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여행기 | Nobl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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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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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와 우피치, 메디치와 미켈란젤로로 기억되는 도시. 그러나 피렌체의 시간은 그보다 깊고 복잡하다. 괴테가 지나치고, 토마스 만과 바르부르크가 다시 읽어낸 르네상스의 이면을 따라간다.

미켈로초가 설계한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 중정.
프라 안젤리코가 벽화를 그린 사보나롤라의 방.
그의 화형 그림들.
바사리가 설계한 우피치 미술관 회랑.

우리나라 사람의 피렌체 사랑은 대단하다. 두오모나 우피치 미술관의 이모저모를 척척 맞히며, 메디치 가문이나 미켈란젤로에 관한 상식도 수준급이다. 현지 특산물인 흰 소로 요리한 스테이크 가게가 SNS 입소문 덕에 점포를 늘려가며 휴식 시간도 없이 운영된다. 시내 관광에 머무르지 않고 토스카나 와인 관광, 친퀘테레 해안 관광까지 이어진다. 내겐 ‘베누스의 탄생’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던 여인의 말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것 때문에 여기에 왔지!” 그 한마디에 오늘날 피렌체가 소비되는 방식이 압축되어 있었다.
37세에 이탈리아 기행을 떠난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피렌체에 단 3시간만 머물고 로마로 떠났다. 그에게 르네상스는 아직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미치지 못하는 미완성이었다. 르네상스의 진정한 재평가는 괴테의 사후 쥘 미슐레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를 거쳐 이루어진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보티첼리의 ‘베누스의 탄생’도 독일 미술사학자 아비 바르부르크의 논문을 통해 비로소 제대로 평가받았다. 그러니 괴테가 피렌체 전체를 생략하고 로마와 나폴리에서도 고대에 경도된 기행을 했음은 당연하다. 소설가 토마스 만은 존경하는 선배 괴테가 흘려보낸 것을 만회해야 했다. 그의 유일한 희곡 <피오렌차(Fiorenza)>가 그 결과물이다. 아쉽게도 <피오렌차>는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내용 탓에 무대가 아닌 독서를 위한 희곡으로 연명했고, 국내에선 그나마 번역본도 만날 수 없다. 쉽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492년 4월, 죽음을 앞둔 로렌초 데 메디치는 자신의 삶을 심판해줄 사람으로 수도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를 부른다. 그 무렵 사보나롤라의 설교는 피렌체를 뒤흔들었고, 보티첼리마저 세속적인 그림을 찢어버렸다는 소문이 퍼진다. 로렌초 곁에는 피렌체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가상의 여인 ‘피오레’(꽃이라는 뜻)가 있다. 그녀는 젊은 시절 자신이 사보나롤라를 유혹한 뒤 모욕을 주었고, 그 상처로 그가 아름다움을 증오하게 되었다는 비밀을 들려준다. 로렌초와 사보나롤라는 마지막으로 마주 앉아 아름다움과 신앙, 권력과 구원을 놓고 대립한다. 사보나롤라는 메디치 가문의 재산과 피렌체의 자유를 요구하지만, 로렌초는 끝내 이를 거부한 채 숨을 거둔다. 승리를 선언한 사보나롤라에게 피오레는 “그대가 지른 불이 결국 그대를 태울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그는 “나는 불을 사랑한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뒷날 자신도 화형당할 운명을 예고하며 막이 내린다.
토마스 만은 로렌초의 임종을 지킨 친구 안젤로 폴리치아노의 회고를 토대로 이 희곡을 썼다. 실제 이야기지만, 피오레라는 가상의 존재는 바로크 무대에 등장하는 ‘도덕’, ‘사랑’, ‘시간’ 따위의 알레고리와 같다. 아름다움과 쾌락을 상징하는 피오레를 놓고 세속의 지도자인 로렌초와 교회를 상징하는 사보나롤라가 줄다리기한다. 만은 사보나롤라가 자신을 대변한다고 밝혔지만, 사실 로렌초도 그의 다른 반쪽이다. 예술가와 평범한 시민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의 소설과 같은 맥락이다.

베키오 다리 위 벤베누토 첼리니 흉상.
프라 안젤리코가 수태고지를 그린 산 마르코 수도원 독방.
바사리가 개조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내부.

꽃의 도시 피오렌차

두오모에서 북쪽으로 3분 남짓 걸어가면 물샐틈없이 단단해 보이는 밝은 갈색 건물이 나온다. 국부 코시모가 지은 메디치 궁전(현재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이다. 중정에는 코시모가 도나텔로에게 주문한 다윗 동상이 있었다. 같은 다윗인데 도나텔로의 청동상은 메디치를 상징했고, 미켈란젤로의 대리석상은 메디치를 몰아낸 공화정을 의미했다. ‘동방박사 예배당’은 피렌체의 보물이다. 벤노초 고촐리가 그린 ‘동방박사의 행렬’은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위상을 가장 잘 대변한다. 화가는 동방박사의 행렬 속에 당대 동로마 황제와 총대주교, 그리고 소년 로렌초를 비롯한 메디치 일가를 등장시켰다. 그림을 주문한 로렌초의 조부 코시모 데 메디치는 비잔틴제국의 멸망과 함께 피렌체에 이식된 동방 문명이 르네상스의 초석이며, 그것을 손자가 선도한다는 뜻을 벽화에 담게 했다. 화려한 색채에서 뿜어 나오는 자부심은 보는 사람마저 들뜨게 한다.
리카르디 궁전을 나와 왔던 길을 따라 5분만 걷다 보면 사보나롤라가 수도원장으로 재임했던 산 마르코 수도원을 만난다. 코시모가 미켈로초에게 설계를 맡긴 수도원은 절제미와 우아한 양식으로 방문자를 경건하게 한다. 독방마다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그리스도의 일대기는 기도와 명상으로 금욕을 버티던 수사들에게 ‘천국의 문’처럼 보였을 터. 수도원 박물관에는 사보나롤라의 초상과 그의 수도복, 기도서, 화형을 담은 그림 따위가 전시되어 있다.
시뇨리아 광장에는 사보나롤라가 ‘허영의 소각’을 했던 자리가 표시되어 있다. 보티첼리가 그곳에서 태운 자작품은 무엇이었을까? ‘베누스의 탄생’ 못지않은 걸작이 아름다움을 맹목적으로 추종했다는 자아비판으로 불길에 던져졌다. 보티첼리 마음에 불을 지른 사보나롤라는 위정자의 편에 서지도, 교황을 대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야심은 순수하지 않았고, 빨리 파고든 만큼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그는 그 자리에서 화형당했다.

미켈로초가 설계한 산 마르코 수도원 중정.
소년 로렌초를 동방박사로 그린 고촐리의 벽화.
기를란다요의 세례자 요한의 탄생. 맨 오른쪽이 ‘님파′.

님파와 피오레

광장 아래 위치한 우피치 미술관에서도 ‘베누스의 탄생’이 전시된 방은 특히 붐빈다. 그런데 바로 옆에 걸린 작은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드물다. ‘베누스의 탄생’이 로렌초 시대를 상징한다면, 보티첼리가 그린 ‘중상모략’은 사보나롤라 시대를 대표하는 알레고리의 결정체다. 재판관 미다스 왕의 당나귀 귀에 ‘의심’과 ‘무지’가 거짓 정보를 흘린다. 두건을 쓴 ‘원한’에 이끌린 ‘중상모략’은 희생자의 머리채를 움켜잡은 채 끌고 간다. ‘기만’과 ‘위선’이 중상모략의 머리를 매만진다. 벌거벗은 채 하늘을 가리키는 ‘진실’을 검은 옷의 ‘회개’가 바라본다.
해 질 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제단에서는 로렌초의 외삼촌이 미켈란젤로의 스승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에게 주문한 벽화를 본다. 성모의 일생을 그린 연작 중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서 요한의 모친 엘리자베트는 바로 로렌초의 어머니 루크레치아 토르나부오니다. 그녀의 남동생이 작고한 누이를 기려 화폭에 담게 한 것이다. 일찍이 ‘베누스의 탄생’의 가치를 세상에 알린 바르부르크는 제단화 속 마지막 방문자에게 주목했다.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은 그녀가 다른 인물과 달리 서둘러 뛰어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머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과일 바구니를 이고 있다. 사실 그녀는 이보다 앞선 그림에도 있다. 마리아가 사촌을 찾아가 임신 사실을 알릴 때도 먼 성문 밖에서 과일 바구니를 머리에 인 채 달려온다.
바르부르크는 이 인물이 실제 누구인지 신중히 연구했지만, 끝내 답을 얻지 못했다. 그는 ‘님파’로 불린 그녀를 곧 르네상스의 상징이라고 보았다. 오늘따라 햇빛이 그림에 드리워 그녀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해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그 순간 문득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다 “바르부르크의 님파와 토마스 만의 피오레는 같은 시대정신 아닌가!” 피오레이자 님파인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괴테보다 넓은 시대를 읽으라고, 로렌초보다 절제하라고, 사보나롤라만큼 연대하되 맹목적이어선 안 된다고, 바르부르크가 본 돌파구를 갈망하라고, 그리고 토마스 만보다 더 실천할 가슴을 가지라고.

  • 글·사진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
  • 에디터 김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