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ing Canvas
아티스트에게 자동차를 캔버스로 내준 자동차 브랜드들. 그라피티, 패션, 조형예술, 모터스포츠까지 접근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롤스로이스 블랙 배지 컬리넌 × 시릴 콩고
프랑스 그라피티 1세대 작가 시릴 콩고(Cyril Kongo)와 롤스로이스가 함께 만든 비스포크 프로젝트다. 전 세계 단 5대만 제작됐다. 콩고는 프로젝트 초기부터 영국 굿우드 본사에 머물며 디자이너, 장인, 엔지니어와 함께 작업했다. 실내는 네 구역으로 나뉜다. 운전석은 피닉스 레드, 조수석은 튀르쿠아즈, 뒷좌석은 포지 옐로와 만다린으로 물들었다. 롤스로이스가 실내를 이렇게 나눈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 하나 시선을 훔치는 것은 천장의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다. 별 1344개가 박혔는데, 시릴 콩고는 상상 속 행성과 별자리, 수학 공식과 양자물리학의 개념을 손으로 직접 그렸고, 굿우드의 장인들이 별 하나하나의 위치와 색을 맞췄다. 외장은 블루 크리스털 오버 블랙 바탕에 브랜드 최초의 그러데이션 코치라인을 둘렀다. 왼쪽은 피닉스 레드에서 포지 옐로로, 오른쪽은 만다린에서 튀르쿠아즈로 번진다. 그 위에 콩고의 태그가 낙관처럼 찍혔다. 롤스로이스는 한 점의 회화를 배정하듯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70여 가지 색을 준비해 스펀지와 에어브러시, 붓으로 완성했다. 뉴욕과 서울, 굿우드의 프라이빗 오피스를 통해 전 세계 컬렉터에게 소개했다. 더 젊은 컬렉터층이 과감하고 동시대적인 예술 커미션을 원한다는 판단이 출발점이었다.
BMW 아트카 20호 × 줄리 머레투
줄리 머레투(Julie Mehretu)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추상화가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지도와 건축 도면, 거리의 선, 보도사진을 겹쳐 도시와 정치, 이동과 충돌의 흔적을 그린다. 속도와 사건이 겹치는 그의 회화는 레이스카와 자연스럽게 맞닿았다. 2024년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공개한 BMW 아트카 20호의 기반은 M 하이브리드 V8이다. M 하이브리드 V8은 4.0리터 트윈 터보 V8 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해 약 640마력을 낸다. BMW가 25년 만에 르망 최상위 클래스로 돌아가기 위해 개발한 프로토타입이다. 줄리 머레투는 이 차를 퍼포먼스 페인팅으로 정의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차체와 르망의 시간, 표면에 남는 먼지와 상처까지 작품의 제작 과정으로 본 것이다. 그는 자신의 대형 회화 ‘Everywhen’을 디지털로 분해한 뒤 사진 이미지와 점의 격자, 형광색 베일, 검은 선을 차체에 옮겼다. 평면 이미지는 3D 매핑 기술을 거쳐 낮고 복잡한 레이스카의 굴곡에 맞게 다시 배치했다. 실제 경기에 출전해야 했기에 가벼운 래핑 방식으로 완성해 공기역학과 정비에 미치는 영향도 줄였다. 20번을 달고 출전한 아트카는 경기 중 타이어 장벽과 충돌해 긴 수리를 받았다. 팀 WRT는 차를 복구했고, 차량은 종료 직전 서킷으로 돌아와 결승선을 통과했다. 공식 완주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사고와 수리, 복구의 흔적이 차체에 남았다. 1975년 알렉산더 콜더의 BMW 3.0 CSL로 시작한 아트카 전통이 전시를 넘어 실제 레이스의 시간까지 작품으로 남았다.
포르쉐 911 타르가 × 카싱 룽
홍콩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카싱 룽(Kasing Lung). 2015년 어린 시절 읽은 북유럽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더 몬스터즈’ 세계관을 완성했다. 뾰족한 귀에 톱니 이빨이 난 몬스터 중 라부부는 전 세계적 컬렉터블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야기에서 출발해 캐릭터를 만드는 그의 작업 방식은 자동차 한 대에 하나의 세계관을 통째로 옮기는 시도로 이어졌다. 2025년 11월 두바이에서 열린 ‘아이콘스 오브 포르쉐 2025’에서 포르쉐와 카싱 룽의 협업 작품을 공개했다. 협업은 더 몬스터즈 탄생 10주년과 911 타르가 출시 60주년을 동시에 기념하는 자리로, 실물 크기의 라부부 피겨가 포르쉐 티셔츠를 입고 운전석에 앉은 모습을 선보였다. 차체는 카싱 룽이 직접 그린 두바이 영감의 그래픽으로 감쌌다. 함께 공개한 더 몬스터즈의 리더 캐릭터 킹몬 조형물은 911 타르가에 올라탄 모습을 형상화한 높이 40cm의 금속 조각으로, 타르가 탄생 60주년을 기려 전 세계 60개만 제작했다. 카싱 룽은 “어릴 적 친구네 부모님이 911을 갖고 있었다. 처음 그 차에 탔을 때의 감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림책 속 몬스터가 자동차 브랜드의 헤리티지 모델과 나란히 놓이며, 아트 토이 컬렉터 문화와 자동차 문화가 만나는 접점을 만들었다.
메르세데스-벤츠 CLA × 콤 딜레인
메르세데스-벤츠는 2025년 3월 로마에서 신형 CLA를 공개하며 ‘클래스 오브 크리에이터스’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자동차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와 협업하는 프로젝트다. 래퍼 아이스 스파이스에 이어 세 번째 주자가 패션 브랜드 키드슈퍼의 콤 딜레인(Colm Dillane)이었다. 그는 2025년 파리 패션 위크 기간, 루브르 박물관의 장식미술관에서 자신의 2026 봄·여름 컬렉션 쇼와 함께 슈퍼히어로 CLA를 공개했다. 딜레인은 CLA를 손으로 만든 ‘슈퍼히어로 카’로 재해석했다. 터빈 날개, 풍선 모양 장식, 전면 윈치, 랠리 스타일 루프 랙,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새총 모티브, 그의 시그너처 캐릭터 ‘키싱 페이스(Kissing Face)’를 새긴 패치워크까지 모두 손으로 만들어 붙였다. 휠은 1996년 메르세데스-벤츠 F 200 콘셉트카를, 사이드미러는 메르세데스-벤츠 300 SL의 실루엣을 오마주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키드슈퍼와 협업해 자동차 헤리티지와 젊은 세대의 감각을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딜레인은 CLA와 함께 13피스 캡슐 컬렉션도 선보였다. 재킷, 티셔츠, 트렌치코트, 모자, 가방 등으로 구성했다. 티셔츠에는 세계 최초의 자동차에 대한 오마주도 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