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의 공존
자연을 보호 대상이 아닌 인간과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으로 바라보는 것. 한국WWF를 이끄는 박민혜 사무총장이 이야기하는 오늘날 자연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미래에 대하여.

자연은 더 이상 인간과 분리된 풍경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폭염과 산불, 홍수와 가뭄, 사라지는 생태계와 멸종 위기종은 이제 우리 일상은 물론 산업과 도시, 시장과 정책의 방향까지 뒤흔들고 있다. 기후 위기와 생물 다양성 감소가 동시다발적으로 가속화되는 지금, 세계 최대 규모의 자연 보전 기관 WWF(World Wide Fund for Nature, 세계자연기금)는 이를 비단 환경문제만이 아닌 오늘의 사회와 경제 구조 전반을 관통하는 의제로 바라본다. 전 세계 100여 개국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WWF는 과학적 데이터와 정책 제언, 기업 협력과 대중 캠페인을 연결하며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모색해왔다. 2024년부터 한국WWF를 이끌고 있는 박민혜 사무총장은 커뮤니케이션과 정책, 파트너십 영역을 두루 거치며 조직의 방향을 설계해온 인물이다. 그는 WWF를 단순한 자연 보전 단체가 아닌 “자연에 대한 책임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는 조직”이라고 설명한다. 세계 환경의 달을 앞둔 지금, 기후와 자연을 둘러싼 ‘이중 위기’ 속에서 WWF가 바라보는 역할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WWF는 종종 ‘자연 보전 단체’로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그 역할이 훨씬 확장되어 있습니다. 사무총장님은 WWF를 어떤 조직으로 정의하시나요? ‘자연에 대한 책임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는 곳’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과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부와 권력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의미했다면, 오늘날에는 우리가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다할 것인지까지 그 개념이 확장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누려온 번영 역시 결국 자연이라는 기반 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WWF는 단순히 동식물을 보호하는 활동을 넘어 ‘우리가 어떤 자연을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사회와 함께 만들어가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생물 다양성은 동식물을 지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삶과 미래를 지탱하는 가장 필수적인 기반이기에 더욱 중요하죠.

WWF는 기후 위기와 생물 다양성 감소를 이중 위기로 정의합니다. 두 문제를 개별 이슈가 아닌 하나의 구조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2024년 WWF가 발표한 ‘지구 생명 보고서’는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야생동물 개체군 규모가 평균 73% 감소했다는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특정 종이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사회를 지탱해온 자연의 조절 시스템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는 경고 신호로도 읽히죠. 자연은 식량과 물, 공기, 에너지, 기후 안정성 등 우리 삶을 유지하는 기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생물 다양성이 무너지면 결국 인간 사회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WWF는 이를 자연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넘어가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신호로 간주합니다. 기후 위기와 생물 다양성 손실은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악화시키는 연결된 구조입니다. 기후변화는 생태계를 훼손하고, 생태계가 무너지면 숲과 바다 같은 자연의 탄소 흡수 기능이 약화되면서 다시 기후 위기가 심화됩니다. WWF는 결국 자연을 보호하는 일이 곧 기후 대응이며, 기후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생물 다양성 역시 회복될 수 없다고 보죠.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위기가 이미 경제와 산업 전반의 리스크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서식지 보전과 복원뿐 아니라 식량·에너지·금융·생산·소비 시스템 전반의 전환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죠. 자연을 비용이 아닌 미래 생존을 위한 기반 자산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WWF는 환경보호 단체를 넘어 정책·시장·금융까지 아우르는 ‘시스템 차원의 변화’를 지향합니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WWF가 수행하는 핵심 역할은 무엇일까요? WWF는 자연 파괴를 유발하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거버넌스, 시장, 금융이라는 세 가지 축에서 시스템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국제 환경 목표와 국가 전략 수립을 지원하고, 기업에는 공급망 전환과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제안합니다. 금융 영역에서는 자본이 자연 회복과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흐를 수 있도록 기준을 제시하는 한편, 환경 리스크 관리 체계 확산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WWF는 NGO에 머물지 않고 각 이해관계자가 실질적 변화를 이행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 설계자’이자 ‘연결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과학적 데이터와 정책 제언, 기업 협력이라는 서로 다른 축을 ‘2030년 네이처 포지티브’라는 공통의 방향 아래 연결하는 것 역시 WWF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고요.
WWF는 서식지 보전, 해양 쓰레기 수거 등 물리적 현장 활동도 병행합니다. 이러한 활동은 정책이나 시장 변화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나요? 현장 활동은 정책과 제도 개선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WWF는 현장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이를 정책 제언과 국제 협약 논의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4년간 수거한 약 225톤의 해양 침적 쓰레기 데이터는 플라스틱 오염 문제가 실제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증적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애니스테이(Anistay)’와 같은 서식지 보전 활동은 국토와 해양의 30%를 보호·복원하자는 ‘30×30’ 목표를 시민 참여 방식으로 실천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WWF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시민들이 자연 보전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장기적 행동 변화로 이어지도록 돕고자 합니다.

아래쪽 서식지 감소로 위협받는 눈표범 보호와 보전 활동에도 힘쓴다. © Sascha Fonseca / WWF-UK
최근 한국WWF는 기업 협력(PACT),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CoREi), TNFD 대응 등 비즈니스 전환 영역에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기업과의 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실질적 전환 의지’를 봅니다. 기업이 장기적 관점에서 비즈니스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자 하는지, 그리고 이를 실제 실행으로 이어갈 의지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판단합니다. 특히 WWF는 기업의 공개적 선언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목표와 방향성을 외부에 공개하는 순간, 홍보를 넘어 시장에 보내는 하나의 시그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시그널이 결국 같은 산업군 안에서 다른 기업의 변화를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하니까요. WWF는 특히 자연과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산업일수록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경우에는 단순한 캠페인 차원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 전환에 초점을 맞춰 보다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방식으로 파트너십을 추진합니다.
WWF의 캠페인은 점점 정서적 접점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환경 메시지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감각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감’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문제를 먼 미래의 위기가 아니라 지금 내 삶과 연결된 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도 달라집니다. 최근 반복되는 산불과 폭염, 홍수 같은 기상 이변 역시 많은 이에게 기후 위기를 일상의 문제로 체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WWF의 메시지 역시 경고에 머무르지만은 않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캠페인 문구 중 하나도 ‘Love it or Lose It’입니다. 무엇을 잃게 될지 이야기하는 동시에 왜 그것을 지키고 싶은지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마련이니까요. 결국 자연이 곧 우리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환경 보전 역시 특별한 활동이 아닌 일상을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환경적 책임’이라는 개념은 개인, 기업, 정부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사무총장님은 이 세 주체의 책임을 어떤 기준으로 구분하고 계신지요. 환경적 책임은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책임의 방식과 무게는 각 주체의 영향력과 역할에 따라 달라집니다. 현재의 생물 다양성 손실과 기후 위기는 개인의 실천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특히 생산과 소비 구조, 에너지 시스템, 공급망처럼 자원과 구조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업과 정부가 보다 큰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역할이 작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개인은 유권자이자 소비자로서 시장과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특정 주체만이 아니라 각 주체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구조적 전환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보는 거죠.

사무총장님은 커뮤니케이션과 정책, 파트너십을 모두 경험하셨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현재 WWF를 이끄는 데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나요? 무엇보다 ‘전체를 보는 시야’를 만드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은 하나의 기능만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좋은 전략이 있어도 사회적으로 충분히 전달되지 않으면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고, 정책과 연결되지 않으면 구조적 영향을 만들기도 힘들죠. 또 WWF 같은 조직을 이끄는 데에는 끊임없이 배우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환경과 사회를 둘러싼 문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하나의 관점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까요. 결국 리더십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상태라기보다 계속 배우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힘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오랜 시간 환경을 다루며 자연을 바라보는 개인적 기준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환경 분야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자연을 인간이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 것 같아요. 훼손된 자연을 지키고, 멸종 위기종을 보호하고, 더 나빠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대예요. 자연이 인간의 생존 자체를 떠받치고 있다고 느끼거든요. 기후, 물, 식량, 에너지, 건강 등 우리가 살아가는 거의 모든 기반이 결국 자연 시스템 위에 존재합니다. 인간이 자연을 일방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연이 우리를 지탱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환경을 우리의 미래와 생존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바라보게 됐어요.
미래 세대에게 어떤 자연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보존’과 ‘회복’ 사이에서 WWF가 지향하는 방향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자연과 환경적 혜택을 미래 세대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지금 세대는 자연이 제공하는 많은 자원을 기반으로 성장과 편리를 누려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연을 지나치게 소모한 채 다음 세대에 넘긴다면 결국 미래 세대는 더 큰 비용과 불안정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연금과도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지금 세대가 미래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계속 꺼내 쓰기만 하면 결국 다음 세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지는 구조니까요. 그래서 WWF는 ‘보존’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 세대를 위해 이미 훼손된 자연을 회복시키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앞장서서 변화를 이끌어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