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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20

해방을 향한 초대

지금까지 존재한 적 없는 것을 창조한다. 일본 전위예술 그룹 구타이의 마에카와 쓰요시.

위쪽 ‘181102’, Sewn Hemp Cloth and Oil, 162.1×130.3cm, 2018.
아래쪽 1963년 구타이 피나코테카에서 처음 개인전을 개최한 마에카와 쓰요시.

1954년 ‘남을 모방하지 말고, 지금까지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것을 창조한다’는 모토로 결성한 일본 전위예술 그룹 구타이. 요시하라 지로(Jiro Yoshihara)를 중심으로 모인 작가들은 물질의 성질을 강조하면서 기존의 예술 개념에 균열을 내는 데 앞장섰다. 당시 그들이 추구했던 건 추상, 퍼포먼스, 환경 등과 결합한 미술. 앵포르멜(미술가의 격정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중시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추상미술), 플럭서스(1960년대 초에 발생한 극단적 전위예술 운동. 어딘가 어긋나 보이면서 동시에 개방적이고 희화적인 표현 추구) 등과 시기가 맞물린 구타이는 과거의 형식주의적 미술과 결별을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홍콩 악셀 베르보르트(Axel Vervoordt) 갤러리에서는 1962년 구타이에 합류한 마에카와 쓰요시(Tsuyoshi Maekawa)의 개인전 (~9.24)이 열리고 있다.





왼쪽 ‘Mannaka Tate no Blue (A18)’, Oil and Burlap on Canvas, 162.5×130.5cm, 1964.
오른쪽 ‘Untitled’, Sewn Hemp Cloth, 162.1×130.3cm, 1978.

구타이 그룹은 어떤 방식으로 전시 작품을 선정했는지 궁금합니다. 독자적 예술성과 카리스마를 지닌 구타이 창시자 요시하라 지로는 항상 구타이 피나코테카(Gutai Pinacotheca)와 그 근방에서 개최할 전시회에 참여할 예술가를 결정했습니다. 구타이 작가들은 동료이자 라이벌이었습니다. 모두 경쟁심이 강했어요. 요시하라에게 인정받기 위해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했습니다. 피나코테카에서 개인전을 여는 건 저희에게 꽤 영광스러운 기회였거든요. 참고로 구타이 피나코테카는 1년에 약 10회의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요시하라는 1966년 ‘3M 쇼(Maekawa & Matsutani & Mukai)’ 같은 단체전도 기획했어요. 이와 함께 프랑스 비평가 미셸 타피에(Michel Tapie)와 우호 관계인 루초 폰타나(Lucio Fontana), 주세페 카포그로시(Giuseppe Capogrossi) 같은 해외 예술가를 초대하기도 했고요. 피나코테카는 동양과 서양의 예술가를 연결해주는 문화적 랜드마크이기에 저는 이곳에 가는 것을 즐겼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구타이 그룹의 기본 이념인 ‘자유’의 중요성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림을 통해 독창성과 해방을 추구하며, 그 누구도 이전에 만들어내지 못한 것을 창작하는 데 집중합니다. 관람객들이 제 작품을 직관적으로 관람하면 좋을 것 같아요.
보통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하시나요? 노트에 스케치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저는 아무도 보지 못한 독특한 형태를 만드는 일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걸려요. 예술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직물을 선택하고, 재단하고, 바느질한 후 면과 삼베 또는 포대를 목재 들것에 올려 늘리는 준비를 합니다. 직물은 제 손으로 직접 모양과 형태를 변경할 수 있어 물질의 성질을 강조한다는 구타이의 기조와 일맥상통하거든요.
작가님의 일과는 어떤가요? 여든여섯 살이지만 아직은 작품 제작에 열정이 있고, 또 즐겁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피로감을 느끼지 않아요. 한 가지 어려운 점은 작품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리는 일입니다. 제 스튜디오에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그림에 바르는 작업장이 따로 있어요. 그곳은 색소가 퍼지지 않도록 비닐로 가려져 있는데요. 예전에는 몸에 색소가 침투해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비닐로 완전히 덮여 있어 괜찮습니다.
‘Untitled’(1978) 작품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습니다. 작품이 루초 폰타나의 공간 개념과 공명하는지 궁금합니다. 1970년대부터 작업에 바느질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하신 작품은 현재 홍콩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데, 제 첫 번째 바느질 작품 중 하나죠. 1972년 구타이가 분열된 후 저는 필사적으로 새로운 시각적 표현을 찾았습니다. 추측하건대, 당시 그래픽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바쁘게 지냈기에 제 그림에 디자인 요소가 도입된 것 같습니다. 저는 공간을 이용하면서 면과 삼베에 선으로 보이는 복잡하고 얇은 주름을 바느질해서 만듭니다. 공간 개념은 제 작업의 중요한 측면이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그림을 구성할 때 직관을 따릅니다. 1966년 구타이 피나코테카에서 폰타나와 카포그로시가 단체전을 개최했을 때 가운데를 베어낸 ‘점토 구’ 조각을 처음 접했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작품에 칼집을 내는 것만으로도 공간에 새로운 차원을 열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 과정이 신선하고 전위적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1950년대 일본 구타이부터 1970년대 한국 단색화까지 추상회화의 여정을 추적한 전시 [Painting and Existence: Chinese, Japanese, and Korean Abstract Painting](중국 베이징 탕 컨템퍼러리 아트, 2020.10.31~12.12)에 한국 작가들과 함께 참여하셨습니다. 제 작업이 단색화 작가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점은 있어요. 가끔 제 작품에 나타나는 미니멀리즘 요소가 윤형근 작가의 작품과 공명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181102’(2018)에선 검은색 잉크 물감이 흐릿해지는 효과를 즐겼어요. 전시에 참여하며 단색화 화가들이 활동할 무렵 한국에 큰 정치적 어려움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신념을 지키며 본질을 통해 독자성을 추구했던, 놀라운 시각적 표현을 보여준 단색화 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예술을 더 잘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항상 과거에서 배우고, 역사와 전통에 대해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생각하면,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그것은 해방적이고 귀중해서 관람객은 그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예술을 해석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예술은 큰 해방감을 선사하는 만큼 관람객이 제 그림을 직관적으로 관람하며 에너지를 얻었으면 합니다.

 

에디터 김미영(jarah@noblesse.com)
사진 제공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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