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경매 열풍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지난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필립스옥션의 경매가 화제다. 이제 시계는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미술품, 보석 등 대체자산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1억 달러를 돌파한 시계 경매 시장
필립스옥션과 박스 앤 루소(Bacs & Russo)가 공동 주최한 ‘Geneva Watch Auction: XXIII’의 경매 총 낙찰액은 약 1,410억 원(CHF 74,846,995·USD 96,328,083)입니다. 시계 경매 역사상 최초로 누적 1억 달러에 육박하는 규모입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단순한 총액이 아닙니다. 출품 225점 가운데 224점이 낙찰되며 낙찰률 99.6%를 기록했고, 금액 기준으로는 사실상 완판에 가까운 99.9%를 달성했습니다. 불과 반년 전인 2025년 11월, 같은 제네바에서 세운 기록(약 1,217억 원)을 다시 넘어선 것입니다. 이제 시계 경매는 몇 점의 희소한 타임피스가 시장을 견인하는 구조를 넘어 고급 시계 전반에 글로벌 수요가 형성되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140억 원짜리 세계지도 시계
이번 경매의 중심에는 역시 파텍 필립의 Ref. 2523 사우스 아메리카가 있었습니다. 1953년 제작된 이 시계는 월드 타이머 기능과 남미 지도가 그려진 에나멜 다이얼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현존 개체가 단 두 점으로 알려져 있으며, 약 40년 만에 공개 경매에 등장했습니다. 결과는 약 140억 원(CHF 796만) 낙찰이었습니다. 빈티지 파텍 필립 가운데 1,000만 달러를 넘긴 시계는 역사상 두 번째이며 빈티지 손목시계 전체로는 세 번째입니다.
왜 사람들은 시계에 이렇게 돈을 쓸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시계 경매는 일부 마니아들의 영역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희소성입니다. 롤렉스나 파텍 필립 같은 브랜드의 인기 모델은 리테일 매장에서 사실상 구매가 불가능해졌고 경매 시장은 진짜 희귀한 물건을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대로 변했습니다. 두 번째는 자산 시장의 변화입니다. 초고가 컬렉터들은 이제 시계를 단순 소비재가 아닌 이동 가능한 대체자산으로 본다는 의견이 대다수입니다. 부동산, 주식 등의 무형자산 변동성이 커질수록 희귀 시계는 미술품처럼 글로벌 현금성을 가진 안전자산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세 번째는 콘텐츠 효과입니다. 유튜브와 SNS는 시계 시장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과거에는 소수 전문가만 알던 레퍼런스와 히스토리가 이제는 영상 콘텐츠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비됩니다. 어떤 이들이 찼고 어떤 이들이 수익을 얻었는지 등의 키워드 자체가 투자의 서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독립 시계 제작자들의 시대
이번 경매에서 특히 눈에 띈 것은 독립 시계 제작자의 약진입니다. 아크리비아의 AK-06 스테인리스 스틸 모델은 약 56억 원에 낙찰됐고, 그뢰벨 포지와 필립 듀포가 협업한 타임피스는 약 3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과거 시계 경매가 롤렉스, 파텍 필립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제작자의 철학과 기술력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는 현대미술 시장에서 신진 작가가 급부상하는 구조와도 닮아 있습니다.
정당한 가격인가
물론 시장 과열을 우려하는 시선도 여전합니다. 실제로 일부 모델은 몇 년 사이 가격이 3~5배 이상 급등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승이 실사용 가치보다 희소성과 투자 심리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글로벌 경기 둔화가 본격화될 경우 가장 먼저 가격 조정을 받을 자산군 역시 사치재 컬렉터 시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시장 내부에서는 “버블이라기보다 양극화”라는 반론도 나옵니다. 실제로 이번 경매에서도 최고급 희귀작은 기록을 경신했지만, 평범한 빈티지 모델들은 기대 이하의 결과를 보인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계가 오르는 시대가 아니라, 역사성과 희소성이 검증된 극소수만 살아남는 시장이라는 해석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경매 직후 오렐 박스와 리비아 루소는 “시계는 이제 파인아트, 주얼리, 역사적 클래식카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숫자만 보면 틀린 말도 아닙니다. 전 세계 74개국에서 1,800명 넘는 응찰자가 참여했고 현장, 전화, 온라인 경쟁은 그 어느 미술 경매 못지않았습니다. 지금의 시계 경매 시장은 단순한 럭셔리 소비를 넘어섭니다. 기술, 역사, 디자인, 희소성, 투자 심리가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 문화 시장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열풍은 아직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