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ath into Music
동시대 클래식 무대에서 가장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가 2026년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 음악가로 선정되어 네 번의 무대를 선보인다. 협주곡과 실내악, 리사이틀을 넘나드는 폭넓은 무대와 레퍼토리로 꾸준히 음악적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그의 현재와 미래.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1984년 이탈리아에서 출생한 독일인 바이올리니스트. 2016년 시애틀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뒤티외의 바이올린협주곡 ‘꿈의 나무(L’Arbre des Songes)’로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워너 클래식스 전속 아티스트로 2024년 발매한 음반 〈American Road Trip〉은 2025년 세계적 권위의 독일 클래식 음악 시상식 오푸스 클래식(Opus Klassik)에서 ‘올해의 실내악 음반상’을 받았다. 2021년부터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바이올린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세페 과르네리 델 제수의 바이올린 ‘르뒤크(Leduc, ex Szeryng)’를 연주하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아름다운 남도 바다를 품은 통영에서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는 클래식 팬들의 연간 계획표에 가장 먼저 자리하는 중요한 축제다. 2002년 시작해 24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적 음악가들이 오로지 이 축제를 위해 수천 마일을 날아 ‘통영’이라는 작은 마을에 모여든다. 친숙한 고전음악과 생소한 현대음악, 동양과 서양 음악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것은 물론, ‘음악’을 통해 이루어지는 세계적 음악가들의 교감과 호흡을 눈앞에서 목도할 수 있는 것 역시 이 축제에서만 즐길 수 있는 호사다. 오는 3월 27일부터 4월 5일까지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는 ‘FACE the DEPTH(깊이를 마주하다)’를 주제로 펼쳐진다. 올해의 상주 음악가 중 한 명은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그는 현재 세계 음악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 중 한 명이다. 최근 세계적 음악 매체 〈Bachtrack〉이 매년 집계하는 통계 ‘2025년 세계에서 가장 바쁜 바이올리니스트’ 2위에 올랐으며, 2025~2026년 시즌에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주 음악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그가 돋보이는 지점은 완벽한 기교와 바쁜 스케줄 그 너머에 자리한다. 2016년 뒤티외의 바이올린협주곡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한 것이나, 미국에 뿌리를 둔 다양한 작곡가와 그들의 음악을 ‘바이올린’이라는 그물로 길어 올린 음반 〈American Road Trip〉 등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시선은 관성을 벗어나 더 넓은 지평을 향한다. 그런 면에서 ‘깊이를 마주하다’라는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의 주제는 하델리히라는 연주자의 결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그는 이 축제에서 리사이틀과 실내악 공연, 두 곡의 바이올린협주곡을 포함해 총 네 차례 무대에 올라 축제의 중심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간다. ‘상주 음악가’라는 이름으로 펼쳐 보일 이 무대는 한 연주자가 지금 어떤 음악적 질문을 품고 있는지 가감 없이 드러낼 것이다. 축제에 앞서 통영에서 마주하게 될 하델리히의 현재, 그리고 그가 음악가로서 끝없이 탐색해온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3월 말부터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 음악가’가 되셨습니다. 이 축제에 대해 알고 있었나요? 지난 몇 년 동안 이 음악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전에 투어 일정으로 통영을 방문해 연주한 경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통영의 콘서트홀도 잘 알고 있죠. 이처럼 의미 있는 음악제의 일원이 된다는 사실이 무척 설레고 기쁩니다.
음악제 예술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입니다. 개인적 인연이 있는지, 그리고 그의 음악과 음악제를 이끄는 비전 및 헌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그가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상상의 세계를, 지극히 비전통적이면서 다층적인 방식으로 음악적 풍경으로 변환해내는 과정은 정말 매혹적입니다. 아직 직접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인사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통영은 아름다운 바다와 풍부한 문화 예술 분위기로 잘 알려진 도시입니다. 전에 통영에서 한 차례 연주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재방문을 앞둔 소감은 어떤가요? 이번에는 도시를 조금 더 여유 있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투어 중에는 주변을 둘러볼 시간이 거의 없거든요. 지금까지는 콘서트홀만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도시 곳곳을 직접 걸으며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이번 음악제에서는 네 차례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데, 그중 ‘하델리히 & 프렌즈’ 공연에 대해 묻고 싶어요. 비올리스트 박하양, 첼리스트 최하영, 피아니스트 찰스 오언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데, 이들과 협연해본 경험이 있나요? 찰스 오언과는 여러 차례 협연했고, 몇 년 전에는 음반도 함께 녹음했습니다. 다른 연주자들과는 아직 함께 무대에 오른 적이 없지만 연주 영상을 통해 접했고, 이번에 직접 만나 음악을 나누게 될 시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공연에서 연주할 모차르트와 드보르자크의 피아노4중주는 실내악 레퍼토리 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작품이어서 그들과 함께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리사이틀 역시 많은 관객의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특히 전반부에 배치한 프랑스 음악 특유의 색채와 미학이 인상적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성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전하고 싶은 바는 무엇인가요? 드뷔시와 풀랑크의 바이올린소나타는 오랜 시간 반복해서 다시 찾게 되는 작품입니다. 특히 드뷔시의 소나타는 다른 어떤 작품과도 닮지 않은 독보적 작품이죠. 이 곡은 마치 색채의 변화, 순간적 놀라움이 이어지는 순간들의 총합처럼 느껴져요. 1·3악장에는 스페인 음악에서 비롯한 플라멩코적 요소, 2악장에는 재즈적 감각도 스며 있죠. 그럼에도 단편적으로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연속된 사유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프로그램의 서두에 배치한 니콜라 드 그리니의 오르간 작품 편곡(Récit du Chant de l’Hymne Précédent)과 다케미쓰의 작품(Distance de Fée for Violin and Piano)은 이러한 프랑스 소나타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세기를 넘어 프랑스 작곡가들이 공유하는 감수성과 미학적 연속성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죠. 프로그램의 마지막에는 프로코피예프의 두 번째 바이올린소나타를 배치했습니다. 밝고 외향적인 신고전주의적 작품으로, 연주할 때마다 큰 즐거움을 주는 곡입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과의 협업 소식이 한국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기자회견에서 조성진이 “정말 좋아하는 연주자와 실내악 투어를 할 예정”이라고 언급하며 궁금증을 자아냈고, 그 파트너가 당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기대된다’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 협업을 결정하게 되었나요? 조성진과는 약 2년 전 처음 만났습니다. 물론 그전부터 서로의 음반을 통해 음악은 잘 알고 있었죠. 다음 시즌에 그와 함께 무대에 설 생각을 하면 정말 설렙니다. 그는 매우 특별한 예술가입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통영에서 제 리사이틀은 조성진이 아니라 찰스 오언과 함께합니다.
당신의 연주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가 방대한 레퍼토리일 텐데, 연주를 따라가다 보면 바이올린 레퍼토리의 전 영역을 훑는 듯한 인상마저 줍니다. 저는 늘 레퍼토리에 새로운 작품을 더하려고 노력합니다. 최근에는 존 애덤스의 바이올린협주곡을 새롭게 익혔는데,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아직 제가 무대에 올린 적이 없는 코른골트 협주곡도 공부하고 있고요. 앞으로 위촉 작품들도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공개하기에는 조금 이른 단계입니다.
2024년 발매한 음반 〈American Road Trip〉은 매우 신선하고 대담한 프로젝트였죠. 이 음반에서 당신은 ‘클래식 연주자’로 한정하기엔 굉장히 유연하고,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반을 녹음한 당시, 저는 미국에 정착해 20년째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음반에 담긴 번스타인, 코플런드, 아이브스를 비롯한 미국 작곡가의 음악은 이제 마치 제 음악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음악적 어휘를 확장해나가는 과정은 늘 중요한 동기부여이자 즐거움이 됩니다. 솔직히 말해, 이 음반 녹음은 제 커리어에서 가장 즐거운 스튜디오 작업이었습니다.

공식 스케줄을 보니, 정말로 연주 일정이 많더군요. 국경을 숨 가쁘게 넘나드는 그런 ‘연주 여행’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일일 텐데, 컨디션 조절과 자기 관리를 위한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끊임없는 이동은 분명히 피곤합니다. 하지만 저는 연주하는 것을 진심으로 사랑해요. 무대 위에 서 있을 때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경험이 쌓이면서, 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죠. 잦은 이동과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려면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수입니다. 그 과정에서 연습이 자유 시간을 침범하는 경우도 많아 스스로 기준을 두고 조절하려 해요. 오랜 시간 공연하며 식습관, 시차 적응 등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자연스레 배웠습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한 가지 방법은 ‘게임’인데, 예전부터 게임을 좋아했습니다. 보드게임, 두뇌게임, 비디오게임까지요. 20년 넘게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대회도 꾸준히 보고 있어요.(웃음)
커리어 초창기와 지금의 자신을 비교할 때, 음악과 맺는 관계에 변화가 있었다고 느끼나요? 어떤 연주자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 연주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당신으로 하여금 음악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관객을 위해 연주하는 것을 사랑하고, 관객에게 많은 에너지를 얻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위대한 음악 작품은 제가 거기에 들인 시간보다 훨씬 큰 영감과 기쁨을 되돌려줍니다.
올해 하반기에 예정된 서울 리사이틀 프로그램은 아직 공개하지 않았는데, 그와 관련해 작은 힌트라도 줄 수 있나요? 그 공연은 솔로 바이올린 리사이틀이 될 겁니다. 최근 보스턴과 뉴욕에서 연주한 프로그램과 어느 정도 유사할 것이고, 물론 〈American Road Trip〉의 음악도 일부 포함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음악가로서 혹은 한 사람으로서 꿈이나 바람이 있다면 뭘까요?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말 없이도 깊이 공감하는 순간들을 만들어낼 수는 있습니다. 저는 음악이 존재하는 한, 희망도 함께 지속된다고 믿습니다.
- 글 박지혜(프리랜서)
- 에디터 김수진
- 사진 슈샤오 양(Suxiao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