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의 미학
궁극의 우아함이 담긴 역사와 전통. 패션 하우스에 녹아든 승마 코드.
2026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가 밝았다. 말은 인류 문명과 가장 오래, 가장 밀접하게 호흡해온 동물이다. 이동 수단이자 재산이었고, 때로는 신화와 예술의 모티브가 되어 인간 곁을 지켰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는 말과 함께 장애물을 넘는 승마가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 잡으며 귀족 문화의 상징으로 진화했다. 16세기에는 그 예술성을 인정한 승마 교습소가 등장했고,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며 오랜 역사와 격조를 세계에 증명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승마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문화적 교양이자 상류사회의 미적 코드를 상징하게 되었고, 이는 여러 패션 하우스의 창조적 영감으로 이어졌다.

승마와 패션의 연결 고리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우스는 단연 에르메스다. 1837년 파리 바스뒤 랑파르(Basse-du-Rempart) 공방에서 정교하고 가벼운 마구를 제작하며 시작된 에르메스는 말과 기수가 모두 편안함을 느끼는 안장과 마구를 선보이며 승마 헤리티지를 정교하게 발전시켜왔다. 셀 루즈(Selle Rouge)를 비롯한 최첨단 기술로 만든 안장, 그리고 말에서 영감받은 다양한 아이템까지 하우스의 근원적 아이덴티티는 지금도 견고하게 이어진다.
구찌 또한 시그너처 홀스빗 모티브에서 확인할 수 있듯, 브랜드의 역사적 출발점에는 승마가 있다. 귀족들의 승마용품 제작으로 명성을 쌓은 구찌는 말 머리에 씌우는 굴레에서 착안해 홀스빗 모티브를 완성했고 슈즈, 백, 벨트, 주얼리에 이르기까지 적용되며 하우스와 승마 세계의 상징적 연결을 이뤄왔다.
로로피아나 설립자 피에르 루이지와 세르지오 로로피아나 역시 승마의 우아한 아름다움에 깊은 애정을 담아왔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탈리아 팀을 위한 공식 유니폼을 제작하며 승마 문화와의 인연을 굳건히 했고, 이를 계기로 블루 테크니컬 패브릭에 옐로 트리밍을 더한 홀시® 재킷이 탄생했다. 혁신적 소재와 기능성으로 완성된 이 재킷은 고도의 퍼포먼스를 위한 디자인 철학을 그대로 보여준다.
랄프 로렌의 승마적 감수성은 폴로 랄프 로렌 라인과 포니 엠블럼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전통적 승마 유니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컬렉션을 꾸준히 선보이며 말등자에서 영감받은 스터럽 모티브의 워치와 주얼리를 론칭해 승마 문화에 대한 오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승마에 대한 열정에서 론진을 빼놓을 수 없다. 1869년 승마 모티브를 새긴 포켓 워치를 선보인 론진은 1878년 단일 푸시 피스로 구동되는 첫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20H를 출시했다. 경기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 가능한 이 기술은 북미 경마장의 심판들로부터 신뢰를 얻었고, 이는 2013년 론진이 국제승마연맹(FEI)의 메인 파트너이자 공식 타임키퍼로 선정되는 기반이 되었다.
1920년대 세련된 여가 문화로 여기던 폴로는 워치 하우스에 새로운 영감을 제공했다. 피아제의 폴로 워치는 말 그대로 폴로 경기에서 비롯된 스포츠 워치로, 당시의 포멀 중심의 시계 흐름 속에서 캐주얼 스포츠 워치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며 브랜드의 대표 컬렉션으로 자리 잡았다. 예거 르쿨트르의 아이코닉한 리베르소 또한 격렬한 폴로 경기 중 다이얼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사업가 시저 드 트레와 자크-데이비드 르쿨트르의 협업으로 완성된 이 회전식 직사각 케이스는 기능성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탁월한 발명으로 기록된다. 이처럼 패션 하우스들은 스타일의 차원을 넘어 말과 승마라는 문화적 세계를 깊이 탐구해왔다.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그 연결은 2026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더욱 힘차게 내달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