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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10

곱게 물들다

전광영 작가의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 전시를 기념하는 자리는 유난히 색색으로 빛났다.

<Aggregation: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 기념전>
4월 1일~29일




Aggregation22-JA013,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32×196cm, 2022

어느덧 59회를 맞이한 세계 최대 미술 축제 베니스 비엔날레가 4월 23일 개막, 11월 27일까지 베니스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 일대에서 열린다.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를 주제로 본전시를 개최하고, 한국관을 포함한 80여 개 국가관을 운영 중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비슷한 시기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전시.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작가 230여 명이 주요 작품을 선보인다. 한데 그것을 아는가? 그중 베니스 비엔날레가 인정하는 공식 병행 전시는 따로 있고, 그 전시에만 비엔날레 엠블럼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올해 엠블럼을 달고 전시가 열리는 작가는 20여 명. 그중에서도 생존 작가는 4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전광영 작가다. 개인전 <재창조된 시간들(Times Reimagined)>에서 그는 종이를 재료로 창조한 동양적 작품 세계를 펼쳐놓았다. 그 이국적인 작품 세계가 르네상스 초기 중요 건축으로 손꼽히는 전시 공간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냐크(Palazzo Contarini Polignac)와 조화를 이루며 코로나19와 전쟁으로 상처받은 인류의 마음을 보듬는다.





Aggregation21-AU110,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07cm(Ø), 2021





Aggregation19-AU072,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51×151cm, 2019

지난 4월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열린 전시는 그 제목처럼 작가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전광영 작가를 축하하고, 동시에 그의 색다른 매력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전시에선 그의 작품 세계를 상징하는 ‘집합(Aggregation)’ 11점을 선보였다. 약봉지가 연상되는 형태의 삼각기둥을 고서에서 얻은 한지로 감싼 후 매듭으로 묶어 완성한 작은 조각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입체 회화 작품이다. 그래서 먹의 검은색과 한지의 빛바랜 흰색이 주조를 이룬 작품을 기대하고 전시장에 들어섰다. 하지만 웬걸, 다채로운 색감으로 가득했다. 전시장 초입에 위치한 ‘Aggregation21-AU110’(2021)은 작가가 고향의 개나리를 생각하며 만든 작품으로 강렬한 노란색이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연두색과 초록색으로 물들인 ‘Aggregation22-JA013’(2022)은 싱그러운 봄 숲을 옮겨놓은 듯했다. 압권인 건 전시장 중앙의 두 작품. 분홍색이 감도는 ‘Aggregation19-AU072’(2019)에서는 사방에 만개한 벚꽃이, 파란색의 ‘Aggregation22-JA006’(2022)에서는 새파란 바다에 비친 태양의 모습이 연상됐다. 형형색색의 근작과 신작들은 출품작 중 가장 먼저 만든, 달의 표면을 연상시키는 ‘Aggregation13-JU032’(2013)와 대비되며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전시 전경.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이 모든 색은 그냥 물들인 게 아니라는 사실. 치자 열매에서 나온 노란색은 우주의 중심이자 황제를 상징한다. 구기자를 사용한 붉은색은 삶의 에너지와 열정을, 쪽에서 뽑아낸 푸른색과 녹색은 만물의 탄생을 뜻한다. 자연에서 온 각각의 색은 지혜를 상징히는 흑색, 순결과 진실을 의미하는 흰색에 스며들어 강렬한 생명력을 발산한다.
작가의 40년 화업을 살피면 점차 작품의 색감이 풍부해졌지만, 이처럼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인 근작과 신작을 위주로 구성한 전시는 없는 듯하다. 이는 노블레스 컬렉션의 특성을 고려한 작가의 배려로 읽히기도 한다. ‘기념전’이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고택에서 이루어지는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와 달리 모던한 공간에 어울리는 작품은 따로 있으니 말이다. 또 이곳이 개성 있는 작품을 선호하는 MZ세대 컬렉터가 많이 방문하는 갤러리라는 점에서도. 물론, 작업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오래전 쓸모를 다해 빛을 잃어가던 한지와 그 기록이 작가의 손길을 거쳐 현대미술 작품으로 탈바꿈하는 ‘재생’의 과정은 오랜 시간을 넘어, 그리고 이탈리아에서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위안과 감동을 안겨줬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김태화(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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