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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마음 속 돌고래 휘파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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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처음 그림을 시작한 야요 작가의 느리지만 단단한 시간.

YAYO, Canoe, 2023, Acrylic on Canvas, 97cm × 130.3cm, 작가 제공.

첫 그림은 주문진에서 사 온 마른오징어의 남은 한 조각이었다. 다음 그림은 그날 사 온 치아바타였다. 거창한 주제도, 캔버스도, 이젤도 없었다. 종이를 폈고, 눈앞에 있는 것을 그렸다. 야요(YAYO)가 적성검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웃었다. 그때 나이가 마흔 살. 적성을 찾기에 너무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을까. 매달 찾아오는 정서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매달 색다른 경험을 하나씩 하기로 결심한 그녀는 오일 파스텔로 동물을 그리는 원데이 클래스를 들었다. 그렇게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릴 적 열망을 다시 만난 그녀는 2018년, 막 마흔을 넘긴 나이에 혼자 그림을 시작했다.
“제가 갈 길이 처음으로 명확해졌어요. 궁금한 재료나 방법은 블로그 또는 유튜브를 찾아보고, 온라인 화방의 후기도 참고했죠. 처음 써보는 재료는 통에 써 있는 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직접 그려보면서 특성을 깨쳤어요. 아크릴의 경우도 60호짜리 ‘카누’ 그림을 그리면서 재료도 파악하고 그러데이션 표현법도 익히느라 한 달 내내 고생한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2023년 첫 개인전을 열 때까지 매일 SNS에 올린 신용카드 사이즈의 작품이 300점이 넘습니다. 그렇게 매일 작은 성취를 반복하고 그림을 완성하다 보니 대인 기피증도, 우울증도 서서히 치유되더라고요.”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야요 자신은 물론 주변인을 놀라게 한 소식이 있었으니, 올해 열린 ‘제4회 한국여성작가 회화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다. 출품자의 학력, 경력, 소속을 배제하고 오직 작품 자체의 조형적 완성도와 창의성, 동시대적 문제의식만이 평가 기준이었다.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팅, 즉 오히려 ‘배경이 없어서’ 받은 상 덕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시에 초청되었고, 팔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대상 수상작 ‘뉴욕’은 결국 OECD 부총재가 소장하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기 전 야요는 방송 스타일리스트였다. 월 20만 원 교통비가 다였던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10년 넘게 메인으로 일했다. 10벌이 필요하면 30벌을 준비하고, 명품에 손상이 갈까 가슴 졸이던 직업. 게다가 드라마는 시간순으로 촬영하지 않는다. 실내 신은 스튜디오에서 여러 날 분량을 몰아서 찍기에 다른 날 찍는 야외 신과 의상이나 액세서리가 달라서는 안 된다. 전문용어로 이를 ‘연결’이라 한다. 쪽대본이 일상이던 시절이니 ‘연결’이 얼마나 고된 작업인지, 그때 생긴 그녀의 ‘체크 강박증’도 이해가 간다. 이제 작가가 된 그녀는 더하기보다 덜어내는 게 더 중요한 스타일링처럼, 그림을 그릴 때도 덜어내는 작업에 공을 많이 들인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매일 운동하고, 생계를 위해 삽화 주문도 받으며, ‘부스 지키기’ 같은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게 버티지만, 당장 죽는 것도 아니니 괜찮다.
“산책하면서 자주 멈춰요. 남의 강아지도 훔쳐보고요. 일상에서 만나는 색과 빛을 수집해 캔버스에 고정하죠. 제 가슴속에서 들리는 비명, 아니 돌고래 휘파람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해요. 삶의 일상을 사랑하니 계속 관찰하고 그리게 되는 것 같아요.” 혼자 배워 혼자 그리다 보니 잘못한 건 아닐까, 틀리진 않았을까 두렵지 않다는 야요. 6월이다. 미뤄둔 적성검사를 하기에도, 내면의 돌고래 휘파람 소리를 듣기에도 이보다 근사한 계절이 또 있을까.

  • 김지은(아나운서, 작가)
  • 에디터 김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