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아티스트 카우스와 스페이스K 이장욱 큐레이터의 만남 | Nobl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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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아티스트 카우스와 스페이스K 이장욱 큐레이터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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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하고 귀여운 비주얼의 피겨, 광장 한가운데를 차지한 거대 조각, X자 눈의 캐릭터를 새긴 패션 제품들. ‘카우스’ 하면 스치는 이런 이미지는 그의 예술에 대해 아주 일부만을 말할 뿐이다. 오는 12월 27일까지 스페이스K에서 열리는 <친구, 그리고 이웃>전에서 그 나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스페이스K 이장욱 수석 큐레이터 .

“종종 사람들이 저를 하나의 브랜드로 여기는 게 신기합니다. 제 스튜디오는 직원이 10명 남짓한 작은 규모거든요. 이렇게 작은 팀이 전 세계를 무대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즐겁습니다.” 카우스(KAW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 브라이언 도널리(Brian Donnelly)에게 자신을 브랜드로 보느냐, 예술가로 보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라피티로 시작해 아트 토이, 회화와 조각, 브랜드 협업에 이르기까지 그는 상업과 순수예술의 경계를 능수능란하게 가로질러왔고, 이는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기 위한 창작의 일환이었다. 스페이스K 이장욱 큐레이터가 보는 카우스의 진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친숙한 캐릭터와 매끈한 표면 뒤에는 치밀한 제작 과정과 동시대 시각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인간을 향한 애정이 자리한다. 오랫동안 카우스의 전시를 꿈꿔온 이장욱 큐레이터, 그리고 카우스와 함께 그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국내 미술관에서 처음 열리는 카우스의 개인전입니다. 전시 기획 배경은 무엇인가요?
이장욱 2024년 카우스가 한국을 방문해 스페이스K를 찾았을 때 전시에 관한 구체적 이야기를 처음 나눴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부터 그를 팝 아이콘이나 토이 아티스트라는 익숙한 범주를 넘어, 동시대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 방식을 새롭게 보여준 미술가로 조명하고 싶었어요. 2014년 런던 리젠트 파크의 프리즈 스컬프처에서 높이가 10m에 이르는 그의 대형 조각을 마주한 경험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카우스는 국내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미술관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최근 온타리오 미술관(AGO)의 가 크리스털 브리지스와 SFMoMA를 순회했고, 앤디 워홀 미술관 역시 을 통해 그의 작업을 소비문화뿐 아니라 죽음과 불안의 문제까지 확장해 조명했죠. 이번 전시는 너무 익숙해 오히려 보지 못한 것들을 살펴보는 자리입니다. 카우스 회화와 조각의 물성, 매끈한 표면 뒤에 축적된 노동, 캐릭터 사이의 거리와 긴장, 친숙한 이미지 속 고독과 충돌을 천천히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카우스 작가.

카우스에 대해 말할 때 그라피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광고판과 전화 부스를 캔버스 삼아 도시 곳곳에 자신의 이미지를 남겼죠. 1990년대 뉴욕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카우스 어릴 때부터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 끌렸고, 그라피티를 하면서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10대에 그런 문화를 경험한 건 정말 행운이었죠. 당시 인터넷이 없어서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우편으로 주고받았습니다. 브롱크스나 워싱턴하이츠에서 작업한 그라피티를 촬영해 저지시티의 슈퍼마켓에서 4×6인치 사진으로 인화한 다음 독일, 스페인, 로스앤젤레스 등 세계 곳곳의 또래들과 교환했죠. 그 경험 덕분에 제 세계가 크게 확장됐습니다. 제게 그라피티는 다양한 환경에 반응하고 이미지로 소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작은 드로잉이 거대한 벽이나 다른 환경에 어떻게 구현될지 늘 상상해야 했기에 스케일에 대한 감각도 익혔죠. 그때 몸에 밴 사고방식은 지금도 조각이나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를 작업할 때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1999년 도쿄 바운티 헌터와 협업해 첫 번째 아트 피겨를 제작했고 이후 다양한 스트리트 브랜드와 협업했죠. 그 시절 얻은 감각 중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무엇인가요?
카우스 일찍이 제 작품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꼭 회화나 조각처럼 거창한 형태가 아니더라도, 티셔츠나 장난감처럼 부담 없이 곁에 둘 수 있는 오브제는 삶 속에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니까요. 그런 작업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더 많은 삶과 문화권에 스며듭니다. 최근 MLB나 오데마 피게 같은 브랜드와 협업했는데, 각 분야의 문화와 장인정신을 경험하는 일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오가며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은 제게 큰 즐거움이에요. 그 자유가 제 작업의 가능성을 계속 넓혀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큐레이터님은 카우스의 남다른 경험이 그의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보시나요?
이장욱 카우스의 여정을 돌아보면,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고 몰두해온 것들이 결국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로 모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회화에 새롭게 도입한 스프레이 기법 역시 10대 시절 그라피티 경험에서 비롯했죠.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 졸업 후 애니메이션 배경 제작에 참여한 경험은 선명한 윤곽과 평면적인 색면, 정교한 마감이 돋보이는 회화의 토대가 됐습니다. 나아가 캐릭터와 장면 전체를 조율하는 디렉터적 감각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카우스는 감독이 배우를 캐스팅하듯 자신의 캐릭터를 선택하고 관계를 설정해 다양한 서사의 가능성을 만들어냅니다. X자 눈과 두개골을 연상시키는 머리는 죽음을 암시하지만 둥근 몸은 친근감을 불러일으키죠. 그의 캐릭터에는 귀여움과 불안, 유머와 우울, 애정과 공격성이 한데 충돌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복합적 감정을 투영하는 매개가 되죠.

스페이스K 전시장 전경. 마주 보고 있는 조각 작품 중 왼쪽은 ‘그림자 측정하기’(2026), 오른쪽은 ‘멀리 바라보기’(2026). Photo by JunHo Lee. Courtesy of Space K.
‘보라색 크레용’(2026). Photo by Farzad Owrang. Courtesy of Space K.

카우스는 대중문화와 소비문화를 예술의 언어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종종 ‘21세기의 앤디 워홀’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이장욱 두 사람 모두 대중문화의 이미지와 생산·유통 시스템을 예술의 언어로 활용했지만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은 다릅니다. 워홀이 이미 유통되고 있는 상품과 스타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복제하며 소비사회의 욕망과 공허를 드러냈다면, 카우스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집단적 기억을 변형해 자신만의 캐릭터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캐릭터는 회화와 조각, 토이와 패션, 공공 미술을 오가며 매체마다 새로운 의미를 얻습니다. 또한 회화와 조각은 기성품처럼 매끈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치밀한 수작업의 결과고, 대량생산되는 제품에는 오히려 작가의 고유한 조형 언어가 선명하게 각인됩니다. 작품과 상품, 원본과 복제의 경계를 뒤섞는 이 역설이 카우스가 소비문화를 다루는 독자적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문화나 브랜드 협업이 카우스의 예술 여정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방향성이 예술적 권위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 적은 없나요?
카우스 글쎄요. 저는 말씀하신 부분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요. 앞서 말한 워홀과의 차이점을 예로 들면 제겐 소비주의 자체가 작업의 소재이자 무대입니다. 저는 언제나 제 작업을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어떻게 확장할지 고민해요. ‘시리얼’ 프로젝트의 경우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데서 끝내지 않고 패키지 이미지를 다시 회화로 옮기는 작업을 이어갔죠. 그 과정에서 대형 회화가 빠르게 그린 드로잉처럼 보이게 하는 법을 골몰했고요. 사실 어떤 선택이 작업의 가치를 높이고 낮출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작가님에게 중요한 건 ‘자신만의 기준’인 것 같습니다. 그 기준에 컬렉팅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2024년 뉴욕 드로잉 센터에서 30년간 수집해온 컬렉션을 전시하기도 했죠. 작가님에게 컬렉팅은 어떤 의미인가요?
카우스 컬렉팅을 하다 보면 작가의 삶과 작업의 궤적까지 들여다보게 돼요. 그 과정에서 예술가가 되는 길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계속 배우게 되죠. 제 컬렉션에 포함된 헬렌 레이는 50세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드로잉을 시작했는데, 그런 이야기는 제게도 큰 용기를 줍니다. 저 역시 그라피티를 하던 시절에는 예술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이 떠올린 생각을 끝까지 현실로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게 컬렉팅은 배움이자 제 작업을 더 깊이 돌아보게 하는 과정입니다.

이번 신작에선 자녀들에게 받은 영향도 엿보입니다. 아이들의 방이나 놀이터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등장하죠.
카우스 아이들이 생긴 뒤로 집 안에 널린 온갖 물건이 왠지 미학적 의미를 갖게 된 것 같아요.(웃음) ‘빨간 공’이나 ‘보라색 크레용’ 같은 작품도 이와 무관하지 않죠. 아이들을 키우며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정말 작고 사소한 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아이들은 제가 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데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주변의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게 해줍니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작품이 달리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카우스의 작업을 지켜봐온 큐레이터님은 그의 작품에서 좀 더 눈여겨봐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장욱 카우스의 캐릭터는 눈이나 입으로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습니다. 대신 자세와 관계로 감정을 전달하죠. 어떤 자세든 그 자체가 하나의 중립적 서사가 됩니다. 이번 신작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캐릭터가 서로의 목을 붙잡고 있지만 싸우는지, 장난을 치는지, 서로를 붙잡는지 끝내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열린 해석의 가능성이야말로 카우스 작품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회화와 조각은 물론 공공 미술, 피겨, 브랜드 협업까지 예술의 경계를 끊임없이 넓혀왔습니다. 지금의 작가님을 보면 ‘아티스트로서 해볼 수 있는 건 거의 다 해봤다’라는 생각도 드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작업실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카우스 모든 것을 해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직 아무것도 못했다고 느껴요.(웃음)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하나 꼽으라면 언제나 스튜디오일 겁니다. 저는 작업을 ‘무언가를 이뤘다’는 관점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제 충분하다’고 느낀 적도 없죠. 새로운 회화와 조각을 만들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조합을 발견하는 과정 자체가 여전히 가장 큰 동력입니다. 이 마음이 제 곁에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 에디터 윤정훈
  • 사진 장기평(인물), 스페이스 K(공간,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