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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가 안내하는 감각의 세계

ARTNOW

수많은 작품이 경쟁하듯 펼쳐지는 프리즈 서울에서 메종 루이나는 조금 다른 속도를 제안한다. 타다시 카와마타와 함께 자연의 시간과 움직임, 샴페인에 깃든 장인정신을 예술로 풀어낸다.

타다시 카와마타.

루이나 × 타다시 카와마타 <자연과의 대화>

2026년 9월 2일 ~ 9월 5일

자연은 늘 진동으로 가득하다. 떠오르고 저무는 해와 달,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과 빗방울뿐 아니라 한자리에 멈춰 있는 듯한 땅과 바위도 제 속도로 움직인다. 나무뿌리는 빛과 바람을 따라 미세하게 뻗어가고, 단단한 암석 역시 낮과 밤의 온도 차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샴페인은 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이 빚어낸 산물이다. 샹파뉴의 미기후와 백악질 토양, 발효 과정에서 일어나는 미생물의 생명 활동, 여기에 이 모든 변화와 흐름을 기민하게 관찰하며 수백 년간 고유의 맛을 지켜온 장인정신이 더해져 한 병의 샴페인이 탄생한다. 메종 루이나가 자연을 단순 원료가 아닌 창조의 동반자로 바라보는 이유다.
<자연과의 대화(Conversations with Nature)>는 루이나가 2024년부터 전개해온 예술 프로젝트다. 2008년에 시작한 아트 커미션 프로그램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를 토대로, 자연과 샴페인의 관계를 동시대 예술 언어로 탐구하는 프로젝트로 발전시켰다. 루이나는 매년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작가를 초청해 창작의 전권을 부여하고 랭스 크라예르 거리 4번지에서 새로운 작업을 공개한다. 샹파뉴 하우스 중 유일하게 전담 아트 & 컬처 디렉터를 두고 장기간 프로젝트를 진정성 있게 이끌었으며, 완성된 작품은 랭스뿐 아니라 전 세계 다양한 글로벌 아트 페어에서도 선보였다. 그간 토마스 사라세노, 닐스 우도, 에바 조스팽, 마커스 코츠, 줄리앙 샤리에르 등 뛰어난 작품성으로 세계적 인정을 받는 동시에 실제 환경보호에도 기여해온 작가들이 메종 루이나의 본거지를 찾았다. 올해의 초청 작가는 일본 설치미술가 타다시 카와마타(Tadashi Kawamata)다. 폐목재를 이용한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으로 잘 알려진 그는 자연을 재현의 대상이 아닌 협업의 주체로 대한다.
바람과 빛, 중력, 시간은 그의 작품을 완성하는 재료이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연약해 보이는 구조는 삶의 덧없음과 생태계의 취약성을 동시에 상징한다. 카와마타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여러 차례 랭스를 오갔고, 그곳의 고유한 자연과 문화에 근거해 3점의 설치 작품을 완성했다. 지하 셀러 위에 세운 ‘옵저버토리(Observatory)’는 주변 풍경을 특별한 시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나무에 둥지처럼 매달린 ‘트리 헛(Tree Hut)’은 자연과의 은밀한 대화로 관람객을 이끈다. 본관 건물 외벽 모서리에 달린 ‘네스트(Nest)’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동시에 포도밭의 번성을 돕는 새, 무당벌레, 박쥐 같은 지역 야생동물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랭스에서 시작된 이 대화가 이제 서울로 무대를 옮긴다.
9월 프리즈 서울에서 카와마타의 ‘트리 헛(Tree Hut)’, ‘돔 플랜(Dome Plan)’ 시리즈, 사이트 스케치와 모형을 전시할 예정이다. 짧은 시간 수많은 관람객이 스쳐 지나가는 아트 페어 한복판에서 루이나가 예술과 샴페인을 통해 제안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진동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그 미세한 리듬과 움직임에 귀 기울이고 음미할 때 자연과의 진정한 대화는 비로소 시작된다. 자연과 장소를 오래 관찰하며 그 안에 자신만의 개입을 만들어온 타다시 카와마타에게 랭스에서 마주한 풍경과 이번 작업에 대해 물었다.

포토밭에 놓인 카와마타의 작업 도구와 루이나 샴페인.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랭스를 여러 차례 방문했죠. 어떤 장면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나요?
저는 새로운 장소를 방문할 때 너무 많은 준비는 하지 않는 편입니다. 장소의 첫인상이 저를 이끌게 하기 위함이죠.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먼저 그곳의 분위기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역사와 숨겨진 이야기,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하는지 충분히 관찰한 다음에야 스케치를 시작하고, 그곳에서만 가능한 ‘개입(intervention)’의 방식을 고민합니다. 랭스에서는 지상과 지하의 대비가 특히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햇살이 쏟아지는 포도밭과 그 아래 펼쳐진 크라예르는 전혀 다른 세계였죠. 지하 공간의 온도와 습도, 향과 그림자, 압도적 규모 역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한 장소에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공존하고, 광물질의 깊이를 품은 지하 공간과 살아 숨 쉬는 지상의 자연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루이나는 수년에 걸쳐 자연과 함께 샴페인을 완성하는 과정을 중시합니다. 작가님 역시 시간과 장소에 대한 깊은 관찰로 작업을 이어왔죠. 샴페인을 만드는 과정과 작가님의 작업 사이 유사점을 실감하나요?
두 과정엔 공통점이 많습니다. 샴페인은 오랜 시간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을 거쳐 완성됩니다. 그 과정에는 인내와 정교함, 세심한 관찰,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죠. 저 역시 작업할 때 충분히 생각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장소가 스스로 이야기를 들려줄 때까지 기다리며 작업이 천천히 형태를 갖춰가는 시간을 허락하죠. 샴페인의 기포는 가볍고 찰나의 순간을 선사하지만 그 이면엔 오래 축적된 시간과 섬세한 과정이 존재합니다. 긴 준비의 시간이 결국 짧지만 깊은 경험의 순간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예술과 샴페인 메이킹은 유사한 긴장과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신작에서 새롭게 시도한 개념은 무엇인가요?
지상 공간과 지하 공간이 만드는 특별한 대비를 생각하며 이러한 ‘이중적 공간성’을 담는 장소 특정적 구조물을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작품은 단순하고 연약하며, 시간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열린 상태를 유지하기를 바랐습니다. 제 목표는 공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랭스에 설치된 ‘트리 헛’.
‘네스트’ 모형을 들고 있는 카와마타.

메종 루이나의 역사적 공간에서 탄생한 작품이 이제 프리즈 서울에서 다른 맥락으로 확장돼 새로운 관람객을 만납니다. 짧은 기간 많은 사람이 스쳐 가는 이곳에서 관람객에게 어떤 경험을 남기고 싶은가요?
잠시 멈춰 사유하는 시간을 주면 좋겠습니다. 또한 관람객들이 예술과 자연, 샴페인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연결을 느끼길 바랍니다. 이번 작품은 루이나의 역사와 풍경, 자연과의 관계라는 맥락에서 출발했지만 아트 페어라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도 충분히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작업이 누군가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바꾸거나 주변을 더욱 세심히 바라보게 하고, 그로 인해 인간의 활동과 살아 있는 자연이 맺는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 작품은 충분한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번 메종 루이나와의 협업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요?
그 장소를 직접 경험한 기억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랭스를 처음 찾았을 때 안개가 내려앉은 고요한 포도밭을 걸은 순간이 특히 기억 속에 선명합니다. 주변에선 새소리만 들렸고, 바람과 공기의 감촉만이 온전히 느껴졌죠. 포도밭을 감싼 고요함과 탁 트인 풍경, 깊은 지하 셀러가 만들어낸 대비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번 협업은 제게 샴페인의 세계를 이전보다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긴 시간과 자연, 장인정신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 이 경험은 앞으로 제 작업에 지속적인 영감을 줄 것입니다.

  • 에디터 윤정훈
  • 사진 루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