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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새로운 문법, 추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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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무가를 동시대 가장 신선한 음악으로 번역하는 아티스트 추다혜. 그에게 장르 구분보다 중요한 건 몸이 먼저 반응하는 소리다.

드레스와 슈즈 모두 FERRAGAMO

추다혜

추다혜는 소리꾼이자 뮤지션이다. 민요 록 밴드 씽씽​의 멤버로 활동하며 국내외에 이름을 알렸고, 2020년부터 밴드 추다혜차지스의 보컬로 활동하며 무가와 민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으로 한국 전통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2020년 발매한 정규 1집 <오늘 밤 당산나무 아래서>의 타이틀곡 ‘리츄얼댄스’로 2021년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 & 소울’ 부문을, 정규 2집 <소수민족>으로 2026년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알앤비 & 소울’ 부문을 수상했다. 밴드 활동 외에도 연극과 OST 등 다양한 형태의 창작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재즈가 재즈라 불리기 전, 힙합이 힙합이 되기 전. 우리가 열광하는 장르는 모두 이름 없는 시절을 지나왔다. 그 무엇도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없다. 20세기 초 뉴올리언스에서 아프리카 리듬과 유럽 음악의 어법이 뒤엉키며 재즈가 싹텄고, 1973년 브롱크스에서 DJ 쿨 허크가 브레이크 비트를 끝없이 이어 붙인 순간 힙합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처럼 음악은 언제나 서로 만나 섞이고 충돌하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왔다. 장르는 최초의 실험 이후 비슷한 시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생길 때 비로소 정의된다. 그러므로 어떤 예술의 기원에서 장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필요도 없는지 모른다. “일부러 장르를 섞으려고 한 적은 없어요. 다만 우리가 좋아하는 사운드를 만들려고 계속 노력했죠.” ‘진정한 장르의 결합은 어때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추다혜에게 우문이었다. 그는 애초에 장르의 융합을 염두에 둔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가장 나답고 몸이 먼저 반응하는 소리에 충실하게 반응한 결과, 지금의 ‘추다혜차지스’에 이르렀다. 보컬이자 프런트 퍼슨인 추다혜, 기타 이시문, 베이스 김재호, 드럼 김다빈으로 이루어진 4인조 밴드는 무가에 현대적 밴드 사운드를 결합해 전에 없던 소리를 만든다. 이들은 지난해에 발표한 정규 2집 <소수민족>으로 올해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선정에 이어 ‘최우수 알앤비 & 소울’ 부문까지 석권했다. 참고로 올해의 음반 후보 리스트에는 이찬혁의 , 제니의 도 있었다. 민요와 연기를 공부한 추다혜는 무대를 하나의 굿판으로 만든다. 기세 좋게 위로 쭉 뻗은 깃털 장식을 머리에 꽂고 스스로 ‘가짜 무당’이라 소개한 뒤 무령(방울)을 흔드는 것으로 공연은 시작된다.
영적 효력은 없지만 무대에서 어떤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그가 진심으로 누군가의 안녕을 기원하기 때문이다. 신명 나는 비트에 몸을 맡기는 이름 모를 관객부터 오랜 시간 사회의 편견을 감당해야 한 오늘날 만신까지, 추다혜는 기꺼이 그들을 위한 영매를 자처한다. 묵직하면서도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힘차게 마이크를 뚫고 나오면 드럼과 기타, 베이스가 일제히 리듬을 밀어 올리고, “풀령갑서(풀려서 가세요)”, “거덩갑서(거두어 가세요)” 같은 주술적 방언이 공기 중에 싱그럽게 넘실댄다. 이윽고 메기는소리와 받는소리가 교차하며 분위기는 고조되는데,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공연장 분위기는 그야말로 접신의 순간과 같다. 이들의 음악을 단순히 크로스오버나 퓨전이라는 말로 설명하긴 어렵다. 전통 선율과 사설 일부를 가져와 재해석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순수 창작의 비중도 크기 때문이다. 설명을 요구하는 이들을 위해 추다혜는 ‘사이키델릭 샤머닉 펑크’라는 용어로 자신의 음악을 소개한다. ‘사이키델릭’은 현실 너머 감각을 향하는 황홀경의 상태를, ‘샤머닉’은 굿의 의례와 에너지를 뜻한다. 여기에 ‘펑크’의 그루브까지. 서로 다른 계보가 뒤섞인 이 선언적 음악을 듣다 보면 시간은 양극단으로, 그것도 아주 멀리 뻗어나간다. 한쪽은 온 마을 사람이 함께 풍요를 기원하던 오래된 공동체의 시간이고, 다른 한쪽은 훗날 새로운 장르의 기원으로 회자될 먼 미래다. 이토록 넓은 시간의 스펙트럼을 품고 있기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결국 듣는 자의 몫이다. 다시 말해 이들의 음악은 전적으로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차지’다.

헤드웨어 아티스트 소장품.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알앤비 & 소울’ 부문을 수상했죠. 특히 알앤비 & 소울 장르로 분류됐다는 사실이 무척 의외였어요. 저희에게도 흥미로운 소식이었어요. 심사위원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있었대요. 60명 정도 되는 평론가들이 저희 음악을 어느 장르에 넣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네요.(웃음)

서울예술대학교에서 민요를, 중앙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2014년 민요 록 밴드 ‘씽씽’에 합류했어요. 본격적으로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된 건 이때부터일까요? 어린 시절 꿈은 연기자였어요. 고등학생 때 우연히 특기 적성 강사로 온 민요 선생님 덕분에 민요를 처음 접했고, 연극과 입시를 위해 특기로 배웠죠. 그러다 선생님의 권유로 민요를 전공했어요. 그런데 졸업 후 연기에 대한 미련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중앙대학교 음악극과에 입학해 노래와 연기를 공부했어요. 두 번째 대학을 졸업하고 2년 정도는 연극과 음악극 등에 매진했어요. 그러다 대학 동기인 이희문 씨가 공연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고, 이를 계기로 씽씽에 합류했습니다.

이희문, 추다혜, 신승태 3인의 보컬과 장영규(베이스), 이태원(기타), 이철희(드럼)로 이루어진 씽씽은 음악은 물론 스타일링까지 굉장히 독보적이었어요. NPR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한국 뮤지션 최초로 출연해 큰 화제가 됐죠. 쉽게 규정되는 무언가를 거부하는 태도는 그때부터 길러진 걸까요? 씽씽은 민요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음악부터 스타일링까지 모든 것이 자유로웠어요. 저는 민요를 좋아했지만 조선 시대처럼 한복을 입고 쪽머리를 해야 하는 방식에는 공감하지 못했어요. 어릴 때 선생님께 “저는 결혼도 안 했는데 왜 쪽머리를 하죠? 댕기머리를 하면 안 되나요?”라고 물은 적도 있죠.(웃음) 씽씽 활동은 전통 민요 신에 속한 것도 아니고 밴드 사운드와 함께 하다 보니 제 목소리와 창법을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에 맞게 의상과 헤어스타일도 새롭게 창조하는 재미가 컸고요. 그 모든 과정이 창작이었던 것 같아요. 자유를 누리며 오히려 민요를 더 사랑하게 됐고, 밴드 보컬이라는 역할도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과거 씽씽 라이브 영상 중 다혜 씨가 혼자 앞으로 나와 “이제 내 노래를 좀 해볼까 봐”라며 ‘난봉가’를 독창하는 순간이 있어요. 마치 지금의 활동을 예고한 말처럼 들려 새삼스럽더라고요. 그냥 단순히 내 차례라는 말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복선 같네요. 씽씽 해체 후 1년 정도 쉬며 ‘내 프로젝트’를 고민했어요. 사실 해체 발표 전부터 멤버 모두 각자의 길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죠. 개인적으로 치유 음악이나 명상 음악에 관심이 많았는데 문득 ‘왜 한국에는 그런 음악이 없을까’ 생각하던 시기에 우연히 굿을 보게 됐어요. 씽씽 활동 중 안은미 선생님이 기획한 공연으로 프랑스에 갔는데 참가 팀 중 만신 이찬엽 선생님이 있었어요. 굿에 대한 첫인상은 한마디로 퍼포먼스 같다는 거였어요.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며 무대를 완전히 장악한 무당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명의 예술가에 가까웠죠. 무엇보다 굿 속에 제가 찾던 치유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 후 이찬엽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 굿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왜 하필 무가에 끌렸나요? 사라져가는 음악을 이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나요? 난생처음 들어보는 음악이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사실 보존에 대한 의무감보다는 무당이라는 사람 자체에 마음이 갔어요. 대부분 원해서 무당의 삶을 택한 건 아니거든요. 무가를 배우고 무속인들과 개인적으로 가까워지며 미디어에서 보이는 무당의 이미지가 정말 단편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과거엔 마을의 안녕을 빌며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하는 존재였는데 근대 이후 미신이라는 이유로 배척된 삶이 안타까웠죠. 그래서 무가를 좋은 음악으로 만들어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어요. ‘이건 무당이 하는 음악이고, 이 안에 치유의 메시지가 있다’고 당당히 말하면서요. 가끔 저를 진짜 무당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어요. 그래서 공연 때마다 “저는 가짜 무당이고, 영적 능력은 없어요. 그냥 그런 척만 할게요”라고 말하곤 합니다.(웃음)

무가를 배우는 과정은 어땠나요? 민요와 비슷하지 않던가요? 교수법이라는 게 거의 없어요. 도제식 교육인 민요와 달리 무가는 현장에서 보고 따라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물론 저는 똑같이 따르기보다 굿을 보고 기록하며 영감을 얻는 쪽에 가까웠죠. ‘저런 말을 하고 저런 소리를 내는구나’, ‘동작은 저렇게 하는구나’ 생각하며 관찰하고, 가져오고 싶은 가사도 틈틈이 메모했어요. 음원이나 영상으로 접한 무가는 선생님들에게 가사의 의미를 하나하나 여쭤봤고요. 관련 서적도 많이 찾아 보며 공부했습니다. 무가를 배운 건 2년 정도인데 1년 차에 밴드를 결성해야겠다 마음먹었어요. 시문 씨와 곡을 쓰기 시작했고 이후 재호 씨와 다빈 씨가 합류했습니다. 그렇게 1집이 세상에 나오게 됐죠.

울 트윌 톱 JIN SANDER, 헤드웨어 아티스트 소장품.

‘리츄얼댄스’는 제주 서우젯소리에서, ‘좋다 잘한다 좋다’는 서울굿 신장거리에서 출발했죠. 그런 무가는 펑크, 레게, 덥, 힙합 등 다양한 장르와 기막히게 어우러지고요. 서로 다른 장르를 잘 결합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솔직히 국악과 밴드를 결합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씽씽 활동으로 제가 밴드 사운드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국악기와 함께할 때보다 제 소리가 더 살아나는 것 같았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멤버들을 만났고, 각자의 색깔이 음악에 녹아들면서 추다혜차지스의 사운드가 만들어졌어요. 저희에겐 장르를 구분하거나 ‘우리 음악은 이래야 한다’는 기준이 없어요. 그냥 우리가 좋아하는 사운드를 만들려고 계속 노력할 뿐이죠.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고 크로스오버가 잘됐다는 평을 듣는 것 같아요.

다른 인터뷰에서 ‘퓨전 국악’이라는 표현을 지양한다고 말한 적도 있죠. 추다혜차지스가 무가를 가져오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요? 저희 음악은 서양음악 위에 한국 전통음악을 얹는 것 이상의 작업이 수반돼요. 창작의 비중도 크고 음악의 장르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훨씬 다양하죠. 무가를 가져오는 방식은 곡마다 다른데 우선 제가 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멤버들과 함께 곡의 정서를 상의해요. 후렴만 따오고 나머지 부분은 완전히 새로 쓰거나, 또 다른 무가의 요소를 가져와 섞기도 하죠. 가사는 제가 미리 발췌하거나 새로 작성하는데 옛말을 그대로 쓰는 걸 가장 좋아해요. 결국 속뜻은 우리네 사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고, 수백수천 년을 이어온 말이잖아요. 곡은 잼을 하면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요. 저희는 악보도 없어요. 연습하면서 각자 자기 파트를 외우죠. 이런 식으로 작업하니 사실상 원곡과는 완전히 다른 곡이 나오는 것 같아요.

원곡을 바꾸는 게 조심스럽지는 않았나요? 전통음악을 공부한 사람일수록 틀을 깨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요. 어린 시절에는 저도 누군가 정해둔 답을 따라야 한다고 믿었어요. 특히 민요는 선생님을 잘 따라 해야 좋은 점수를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사회에 나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은 조금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그때부터 계속 새로운 시도를 이어왔고요. 물론 쉽지는 않았어요. 선례가 없었거든요. ‘내가 맞게 가고 있는 걸까’, ‘누가 이런 음악을 들어주기는 할까’라는 고민은 늘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앨범을 내고 나니 사람들이 흥미로워해 자신감이 붙었어요. 제게 무가를 알려준 선생님들도 ‘대중과 소통하려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격려해주셨고요. ‘가짜 무당’으로서 무대에 오르는 순간 그때의 저는 저인 동시에 또 제가 아니에요. 다른 존재가 되어 무한하게 펼쳐지죠. 새로운 시도가 망설여진다면 ‘이건 내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저질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록 페스티벌 영상에서 추다혜차지스의 음악을 즐기는 관객의 모습이 신선했어요. 덩실덩실 춤을 추던데요.(웃음) 그런 반응이 정말 재밌어요. 저희 가사가 쉬운 편은 아닌데 공연 때 크게 따라 부르는 팬도 늘었고요. 각자의 방식으로 저희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큰 힘이 돼요.

음악의 기원은 결국 주술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추다혜차지스의 음악은 태초의 시간과 연결된 ‘현대적 살풀이’ 같아요. 당신의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위로가 됐으면 하나요? 복을 빌어주고 싶어요. 무가에는 액운을 떨쳐내고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가사가 많아요. 그런 구절을 부르면서 관객들과 계속 눈을 맞추면 저도 기분이 좋아지고,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밴드 외에 개인 활동도 이어가고 있죠. 기억에 남은 작업이나 공개를 앞둔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2022년 두산아트센터에서 이찬엽 선생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공연을 선보인 적이 있어요. 민요 발성도 아니었고 오늘날의 언어로 쓴 가사라 제겐 새로운 도전이었죠. 최근 선생님 1주기를 추모하며 <아는 사람>이라는 EP로도 발매했어요. 더불어 오는 9월 3일부터 6일까지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무장애 음악극 <옹옹옹>에도 참여해요. <옹고집전>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장애인 배우 둘, 비장애인 배우 셋, 수어 통역사 다섯이 한 무대에 오릅니다. 이 역시 처음 경험하는 형태의 공연이라 개인적으로 기대가 커요.

지금까지 추다혜의 여정을 보면 계속 경계를 넘어온 것 같아요. 앞으로 넘고 싶은 또 다른 경계가 있나요? 애당초 경계가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보다 어릴 땐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은 것 같아 초조했는데, 점차 생각이 바뀌었어요. 굳이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그 후로 경계라는 걸 크게 의식해본 적 없어요. 제가 하는 음악이 곧 제 장르인 거죠. 무엇을 해도 상관없으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 에디터 윤정훈
  • 사진 영배
  • 헤어&메이크업 이경민
  • 스타일링 이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