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에서 홀로 만난 예술 -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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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08

망망대해에서 홀로 만난 예술 -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

다양한 건축물과 조각이 모여 하나의 섬을 이룬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

3개의 예배당. © Stefano Graziani, Per Kirkeby, VG Bild-Kunst Bonn, 2022





카멘 컬렉션. © Stiftung Insel Hombroich, Per Kirkeby, VG Bild-Kunst Bonn, 2022

INTRO
라인강을 끼고 발전한 독일의 대도시 중 하나인 뒤셀도르프에서 전철로 약 30분만 가면 소도시 노이스에 다다른다. 노이스는 뒤셀도르프를 관통한 격동적 역사의 흔적이나 현재진행형인 대도시의 각종 흐름과는 무관한 듯 고요한 도시다. 노이스에 도착한 뒤에도 걸어서 25분, 말 그대로 농촌의 목가적 풍경 한가운데에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이 있다. 섬을 의미하는 독일어 ‘인젤’에서 눈치챌 수 있듯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전시 공간, 공원, 복합 문화 공간 등 여러 건축물이 약 62에이커(약 7만5000평)의 광활한 목초지와 습지에 흩어져 군도를 이루고 있다. 독일의 부동산 중개업자이자 아트 컬렉터 카를-하인리히 뮐러(Karl-Heinrich Muller)가 창립한 인젤 홈브로이히 재단 산하 미술관으로 예술, 자연, 건축, 미술 컬렉션, 아카이브를 공유할 뿐 아니라 방문객과의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상호작용을 미션으로 내세운다. 미술관뿐 아니라 문화 공간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작가뿐 아니라 과학자, 기관 등을 긴밀히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인젤 홈브로이히 재단은 넓게 펼쳐진 광야에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의 ‘섬’으로서 고유한 자아를 차분히 쌓아 올렸다. 실용과 소비에 초점을 맞춰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삶에서 멀찍이 떨어진 공간의 이점을 확실히 인지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살리고 있다.

ARCHITECTURE
1982년, 창립자 카를-하인리히 뮐러는 광활한 땅을 사들이며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 설립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과거 나토의 미사일 기지가 자리한 이 부지에는 당시 오래된 건축물 두 채가 있었는데, 1816년에 지은 로자 하우스(Rosa Haus)는 현재 전시 공간이자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했고, 1906년에 세운 쿠체르하우스(Kutscherhaus)는 독일 작가 고트하르트 그라우브너(Gotthard Graubner)와 조각가 에르빈 헤리히(Erwin Heerich)의 작업실로 재탄생했다. 이들은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의 현재 모습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한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에르빈 헤리히는 1982년부터 1994년까지 미술관 부지에 11개의 파빌리온을 세웠고, 카를-하인리히 뮐러는 이 파빌리온을 ‘출입 가능한 조각(walk-in sculptures)’이라 여기며 건축물과 조각을 통합한 공간을 만들었다. 독일산 핸드메이드 붉은 벽돌로 외관을 장식한 파빌리온은 마치 견고한 성루나 탑처럼 보인다. 에르빈 헤리히가 설계한 건축물과 조각은 베른하르트 코르테(Bernhard Korte)가 조경 디자인을 맡은 너른 자연의 망망대해에 띄엄띄엄 자리해 여전히 방문객에게 쉼터이자 좌표를 알려주는 등대로서 존재감을 밝히고 있다.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예술은 자연에서 나온다”는 폴 세잔(Paul Cezanne)의 접근 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 공간을 꾸리는 모든 요소가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에르빈 헤리히가 설계한 공간은 인공조명 하나 없이 각 창과 문을 거쳐 들어오는 햇살만이 내부를 비출 뿐이다. 동쪽에서 해가 떠 중천에 걸렸다가 서서히 서쪽으로 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내부의 빛도 모습을 바꾸니 파빌리온에 입장한 관람객은 건축물 고유의 미학과 자연을 예술 작품과 함께 경험하는 셈이다.





에르빈 헤리히의 출입 가능한 작품 ‘Turm’.
Photo by Tomas Riehle © Bildarchiv Foto Marburg, Erwin Heerich, VG Bild-Kunst Bonn, 2022

ART - COLLECTION
컬렉션의 작품 설치는 고트하르트 그라우브너가 맡았다. 그는 전시를 구상할 때 다양한 문화를 넘나드는 작품과 작품의 관계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콜더, 세잔, 자코메티, 클림트, 마티스 같은 근·현대미술 거장의 작품을 마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세아니아,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서 온 문화재급 가치를 지닌 공예품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작품을 전시하고 선보이는 방식이 남달라 작품 주변에 캡션이나 라벨을 달지 않는다. 무심한 듯 별다른 정보 없이 놓인 작품을 보고 조금 당황할 수도 있지만, 방문객은 자연의 본질을 꿰뚫어 화폭에 담은 세잔처럼 작품 자체에 집중하고 주변 환경과 작품이 자아내는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 그만큼 작품과 일대일로 만나 오롯이 자신만의 감상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집착에 가까울 만큼 치밀하게 ‘섬’ 개념을 추구한다. 도시와 동떨어진 지리적 특징 때문인지 뿔뿔이 흩어져 있는 독립적 파빌리온, 그 안에 제목도 없이 걸린 작품 등 미술관을 이루는 구성 요소가 고요하다 못해 외로운 섬의 정서를 내뿜고 있다. 이곳을 탐험하듯 걸어 다니며 건축물과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은 전시 가이드, 브로슈어, 작품 캡션 등 전시장에서 으레 볼 수 있는 여타 정보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스스로 모든 것을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므로 실제로 섬에 고립된 것과 다를 바 없다. “섬(Insel)은 묘사하는 곳이 아니라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곳입니다”라는 카를-하인리히 뮐러의 확고한 신념이 미술관 전역에 스며들어 있다. 창립자의 정신이 건축적이면서 동시에 미학적으로 이토록 완벽히 녹아 있는 곳이 또 있을까?

SPACE & PROGRAM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에는 “이곳은 단순한 미술관 구조물이 아니라 창조적 아이디어와 모든 것이 함께하는 새로운 형태의 삶을 찾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지점이죠”라는 창립자의 말을 반영한 공간이 많다. 부지 내 키르케비펠트(Kirkeby-Feld)와 라케텐슈타티온 홈브로이히(Raketenstation Hombroich) 구역에선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랑겐 재단(Langen Foundation)을 만날 수 있다. 일명 방대한 ‘홈브로이히’ 세계관 안에서 컬렉션 전시 외에도 작가를 초청해 작품 활동을 지원하고 미술계 인사뿐 아니라 철학가, 문학가, 시인, 음악가를 초청해 물심양면으로 창작 활동을 돕는다. 또한 2년마다 ‘인젤페스티벌(Inselfestival)’을 열어 실험적 콘서트를 선보이고 모든 예술가가 장르를 넘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그야말로 이 안에서 모든 예술 활동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는 점도 이곳만의 특징이다. 라케텐슈타티온 홈브로이히 구역의 건축물 중 하나인 클로스터(Kloster)에서는 14개 방 중 12개를 빌려주고 투숙객에게는 주차 공간을 무료로 제공한다. 게스트하우스답게 주거 공간의 기능을 깔끔하게 갖췄으며 라운지 공간은 세미나 룸으로도 쓸 수 있다. 예술가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개방해 예술의 범위를 넘어선 사회적 공간으로 작용하며 많은 이가 예술이라는 무형의 벽을 허물고 자연 속에서 사고하고 경험할 수 있다. 창립자는 아마도 결과보다는 경험 자체가 곧 예술이며 자연이 되는 무대이자 현대사회의 이상향으로서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을 설립했으리라.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4월부터 9월까지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해가 빨리 지는 10월부터 3월까지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규모가 워낙 커서 입장은 폐관 1시간 전까지 가능하니 참고하자. 라케텐슈타티온 홈브로이히의 일부 건축물은 지정 가이드 투어나 이벤트가 있는 날만 오픈하니 홈페이지(www.inselhombroich.de/en)에서 미리 확인할 것.





에르빈 헤리히의 출입 가능한 작품 ‘Tadeusz Pavillon’.
Photo by Tomas Riehle © Bildarchiv Foto Marburg, Erwin Heerich, VG Bild-Kunst Bonn, 2022

 





건축가 알바루 시자의 시자 파빌리온.
Photo by Tomas Riehle © Bildarchiv Foto Marburg, Álvaro Siza





음악가를 위한 집.
Photo by Tomas Riehle © Bildarchiv Foto Marburg, Raimund Abraham

 TRAVEL TIP 
누구든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에 가려면 노이스를 거쳐야 하고, 노이스에 가려면 무조건 뒤셀도르프를 거쳐야 한다. 뒤셀도르프를 묶어 함께 여행한다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미술관(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을 꼭 둘러볼 것. 크게 K20, K21 두 전시관으로 구성된 미술관은 뒤셀도르프의 중심지나 구시가지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분기별로 개최하는 새로운 전시는 물론 K21에서 상설 전시하는 체험형 설치 작품도 꼭 경험하기 바란다. 아르헨티나 작가 토마스 사라세노(Tomas Saraceno)의 대표작 ‘In Orbit’은 거미줄처럼 얽힌 거대한 구가 무려 25m에 달하는 미술관 천장 공간을 따라 펼쳐진 작품으로, 안전 슈트를 입고 작품 속을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다. 또 프랑크푸르트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괴테를 만날 수 있다. 괴테 박물관(Goethe-Museum Dusseldorf)은 로맨틱한 핑크색 예거호프 궁전(Schloss Jagerhof)에 자리 잡았는데, 흥미로운 점은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박물관은 실제로 괴테가 살았던 집이지만 이곳은 괴테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 단지 소유자이자 건물 주인인 안톤 키펜베르크(Anton Kippenberg)가 수집한 괴테의 원고, 책, 공예품을 모아두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 괴테의 팬이 차곡차곡 모아둔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괴테 애호가들은 컬렉션의 질만큼은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박물관보다 앞선다고 평가할 정도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주로 뒤셀도르프 중앙역과 노이스 중앙역에서 오는 루트를 선택할 것이다. 버스와 트램 등을 이용해 노이스에 도착한 뒤 다시 인젤 홈브로이히로 향해야 한다. 여기도 대중교통이 있지만 걷는 것보다 오히려 오래 걸릴 수 있으니 두 발을 믿고 걸어보자. 외딴섬으로 향하는 주변 풍경이 자못 다른 세상으로 가는 느낌을 자아내고, 특히 4월이나 5월에 방문한다면 주변에 꽤 규모 있는 튤립 농장이 있어 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다. 너른 들판을 양옆에 끼고 섬으로 향하면 가슴이 벅차기까지 한다. 이제 라케텐슈타티온 홈브로이히 표지판을 발견하면 고지가 코앞이다. 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키르케비펠트로 이어진다. 되도록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의 모든 공간을 빠짐없이 둘러보기 바란다. 체력적으로 힘들지 몰라도 마음만은 충만하게 차오를 것이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윤효정(프리랜서)
사진 제공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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