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는 예술, 트렌치코트의 새로운 이야기

트렌치코트라는 캔버스
패션과 예술이 만나는 순간, 옷은 단순한 스타일을 넘어 하나의 서사가 됩니다. 런웨이에서 시작된 실루엣이 갤러리의 언어와 만나고 일상의 아이템이 예술적 상상력을 품는 순간입니다. 위크엔드 막스마라가 2026년 봄/여름 시즌 선보이는 캡슐 컬렉션 ‘위크엔드 위드 아티스트(A Weekend with an Artist)’는 바로 그 교차점에서 탄생했습니다.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카나스타 트렌치코트를 하나의 캔버스로 삼아 동시대 여성 아티스트 다섯 명이 각자의 시선으로 다시 해석한 프로젝트입니다. 절제된 우아함을 지닌 클래식한 트렌치코트는 작가들의 손을 거치며 전혀 다른 서사를 입게 됩니다. 회화적 제스처와 상징적인 모티브, 대담한 색채와 소재가 더해지며 익숙한 아이템은 하나의 예술적 오브제로 확장됩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큐레이션을 맡은 인물은 세계적인 미술 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프란체스코 보나미(Francesco Bonami)입니다.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 디렉터와 휘트니 비엔날레 큐레이터를 역임하며 동시대 미술계의 흐름을 이끌어 온 인물로 이번 협업에서도 뚜렷한 시각 언어와 세대적 다양성을 기준으로 아티스트들을 선정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은 트렌드나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표현이었습니다.





다섯 명의 아티스트, 다섯 개의 시선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섯 명의 작가는 각기 다른 배경과 매체 그리고 세계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면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는 능력입니다. 그들의 손을 거친 카나스타 트렌치코트는 단순한 의복을 넘어 하나의 이미지이자 서사가 됩니다.


빅토리아 코셸레바의 트렌치코트
러시아 출신 아티스트 빅토리아 코셸레바(Victoria Kosheleva)는 스스로의 작업을 ‘사이버 표현주의(cyber expressionism)’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고전적 회화의 감각과 디지털 시대의 시각 언어를 교차시키며 독특한 화면을 만들어내는 작가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그녀는 트렌치코트를 하나의 무대 장치처럼 바라봅니다. 격자 패턴, 장식적인 눈 모티브, 소용돌이와 꽃이 뒤섞인 이미지들은 마치 커튼 뒤에서 막 공연이 시작되려는 순간처럼 긴장감과 상징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코트는 단순히 몸을 감싸는 옷이 아니라 질문과 꿈 그리고 연극적 분위기를 함께 지니고 다니는 ‘이동하는 무대’에 가깝습니다.

OKNO Studio.

파올라 피비의 트렌치코트
이탈리아 출신의 파올라 피비(Paola Pivi)는 현실을 살짝 비틀어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상적인 사물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변형시키며 관객의 인식을 흔드는 작가입니다. 현재 하와이에 거주 중인 그는 섬의 풍경에서 받은 영감을 이번 트렌치코트에 담았습니다. 특히 하늘을 가로지르는 쌍무지개와 강렬한 자연의 색채가 핵심 모티브입니다. 코트의 앞뒤를 따라 흐르는 다채로운 수직 스트라이프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빛의 스펙트럼을 연상시키며 허리를 따라 형성되는 모래시계 실루엣은 그 색의 흐름을 더욱 극적으로 강조합니다.


차발랄라 셀프의 트렌치코트
차발랄라 셀프(Tschabalala Self)의 작업은 인물과 정체성 그리고 상징이 지닌 문화적 의미를 탐구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회화와 조각, 설치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 방식처럼 이번 트렌치코트 역시 강렬한 시각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파스텔 옐로 컬러에 래커 광택을 더한 코트 위에는 작가의 시그너처 모티브인 ‘인피니티 플라워’가 핑크빛으로 반복됩니다. 이 꽃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지닌 덧없음과 동시에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생명의 순환을 상징합니다. 고대 염색 기법인 바틱에서 착안한 스탬핑 방식으로 완성된 패턴은 코트 전체에 리듬감을 더하며 인간 존재의 유한함과 변화의 가능성을 동시에 떠올리게 합니다.


타이 샤니의 트렌치코트
영국의 멀티디서플리너리 아티스트 타이 샤니(Tai Shani)는 퍼포먼스, 영화, 사진,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트렌치코트는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블랙 비닐 소재로 완성되었습니다. 반짝이는 표면은 트렌치코트가 지닌 ‘은밀함’이라는 상징을 강조하면서도 그 위에 더해진 귀여운 고양이 일러스트가 예상 밖의 유머를 만들어냅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플로럴, 사이키델릭, 고딕 등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 여겨졌던 미학을 새롭게 해석하며 동시에 1950년대 핀업 이미지를 향한 장난스러운 오마주를 덧붙입니다.


샤페이 샤의 트렌치 코트
볼로냐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신예 중국 작가 샤페이 샤(Shafei Xia)는 도발적이고 유머러스한 작업 세계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19세기 일본 춘화와 중국 에로틱 회화에서 영향을 받은 그는 전통적인 수채 기법을 활용해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이번 트렌치코트의 등판에는 여성과 백호가 서로 뒤엉키듯 하나로 이어지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붉은 꽃 장식이 그 주변을 감싸며 평온해 보이는 표면 아래 숨겨진 긴장과 에너지를 암시합니다. 사랑과 파괴, 평온과 격렬함처럼 서로 상반된 감정이 공존하는 장면은 마치 한 편의 상징적인 서사를 입은 듯한 인상을 남깁니다.

패션과 예술 사이의 대화, 프란체스코 보나미와의 대담
이 특별한 협업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같은 질문에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트렌치코트라는 익숙한 아이템이 예술가의 시선을 만나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의 출발점에는 한 명의 큐레이터가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프란체스코 보나미는 패션과 예술의 관계를 ‘경계를 허무는 협업’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 사이의 대화라고 설명합니다. 세계적인 미술 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그에게 어떤 기준으로 이 다섯 명의 작가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패션과 예술의 만남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Q. ‘A Weekend with an Artist’는 패션 프로젝트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전시처럼 보입니다. 처음 구상할 때 패션에 더 가까운 작업이었나요? 아니면 예술 프로젝트에 가까웠나요? 저는 그것을 하나의 대화로 보았습니다. 예술가와 오브제, 의상, 그리고 아이콘 사이의 대화 말입니다. 패션과 예술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두 영역은 자연스럽게 겹쳐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Q. 이번 프로젝트에서 큐레이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설정한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아티스트들은 트렌치코트라는 제품의 기능과 정체성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동시에 브랜드 역시 각 작가의 표현 방식을 존중해야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탈바꿈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트렌치코트가 꾸며지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방식으로 재해석되어야 했습니다.
Q. 트렌치코트라는 상징적인 아이템을 예술로 확장할 때 특히 경계한 부분이 있었나요? 예술가들이 트렌치코트를 피상적인 도발이나 아이러니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협업은 결국 상호 존중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Q.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다섯 명의 아티스트를 선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균형보다 대비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시각을 통해 창작 과정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패션과 예술의 협업이 진정성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역할의 명확성입니다. 예술은 패션이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고, 패션 역시 예술이 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Q. 트렌치코트는 전시에서는 작품이지만 누군가가 입는 순간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맞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결국 트렌치코트를 입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목표는 트렌치코트 형태의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입을 수 있는 아름다운 코트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Q. 패션과 예술에서 젠더 서사는 여전히 중요한가요? 오늘날에는 젠더의 문제라기보다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Q. 당신은 늘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현대미술을 설명하는 비평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예술이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술은 내부자들만의 대화로 축소될 위험이 있습니다.
Q. 지금 예술과 패션이 가장 경계해야 할 유혹은 무엇일까요? 유명세를 위해 카리스마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사교계 인물이 되는 순간 창작의 힘은 약해집니다.
Q. 만약 다섯 벌의 트렌치코트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요? 하나만 고를 수는 없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하나씩 입고 싶습니다. 주말이 되면 제 코트로 돌아가겠지만요.

전시를 넘어 일상으로 들어온 아티스트 트렌치
위크엔드 막스마라의 ‘위크엔드 위드 아티스트’로 탄생한 다섯 벌의 ‘아티스트 트렌치’는 서로 다른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코트는 무대처럼 극적인 이미지를 펼쳐 보이고 어떤 코트는 자연의 색채를 입으며 또 다른 코트는 상징과 유머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하나의 아이템이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예술 언어로 확장된 셈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결국 옷이 입혀지는 순간 완성됩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몸과 함께 움직이는 이미지로서 말이죠. ‘위크엔드 위드 아티스트’는 바로 그 순간을 입는 컬렉션입니다.
- 에디터 박재만
- 사진 위크엔드 막스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