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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03

사진을 보다가

20세기 한국 사진들 속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미술사의 정취를 느꼈다

문선호, ‘기다림’, 1966. © 문현심
배상하, ‘미완성 A’, 1963. © 배장환
배동준, ‘끝손질’, 1976. ©배동준


지금 바로 페이지 몇 장만 넘기면 만나게 되는, 시각적 즐거움이 가득한 화려한 사진 밑바탕에는 평범한 일상을 기록한 흑백사진이 있었다. 오늘날에야 사진 속 총천연색 풍경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삶은 단조로운 흑백 필름에 기록되지 않았던가. 사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20세기 중반 서양미술 신(scene)에 ‘흑백사진만이 예술’이라는 개념이 팽배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어디선가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사진가들의 작품 대부분은 흑백 다큐멘터리 사진이었다. 그런데 만약 흑과 백이 만연한 1960~1970년대 우리나라 사진들 틈에서 서정적 컬러 사진의 대가 솔 레이터의 감성과 차가운 추상의 선구자 피터르 몬드리안의 형식이 느껴졌다고 말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현재 삼청동 새터에 새로이 문을 연 ‘뮤지엄한미 삼청(예전 한미사진미술관)’에선 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전시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가 진행 중이다. 4월 16일 막을 내리는 이번 신축 개관전은 한국 사진이 어떠한 태도와 형식으로 그 흐름을 일궈왔는지 살펴보는 데 의의가 있다.
기사를 읽고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를 감상할 분들을 위해 한국 사진의 역사를 간략히 돌아보고자 한다. 1839년 프랑스에서 발명된 사진은 20여 년이 지난 1860년대 우리나라에 알려졌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오랜 시간 온 나라의 문이 막혀 있었던 탓이다. 그런 우리나라에서 처음 사진을 접했다고 추정되는 얼리어답터는 청나라에 간 공식 사절단이다. 1842년 난징조약으로 5개 항구를 강제 개방한 청나라에는 당시 이미 사진이 퍼져 있었다는 게 정설이지만, 사절단은 당연히 우리나라에 사진을 전파하지 못했다. 그저 사진의 맛만 보았을 뿐이다. 이 같은 답보 상태에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한 건 다름 아닌 1873년 친정을 선포한 고종의 문호 개방. 이후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 수신사가 사진을 들여오면서 바야흐로 한국 사진 역사의 첫 페이지가 펼쳐졌다.
서양과 마찬가지로, 상류층과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우리나라 사진 대중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사진을 활용하면 초상화보다 저렴한 가격에 자신을 자세히 묘사할 수 있다는 점이 그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1895년 실시한 단발령도 한몫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자르기 전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남기는 방법 역시 사진이었다. 이와 함께 흔히 말하는 예술 사진도 태동했다. 이 또한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일본에서 건너온 특수 인화법은 밋밋한 포즈와 단조로운 조명을 보완할 수 있어 사람들을 사진의 매력에 빠지게 했다.







뮤지엄한미 삼청 전경 사진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전 전경 사진.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전 전경 사진.
조현두, ‘실재’, 1978. ©조영란


다시 전시 내용으로 돌아가, 물론 1929~1982년이라는 넓은 범위 안에는 다양한 사진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굳이 1960~1970년대와 솔 레이터의 감성(문선호의 1966년 작품 ‘기다림’ 참고), 몬드리안의 형식(배상하의 1963년 작품 ‘미완성 A’ 참고)을 언급한 건 시대상 지분이 크다. 더 정확히는 한국전쟁 때문이다. 전쟁을 겪은 사진가들이 ‘사진가란 자신이 마주한 현실과 역사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고 의식하면서 사진에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리얼리즘에 반하는 사진이 등장했으니 흥미로울 수밖에. 그중 눈에 띄는 점은 당시 파격적이던 사진이 해외 공모전에서 왕왕 보였다는 것. 이에 관해 최봉림 사진평론가는 “서구 열강과의 빈번한 접촉과 선진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한국 사진계의 외향성을 부르기도 했다. 그 대표적 현상이 한국 사진가들의 해외 사진 공모전 응모였다”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1961년에 출범한 ‘현대사진연구회’ 활동도 주목해야 한다. 박영숙·주명덕·황규태 등 최근까지 개인전을 개최한 사진가들이 참여한 현대사진연구회는 정기적으로 서양 현대사진을 탐구, 사진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연구했다.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에서 각각의 숫자는 한국인 최초의 사진 개인전인 정해창의 <예술사진 개인전람회>(1929)를, 사진이 ‘드디어’ 예술 분야로 승인됐다고 평가받은 전시 <임응식 회고전>(1982)을 지칭한다(참고로,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현대사진 물결을 일으킨 사건은 구본창이 1988년 기획한 전시 <사진, 새 시좌>다). 다시 말해, 예술로서 사진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딘 1929년과 예술 분야 승인이라는 반환점을 돈 1982년 사이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뜻. 비록 전시의 빠른 이해를 위해 이 글에서는 범위를 1960~1970년대로 좁혔지만, 소개한 작가 외에도 전시장에는 단순미가 돋보이는 앨릭스 카츠의 초상화와 21세기 현대사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틴 파·안드레아스 구르스키·에드워드 버틴스키 등이 떠오르는, 마치 타임 워프를 경험하는 듯한 우리나라 사진 작품을 여럿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동선을 따라 거닐다 보면 한국 사진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내 깨달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진이 세계 사진사와 별개로 구축된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사진 제공 뮤지엄한미 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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