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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감싸는 완전무결한 콘셉트가 무엇보다 중요한 ‘바 인테리어’에서도 예술 작품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벽화를 그린 뉴욕의 전설적인 바를 비롯해 감도 높은 개인 컬렉션으로 ‘컬렉터의 방’ 콘셉트를 구현한 바, 컨템퍼러리 작가의 오더메이드 작품이 공간에 화룡점정을 찍는 공간까지, 예술적 터치가 깃든 수준 높은 바를 소개한다.

런던 버클리 호텔에 자리한 더 스너그. 벽화는 TM 데이비의 작품이다.

The Snug at The Berkeley Bar & Terrace

영어 ‘snug’는 작고 아늑한 공간을 뜻한다. 런던 버클리 호텔의 ‘더 버클리 바 & 테라스’ 안에 위치한 ‘더 스너그’는 그 이름처럼 작고 아늑하며 은밀한 ‘바 속의 바’다. 오래된 영국 저택에서 공수한 300년 수령의 호두나무를 섬세하게 마감한 패널이 공간 전체를 채우고, 목재 패널 위를 따라 이어지는 석고 프리즈가 자연스럽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와 벽난로, 여러 개의 라운지로 분할된 바 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더 스너그는 9명 정도만 수용이 가능하며, 예약제로 운영하는 비스포크 바다. 더 버클리 바 & 테라스의 다소 점잖은 분위기와 달리, 이 공간은 몽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벽화로 다른 장소와의 분리를 꾀한다. 여러 곡선을 입체적으로 중첩해 구성한 공간에 여성의 얼굴이 담긴 핑크빛 벽화를 둘러 마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 벽화를 그린 주인공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TM 데이비로, 과거 영국 펍에서 스너그가 남성들의 시선을 피해 여성들끼리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 데에서 영감을 받아 벽화를 완성했다. 바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샴페인을 비롯해 수백 종의 와인 리스트를 즐길 수 있으며, 일본의 이치로 위스키, 포르탈레사 테킬라, 트루아 리비에르 럼 등 숨겨진 생산자들의 칵테일을 비롯해 시즌마다 새로 출시되는 캡슐 메뉴도 만날 수 있다. 야생 농어 세비체, 아일랜드산 바위굴 등 영국 각 지방에서 나는 천연 재료로 만든 안주도 수준급이다.

WEB www.the-berkeley.co.uk

더 레드 룸 한편에 자리한 바 테이블. 인테리어는 브라이언 오설리번의 작품이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 ‘I am Rouge’가 전면에 자리한 더 레드 룸 바.

The Red Room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아만 스파 등 최고의 시설을 갖춘 런던의 더 코노트 호텔에는 ‘더 레드 룸’이라 이름 붙인 은밀한 와인 바가 자리한다.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 브라이언 오설리번이 설계한 공간으로, 샴페인 룸과 이어진 벨벳 커튼을 드리운 문을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다. 더 레드 룸이라는 이름은 이 공간의 정체성을 명쾌하게 대변한다. “마치 컬렉터의 거실처럼 느껴지길 바랐습니다. 이곳을 채운 예술 작품은 모두 호텔 소유주 패디 매킬런의 개인 컬렉션에서 선별한 작품이죠. 그의 컬렉션은 붉은 기운이 도는 작품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레드 룸 콘셉트로 발전하게 되었죠.” 브라이언 오설리번의 설명이다. 공간의 중심인 벽난로 위에는 ‘I am Rouge’라는 글씨로 캔버스를 채운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 ‘I am Rouge’가 자리한다. 그 양옆에 자리한 스테인드글라스 윈도 패널은 영국 화가 브라이언 클라크의 작품으로, 생생한 레드와 블루 색조가 공간에 화려함을 더한다. 보드라운 캐멀색 벨벳 소파 위, 밝은 황토색 벽면에 걸린 붉은 회화 작품은 이 공간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트남 여성 작가 티아-투이 응우옌의 작품 ‘Scarlet Mist’로, 조용히 하늘을 뒤덮은 붉은 구름을 시각화한 듯한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정부의 기밀 해제 문서를 담은 제니 홀저의 붉은 수채화 작품 ‘Benghazi’가 화룡점정을 찍으며 컬렉션의 스토리를 완성한다. 와인 컬렉션도 특별하다. 3000종의 와인과 함께, 코르크를 열지 않고 와인을 잔 단위로 즐길 수 있는 코라빈 시스템도 갖췄다. 모든 와인은 이탈리아산 대리석으로 만든 맞춤형 트롤리에서 디캔팅해 서빙한다.

WEB www.the-connaught.co.uk

루트비히 베멜만스의 벽화로 장식한 뉴욕의 베멜만스 바 내부.

Bemelmans Bar

현대도시의 문명사를 간직한 보물 창고와도 같은 도시 뉴욕은 여전히 화려한 호텔과 바, 레스토랑의 격전지지만, 뉴욕이 가장 아름답게 번영한 시기의 향수를 느끼고 경험하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장소가 있다.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칼라일 호텔에 위치한 전설적 바 ‘베멜만스’도 그중 하나다. 1947년에 문을 연 이 바는 존 F. 케네디, 프랭크 시나트라, 엘리자베스 테일러, 폴 매카트니 등이 즐겨 찾던 곳으로,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약 80년간 꾸준히 영업을 이어왔다. 금박 천장과 은은한 조명, 호박빛 작은 램프, 그랜드피아노를 곁에 두고 노래하는 재즈 가수, 붉은 정장을 입고 일하는 바텐더까지, 클래식 바의 모든 조건을 갖춘 이 바는 소피아 코폴라가 감독한 영화의 배경으로도 여러 번 사용되었다. 이런 베멜만스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화가 루트비히 베멜만스가 그린 벽화 ‘센트럴파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동화 ‘마들린느’ 시리즈의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이곳의 벽면에 마들린느와 그녀의 친구들이 센트럴파크에서 보내는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 넣었다. 아이스스케이트를 타는 코끼리, 음식을 나르는 원숭이 웨이터, 피크닉을 즐기는 토끼 등이 동화적 화풍으로 표현되어 있다. 바 오픈 당시 벽화를 맡은 베멜만스가 금전적 대가 대신, 1년 6개월 동안 칼라일 호텔에 묵을 수 있는 숙박권을 요청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이렇듯 낮은 조도, 빛바랜 듯한 벽면에 그린 베멜만스 바의 순수한 그림은 이곳이 단순히 ‘술’을 즐기는 장소가 아니라 ‘위안’을 얻는 장소임을 넌지시 이야기한다.

WEB www.rosewoodhotels.com

로코 포르테 호텔스와 DO 디자인 스튜디오가 협업해 꾸민 바 마그리트

내부 벽지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여성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Bar Magritte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호텔 아미고는 지난 2023년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탄생 125주년을 기념해 ‘바 마그리트’를 오픈했다. 널리 알려졌듯 르네 마그리트는 벨기에에서 태어나 평생을 브뤼셀에서 보냈다. ‘예술가로서 파리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당시의 통념에서 벗어나, 브뤼셀에서 누리는 평범한 삶이 그만의 일상적이고 논리적인 초현실주의 세계를 만들어낸 것. 브뤼셀에는 그가 살던 집을 개조한 르네 마그리트 하우스 & 박물관을 비롯해 세계 최고 컬렉션을 자랑하는 마그리트 뮤지엄도 자리해 도시 전체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마그리트 뮤지엄에서 도보로 10여 분 떨어진 시내에 위치한 바 마그리트는 그 감각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장소다. 순식간에 신비로운 토끼 굴로 빠져들듯 바의 음악과 벽화, 분위기, 술 등 모든 요소가 마그리트가 꿈꾸던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감각적 여정의 출발점은 바 전체의 벽을 장식한 컬러풀한 벽지다. 르네 마그리트의 초기작 ‘여성들’에서 영감을 받아, 런던 출신 디자이너 애덤 엘리스가 제작했다. 실제로 당시 마그리트는 여러 작품에서 여성 누드를 중심으로 인체 비율이나 포즈를 기하학적 구성으로 표현했는데, 이 벽지도 자유로운 모습의 여성 누드를 감각적 형태로 표현하며 작가의 화풍을 재현해냈다. 자유로운 자세의 여성상들은 톤 다운된 다채로운 색감으로 공간에 율동감을 더한다. 로코 포르테 호텔스의 디자인 디렉터 올가 폴리치와 DO 디자인 스튜디오의 세라 대니얼스가 협업해 디자인한 아르데코 스타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유쾌한 색채 팔레트로 마감한 소파와 황동 바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WEB www.roccofortehotels.com

영국 서퍽 출신 화가 롭슨 스탠나드의 추상 회화로 꾸민 벨벳 바이 살바토레 칼라브레세 내부.

겹겹이 드리운 붉은 벨벳은 공간에 클래식한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Velvet by Salvatore Calabrese

런던의 코린티아 호텔은 ‘벨벳 바이 살바토레 칼라브레세’라는 새로운 바를 열며 클래식의 완벽한 귀환을 알렸다. 이 호텔은 과거 왕실의 오락 장소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정보 작전의 거점으로 쓰였고, 이후 카바레로 사용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내부 디자인을 도맡은 데이비드 콜린스 스튜디오는 고급스럽고 화려한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공간 전체를 640m가 넘는 붉은 벨벳으로 겹겹이 둘렀다. 황동으로 제작한 칵테일 테이블, 피아노 바, 그리고 볼록거울까지 곳곳에 배치한 디테일 역시 공간에 극적 효과를 더한다. 또한 바 본연의 정체성에 충실하기 위해 전설적 믹솔로지스트이자 영국 바텐더 길드 회장인 살바토레 칼라브레세를 총괄 기획자로 초빙해 전체 디렉팅을 맡겼다. “바는 위대한 극장과 같다”는 그의 말은 클래식하면서도 혁신적인 칵테일 메뉴, 은밀하고 고급스러운 이곳의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첫인상은 빅토리아 시대 프라이빗한 상류층 공간을 연상시키지만, 공간은 결코 과거에만 갇혀 있지 않다. 특히 영국 서퍽 출신 화가 롭슨 스탠나드의 추상적인 꽃 콜라주 작품들이 공간의 중심에서 고전과 현대의 중심을 잡는 균형추 역할을 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는 주로 물감의 레이어링을 활용해 추상 작업을 펼치는데, 바에 걸린 작품은 데이비드 호크니 혹은 마티스를 닮은 산뜻한 색감으로 눈을 사로잡는다. 이와 함께 칵테일계의 대부 살바토레 칼라브레세가 큐레이션한 창의적 메뉴가 특별함을 더한다. 예술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칵테일을 소개하는 ‘The Pixel Book’ 프로젝트를 전개 중인 그는 뭉크의 ‘절규’에서 착안한 ‘Marmalade Madness’,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큰 파도 아래’를 모티브로 한 ‘Wave of Dreams’ 등 한 편의 예술적 오마주와도 같은 결과물을 선보인다.

WEB www.corinthia.com

미국 화가 딘 바거의 천장화로 장식한 트레 디타. Photo by Eric Wolfinger.

Tre Dita

미국 건축가 진 갱이 설계한 세인트 레지스 시카고 건물에 위치한 ‘트레 디타’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식 장소 중 하나다. 넷플릭스 미식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필 로즌솔의 극찬으로 화제가 됐으며, 긴 통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시카고의 스카이라인과 미시간호의 압도적 풍경 역시 명성에 큰 몫을 하고 있다. LA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 성공적으로 레스토랑 비즈니스를 이어가고 있는 셰프 에번 펑크(Evan Funke)의 첫 시카고 진출 레스토랑으로, ‘쿠치나 토스카나(Cucina Toscana)’를 표방하며 파스타를 비롯한 정통 이탤리언 요리를 선보인다. 800평, 2층 규모의 널찍한 레스토랑 한편에는 트레 디타라는 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레스토랑과 분리하면서 아늑함을 더하기 위해, 디자인을 맡은 데이비드 콜린스 스튜디오는 고전적이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택했다. 긴 대리석의 바 공간과 평행하게 이어지는 테이블 위의 천장을 핸드 프린트 캐노피로 장식한 것. 샤갈이 한 획 한 획 손으로 그려 유명해진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가 그러했듯, 이 역시 공간의 분위기를 단숨에 전환한다. 천장과 벽을 뒤덮은 호두나무 패널과 조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토스카나 지역의 정취를 표현하기 위해 빛바랜 빨간색과 황토색 등의 컬러를 사용했다. 공간에 율동감을 불어넣는 29m 길이의 천장화는 미국 화가 딘 바거의 작품으로, 시카고의 스카이라인과 강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바에서는 이탈리아 증류주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며, 스피리츠 디렉터 다이앤 코코란이 직접 만든 시그너처 칵테일도 맛볼 수 있다.

WEB www.treditarestauran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