랑 음악 하는 게 너무 좋아”라고 말씀하세요. 그 말이 제게는 단순한 격려 이상으로 이 관계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해주는 문장처럼 느껴져요. 선생님과 함께 꾸준히 개최하는 <신델라 & 함춘호의 드라마틱 콘서트>를 통해서도 단독 콘서트와는 또 다른 결의 무대를 보여줄 수 있어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죠.

클래식 무대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형식의 무대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장르를 넘나들 때마다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음악적 선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분명한 기준은 발성과 호흡을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장르가 달라진다고 해서 소리의 근간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어가 흐트러지면 정체성도 함께 흔들리는 것처럼요. 또 하나는 흉내를 경계하는 태도예요. 장르를 넘나들수록 그 장르 특유의 제스처를 그대로 가져오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데, 저는 그 순간 음악이 가장 쉽게 얕아진다고 느껴요. 그래서 늘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 곡을 소프라노로서 어떻게 말할 것인가?’ 그 질문을 끝까지 붙잡고 갈 수 있을 때, 장르는 달라져도 음악의 중심은 무너지지 않아요. 그 선을 지키는 일이 제가 확장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에요.

음악 나눔, 자선 공연 같은 형태의 무대도 자주 선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선 공연이나 나눔의 무대는 제게 의미 있는 선택이기 이전에 개인적인 다짐에 가까워요. 그리고 그런 무대는 연주자로서 저를 더 엄격하게 만들죠. 복지시설이나 현장에서는 꾸밈이 통하지 않거든요. 감정이 과하면 과한 대로, 진정성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바로 드러나요. 음악이 누군가에게 ‘감상’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로 닿는 순간을 직접 보게 되는 경험은 뮤지션으로서 태도를 근본부터 다시 세우게 만들어요.

최근 가장 집중해 마주하고 있는 레퍼토리나 프로그램이 있다면? 요즘은 새로운 레퍼토리를 탐색하는 동시에 예전에 부른 곡을 다시금 바라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소리의 선과 감정의 고조를 어떻게 아름답게 쌓아갈 것인가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이 곡을 왜 다시 불러야 하는지, 호흡 안에 어떤 밀도의 감정을 담을 수 있는지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돼요. 또 하나는 한국적 정서가 강한 곡이에요. 대중에게 익숙한 노래일수록 접근 방식은 더 조심스러워요. 익숙한 멜로디와 텍스트를 성악적 호흡과 구조 안에서 어떻게 다시 설계할지 고민하죠. 새 레퍼토리를 고를 때 기준은 결국 곡이 지금의 내 소리로 설득 가능한지에 따라 결정되죠. 음역이나 난도보다 텍스트의 방향과 감정의 곡선이 제 호흡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오는지, 그리고 무대 위에서 관객과 어떤 대화를 만들어낼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무대에서 스스로를 가장 또렷하게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앙코르예요. 객석의 조명이 켜지고 관객석으로 내려가는 그 순간이요. 관객과 사진도 찍고, 손도 잡고, 어깨동무도 하죠. 그때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거의 사라져요. 기술적으로는 오히려 더 긴장되는 순간이기도 해요. 공간이 바뀌고, 소리의 반사가 달라지고, 관객과 가까워질수록 제 소리의 ‘진짜 결’이 선명하게 드러나거든요. 그래서 더 정직해야 해요. 감정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죠. 흔히 말하는 프리마돈나라는 이미지보다는 음악으로 사람을 직접 만나는 감각이 가장 분명해지는 순간이에요. 저는 그때 비로소 ‘내가 무대 위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가장 강하게 받아요.

  • 에디터 이호준
  • 사진 김제원
  • 헤어 & 메이크업 이서영
  • 스타일링 이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