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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검에서 조세핀의 사파이어까지, 쇼메의 246년.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옥좌에 앉은 나폴레옹 1세’, 1806년.

짙은 남색 벽마다 은빛 티아라가 빼곡했다. 2017년 파리 방돔 광장 12번지 쇼메 메종의 ‘살롱 드 디아뎀(Salon des Diademes)’을 처음 찾았을 때의 기억이다. 처음에는 근사한 티아라 박물관을 차려놓은 줄 알았다. 가까이 다가가 살피니 전부 제작에 앞서 고객이 써보던 모형이었고, 티아라 실물은 한쪽 쇼케이스에 따로 있었다. 방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귀부인이 모형을 하나씩 대어보고 장인이 곁에서 높이와 폭을 매만졌을 한 세기 전 풍경이 절로 그려졌다. 마운트배튼 백작부인 같은 저명한 고객의 티아라 모형이 실제로 있으니 막연한 상상만도 아니다. 다시 눈앞의 모형으로 시선을 돌렸다. 완성작이라면 스톤의 광채에 가려졌을 선의 구조가 모형에서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쇼메가 말하는 ‘선의 예술’을 나는 이 살롱에서 비로소 납득했다. 그날 나는 좀처럼 방을 떠나지 못했다. 지난 두 세기 동안 황제의 검도, 교황의 관도 이 메종을 거쳐 갔다. 대관식 검은 퐁텐블로성에 남았고, 손잡이를 장식했던 리젠트는 검을 떠나 루브르에 있다. 교황의 삼중관은 바티칸 보물실에 봉안됐고, 황후의 디아뎀만 대서양을 건너 스미스소니언의 유리장 안에서 빛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전부 한 공방의 납품 기록이다. 수신처가 황제와 교황, 황후일 뿐.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을 위한 준비 스케치.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우는 장면을 담았다.
쇼메의 전신인 니토 메종을 이끌었던 프랑수아 레뇨 니토의 초상화.
황후 조세핀이 소장했던 팔메트 장식의 파뤼르. 고대 신화와 올림포스의 신들을 새긴 인탈리오가 장식되어 있다.
조세핀이 소장했던 말라카이트 파뤼르. 짙은 녹색 말라카이트를 활용한 데이 주얼리로, 원형 그대로 보존된 희귀한 세트다.

황제의 보석상

이 걸작들이 탄생하던 시절, 아틀리에의 이름은 쇼메가 아니었다. 창립자 마리 에티엔 니토(Marie-Etienne Nitot)의 이름을 본뜬 ‘니토(Nitot)’였다. 1780년 파리에 아틀리에를 연 니토는 혁명이라는 격변 속에서도 작업을 이어갔고, 이후 새로운 시대의 권력자 나폴레옹과 인연을 맺으며 메종의 역사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다. 지금의 ‘쇼메’라는 이름은 1885년 아틀리에를 이어받은 조세프 쇼메에게서 비롯됐다. 새로운 제국의 정점에 선 나폴레옹에게 주얼리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권력과 정통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제관과 검, 파뤼르(세트 주얼리)는 새로운 황제의 권위를 상징했고, 니토와 그의 아들 프랑수아 레뇨 니토가 이끄는 아틀리에는 그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 시작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 나폴레옹의 대관식 검이다. 1803년 니토는 나폴레옹이 의뢰한 검 제작에 참여했다. 특히 검의 손잡이를 장식한 리젠트 다이아몬드의 세팅을 맡았다. 140.64캐럿에 달했던 리젠트는 프랑스 황실의 보물로 여겨지던 다이아몬드로, 나폴레옹의 대관식 검에 자리하며 새로운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1804년 12월 2일, 나폴레옹은 이 검과 함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렀고, 그 장면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유명한 회화로 남았다. 비슷한 시기 니토는 나폴레옹이 교황 비오 7세에게 헌정한 티아라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금속 구조는 금세공 장인 앙리 오귀스트가 맡고, 니토는 수백 개 보석과 진주를 세팅했다. 그 안에는 고대 조각 에메랄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듬해 완성된 티아라를 로마로 전달하던 프랑수아 레뇨 니토는 밀라노에서 나폴레옹과 조세핀을 만났고, 조세핀은 그가 가져온 주얼리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만남을 계기로 니토 가문은 ‘황실의 공식 주얼러’라는 칭호를 얻는다. 교황에게 전할 주얼리를 통해 황후의 신뢰까지 얻은 것이다. 권력의 중심에서 선택받은 주얼러가 된 순간이었다.

스톤을 보는 안목

나폴레옹 시대 쇼메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에 닿는다. ‘무엇이 쇼메를 황실의 공식 주얼러로 만들었을까?’ 뛰어난 세공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대 최고 젬스톤을 확보하고, 서로 다른 스톤의 색과 비율을 하나의 조화로운 작품으로 완성하는 능력 역시 중요했을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에메랄드다. 나폴레옹은 에메랄드를 각별히 선호했고, 1810년 마리 루이즈와의 결혼을 위해 에메랄드 파뤼르를 주문했다. 디아뎀과 목걸이, 귀고리, 빗으로 구성된 세트였으며 디아뎀에만 79점의 에메랄드를 세팅했다. 같은 에메랄드라도 각각의 색과 농도가 달랐기에 여러 스톤을 하나의 세트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색채를 읽고 조율하는 섬세한 안목이 필요했다. 오늘날 쇼메가 젬스톤을 대하는 방식 역시 이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쇼메는 다이아몬드를 선택할 때 국제 기준인 4C, 즉 컬러·컷·투명도·캐럿 중량을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메종만의 다섯 번째 기준으로 ‘하모니(harmony)’를 더한다. 스톤 자체의 비율과 빛 반사, 그리고 세팅까지 고려해 하나의 작품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균형을 찾는 것이다. 컬러 스톤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다. 쇼메는 100여 년 전부터 젬스톤을 미학적 관점과 과학적 관점에서 함께 연구해왔으며, 20세기 초 조세프 쇼메는 메종 내부에 자체 실험실을 마련해 천연 스톤과 합성 스톤의 차이를 연구했다. 오늘날에도 에메랄드와 사파이어, 루비, 옐로 다이아몬드뿐 아니라 파파라차 사파이어, 인디콜라이트 투르말린, 오스트레일리아산 블랙 오팔처럼 개성 있는 희귀 스톤을 찾아 작품에 담는다. 결국 쇼메에 젬스톤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희귀하고 비싼 원석을 고르는 일이 아니다. 원산지와 품질, 색과 투명도, 컷을 면밀히 살피는 동시에 그 스톤이 하나의 창작물 안에서 어떤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판단하는 일에 가깝다. 디자인 스튜디오와 스톤 바이어, 메종의 장인이 긴밀하게 협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세핀의 딸 오르탕스 왕비의 수국 브로치. 1807년경 니토가 제작했다.
조세핀의 초상화. 말메종의 정원을 배경으로 자연에 대한 황후의 애정을 담았다.
니토가 1811년경 제작한 밀 이삭 모티브의 티아라. 9개의 이삭에 66캐럿이 넘는 올드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했다.

자연에서 온 영감

쇼메의 미학은 조세핀 황후와도 깊이 연결돼 있다. 조세핀은 쇼메의 첫 번째 주요 고객이자 영원한 뮤즈로, 자연에 대한 애정이 깊은 인물이었다. 그녀가 말메종 정원에서 가꾼 다양한 식물과 꽃은 이후 쇼메의 자연주의적 주얼리 언어에 영향을 미쳤다. 밀 이삭과 월계수, 장미, 수국 등의 모티브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유다. 2011년 쇼메가 니토 아틀리에에서 1811년경 제작한 밀 이삭 티아라를 다시 매입한 것도 의미가 깊다. 9개의 이삭에 66캐럿이 넘는 올드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이 작품은 쇼메의 자연주의적 미학과 황실 주얼리의 역사를 동시에 보여준다. 2017년 5월, 꽃이 피기 시작한 말메종을 찾았을 때의 기억이 있다. 조세핀이 각지에서 수집한 장미로 가득했던 정원은 그녀가 자연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쇼메가 조세핀을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창작의 뮤즈로 바라보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선을 세공하다

쇼메의 자연주의는 꽃과 식물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생명력이 흐르는 곡선과 움직임, 그리고 그 안에서 스톤을 가장 아름답게 드러내는 선의 구조로 이어진다. 방돔의 살롱에서 직접 써본 월계수 티아라가 특히 그랬다. 화이트 골드 가지 위에 다이아몬드(잎)와 사파이어가 세팅되어 있었지만, 금속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치 스톤이 가지 위에 그대로 피어난 듯했다. 그 가벼움의 비밀에는 쇼메의 대표적 세팅 기법인 필 쿠토(fil couteau)가 있다. 프랑스어로 ‘칼날 같은 선’을 뜻하는 이 기법은 스톤을 감싸는 금속을 극도로 얇게 제작해 금속의 존재감을 최소화한다. 그 결과 스톤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효과가 만들어지고, 본연의 광채와 투명도, 깊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쇼메가 말하는 ‘선의 예술(Art of the Line)’이 가장 직접적으로 구현되는 순간이다.

쇼메의 2026 하이 주얼리 컬렉션 ‘A Journey Through Nature’의 ‘민트 리프’ 네크리스. 17.46캐럿 아콰마린과 아코야진주를 세팅했다.
‘라 나튀르 드 쇼메’ 컬렉션의 ‘피르마망 아폴리니앵’ 티아라.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로 월계수의 우아한 선을 표현했다.

다섯 번째 기준

필 쿠토 기술의 산실인 방돔의 메종에서 올해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 ‘A Journey through Nature’가 탄생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작품은 ‘민트 리프(Mint Leaf)’ 네크리스다. 작품의 중심에는 빙하가 연상되는 맑고 서늘한 글레이셔 블루 컬러가 특징인 17.46캐럿 에메랄드 컷 아콰마린이 있다. 특히 10~17캐럿에 이르는 대형 아콰마린을 동일한 컬러와 품질로 선별해 하나의 세트로 구성한 점에서 쇼메의 젬스톤 셀렉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아콰마린 위로는 아코야진주가 작은 티아라처럼 놓이고, 필 쿠토 와이어를 통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가벼움을 구현했다. 자연에서 얻은 영감과 조세핀의 유산, 그리고 쇼메의 세공 기술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만나는 방식이다.

쇼메의 하이 주얼리는 결국 스톤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다이아몬드는 4C를 넘어 하모니를 살피고, 컬러 스톤은 중량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스톤의 색과 투명도, 컷, 희소성은 물론 그것이 디자인 안에서 어떤 조화를 이루는지까지 살핀다. 이렇게 선택된 스톤은 디자인 스튜디오와 스톤 바이어, 장인의 협업을 거쳐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나폴레옹의 검에 리젠트를 세팅하고, 수십 개 에메랄드를 하나의 파뤼르로 조율했던 니토의 안목은 그렇게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제 작품이 향하는 곳은 황제의 궁정이나 교황의 보물실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가장 아름다운 스톤을 발견하고, 그것이 가장 빛나는 순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방돔 광장 12번지를 지키고 있다.

왼쪽 ‘조세핀 에끌라 플로럴’ 네크리스. 27.08캐럿 쿠션 컷 마다가스카르 사파이어를 중심에 세팅했다.
오른쪽 금속의 존재감을 최소화해 스톤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가벼움을 구현하는 필 쿠토 세공 작업.
  • 윤성원(주얼리 스페셜리스트)
  • 에디터 이주이
  • 사진 쇼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