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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22

사이키델릭 르네상스

셰퍼드 페어리와 마일즈 알드리지의 환상적이고 도발적인 전시.

마일즈 알드리지, ‘3-D’, 2010. ⓒ Miles Aldridge / CCOC 2022

사람들은 다채롭고 환상적인 컬러를 보거나 몽환적인 비트를 듣고 “사이키델릭하다”라고 표현한다. 그리스어로 ‘정신’을 뜻하는 ‘psyche’와 ‘눈에 보이다’라는 뜻의 ‘delos’를 결합한 사이키델릭(psychedelic)은 마약을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환각을 뜻한다. 이러한 사이키델릭은 1960~1970년대 의학뿐 아니라 미술,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예술가의 영혼을 깨우는 촉매제가 됐다. 기존 전통 예술의 틀을 깨고 ‘해방감’을 안겨준 것이다. 최근 열린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와 마일즈 알드리지(Miles Aldridge)의 전시 역시 사이키델릭 문화에 영향을 받아 눈을 뗄 수 없는 색감과 이미지로 관람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두 아티스트는 화려함 속에 사회현상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녹여내 예술가로서의 책임을 몸소 실천한다. 그라피티, 영화, 사진 등 비교적 친숙한 대중문화를 소재로 두 아티스트가 어떤 식의 날카로운 통찰을 작품에 담았는지 살펴보자. 마일즈 알드리지는 <보그>, <하퍼스 바자> 등 유수 매거진과 협업하며 25년 넘게 활동해온 패션 사진작가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8월 28일까지 열리는 전시 <컬러 픽쳐스, 마일즈 알드리지 사진전 2000~2022>에서는 컬러와 영화를 주제로 기획한 작품 11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컬러에 대한 마일즈 알드리지의 남다른 애정은 전시 제목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또 그는 자신의 작업을 우연한 찰나에 포착한 ‘photography’가 아니라 그 안의 깊은 의미를 담아 그린 ‘picture’에 가깝다고 생각해 전시명에 ‘컬러 픽쳐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일즈 알드리지의 작품 속 등장인물은 대부분 완벽하게 세팅된 모습이다. 때로는 허구의 미장센이 더 진실되다고 생각한 그는 잘 만들어진 이미지 기저에 사회의 부정적 면모에 대한 일침을 숨겨놓곤 한다. 예를 들면, 비너스처럼 눈부신 외모의 여성은 형형색색의 슈퍼마켓에서 텅 빈 눈동자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성이 부재한 자본주의를 꼬집는다. 또 궁정 같은 곳에서 윤택한 삶을 살 것 같은 부녀의 초상에 불행한 가족사가 은밀히 흐르도록 만드는 식이다. 마일즈 알드리지는 패션 포토그래퍼로 이름을 알리기 전부터 영화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1960년대 이탈리아 흑백영화를 꼭 보아야 할 정도로 영화광이었다. 특히 이탈리아 영화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흑백영화부터 서스펜스 대가인 앨프리드 히치콕, 데이비드 린치, 스탠리 큐브릭 등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그중 전시의 세 번째 섹션인 ‘스릴러’에서 그는 풍부한 색감과 기묘한 구도로 서스펜스 넘치는 장면을 포착한다. 마일즈 알드리지는 사진 작업을 할 때 한 편의 영화를 찍는 것만큼 치밀한 스토리보드를 구성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토록 완벽한 미장센과 긴장감이 존재할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마일즈 알드리지, ‘Venus Etcetera(after Titian), 2021. ⓒ Miles Aldridge / CCOC 2022

마일즈 알드리지가 풍부한 색감과 영화에서나 마주할 법한 장면으로 ‘사이키델릭’함을 보여주었다면, 셰퍼드 페어리는 강렬한 프로파간다적 색채와 아르누보적 패턴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이를 드러낸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셰퍼드 페어리는 대학 시절 스티커를 제작해 티셔츠와 스케이트보드 등에 붙이며 서브컬처 신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They Live)>(1988)에 반복해 등장하는 단어 ‘오베이’에 큰 영향을 받은 뒤 당대 전설적 프로레슬러의 얼굴과 오베이라는 단어를 활용해 ‘오베이 자이언트(OBEY Giant)’ 캠페인을 벌였다. 정체불명의 스티커를 도시 곳곳에서 마주한 대중이 ‘반응하고 생각하고 의미를 찾도록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사이키델릭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오.지. 립스(O.G. Rips)’와 ‘앙드레 헨드릭스(Andre Hendrix)’ 등의 작품을 통해 독특하고 강렬한 색을 조합해 포스터 작업을 이어갔다.
이번 전시에서는 1997년부터 2017년까지 유명인의 초상과 함께 평등, 반전, 인권 등의 주제를 녹여낸 포스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는 히잡을 두르거나 장미와 총, 화환에 둘러싸인 여성과 인권 운동가의 초상에 평등, 평화, 정의 같은 단어를 반복해 넣음으로써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모두가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계속해서 의식하도록 만든다.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행동할 이유가 없고, 행동은 내 철학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한 그에게 예술은 사회 모습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형태를 만드는 망치에 가깝다. 대표 작품으로는 ‘아이즈 오픈(Eyes Open)’이 있다. 작품 중앙에 보이는 지구 안에는 커다랗게 뜬 눈이 있고, ‘아이즈 오픈’이라는 간결한 텍스트가 자리한다. 그 위로 붉게 피어오른 꽃은 장미와 카네이션을 결합한 가상의 꽃으로 셰퍼드 페어리의 신념과 가치관을 상징한다. 그는 ‘아이즈 오픈’을 통해 사람들이 눈과 마음을 열어 세계가 지닌 문제를 통찰하고 주체적으로 이를 해결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사이키델릭 문화는 인간의 감각을 극단으로 넓힌 환각을 바탕으로 한다. 이에 정치적 경계, 문화적 경계 등 경직된 것으로부터 해방을 꿈꾸는 사조와 닿아 있다. 기존 체제에서 탈피해 인간이 지닌 자유로운 사랑,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창한 히피 문화도 사이키델릭 문화와 영향을 많이 주고받았다. 마일즈 알드리지, 셰퍼드 페어리 역시 인간이 만든 체제와 계급, 각 문화 장르에 존재하는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인간 자신을 반성하고 올바른 가치를 실천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작품에 투영했다. 2022년 동시대를 사는 우리는 기후 위기와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 코로나19 등으로 점점 더 경직된 일상을 살고 있다. 이들의 오색찬란한 작품 앞에서 합법적 사이키델릭을 느끼며 나보다 우리를, 인간보다 우주를 감각해보는 건 어떨까? 두 아티스트가 보여주는 이미지에서 괴로운 일상을 타개할 꿈과 환상이 신기루처럼 나타날지도 모른다.





왼쪽 셰퍼드 페어리, ‘O.G. Rips’, 2019. © 2022 Courtesy of Shepard Fairey/Obey Giant Art Inc.
오른쪽 셰퍼드 페어리, ‘Eyes Open’, 2021. © 2022 Courtesy of Shepard Fairey/Obey Giant Art Inc.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백가경(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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