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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 2023-05-25
운명의 순환 고리
예술가의 운명을 타고난 가브리엘 오로즈코.

가브리엘 오로즈코는 예술가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작가였고, 어머니는 예술 학도이자 피아니스트였다. 어린 시절 그에게는 아버지의 작업실이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부모님 친구들인 시인, 음악가, 작가 등 문화 예술계 인사에게 둘러싸여 자랐어요. 저는 작가가, 여동생은 연극배우가 됐으니 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네요. 여섯 살 때부터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뭔가를 만들곤 했어요. 좋은 훈련을 받은 거죠. 제 작업은 아버지만큼 학구적이지는 않지만, 그 바탕에는 정통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어요. 집에 중국·인도·유럽의 미술 관련 책이 많아 자연스럽게 독서를 즐기면서 다양한 문화를 간접경험한 데다 기타 연주와 노래에 능한 아버지, 피아니스트지만 드로잉에도 소질을 보인 어머니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는 열한 살 때 체스 전국 대회에 나가거나 포뮬러1 레이싱카 드라이버를 꿈꾸는 등 다방면으로 재능을 뽐냈지만 그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미술을 전공했다. “돌이켜보니 미술대학에서 배운 건 단 하나도 실행에 옮기지 않고 살았네요.” 하지만 관심사가 많았던 덕분인지 가브리엘 오로즈코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벽화, 회화, 사진, 조각, 설치, 공공 미술 등 다양한 매체로 스펙트럼을 넓혔다. 그의 작품 세계는 단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요즘은 무엇에 관심이 있을까? “최근 템페라 기법으로 그림을 그려요. 유화보다 오래된 전통 방식이죠. 달걀이라는 소재가 아주 독특하고 흥미로워 이를 통한 회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바로 정원과 조경이다. 풍경과 자연, 나아가 생태학과 철학, 건축에도 조예가 깊은 그는 이 모든 연구를 작품으로 풀어낸다. “최근 멕시코 중심이라 불리는 차풀테펙 공원(Bosque de Chapultepec)을 재정비하는 대규모 조경 커미션을 맡게 됐어요. 2006년에는 멕시코 푸에르토에스콘디도에 건축가 타티아나 빌바오(Tatiana Bilbao)와 함께 ‘Observatory House’를 만들었고, 2016년에는 사우스 런던 갤러리(South London Gallery)에 정원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그만큼 제 작업은 늘 자연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자연 요소를 작업에 자주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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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우스 런던 갤러리의 정원은 많은 이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멕시코인에게 왜 영국의 정원을 만들어달라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농담을 던진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조합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런던에 자리한 정통 영국식 건축물 뒷마당에 커뮤니티 가든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았어요. 해당 부지가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커뮤니티와 맞닿아 있어 공공 정원의 특성을 띨 수밖에 없었죠. 고민을 거듭하다 벽돌을 이용해 폭격 후 잔재를 재현하기로 했어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그 지역의 많은 건물이 무너졌거든요. 그래서 벽돌을 쌓아 올리고, 그 사이에 식물이 자라는 형태의 공원을 조성했습니다. 무너진 곳에 풀이 새로 자라는 거죠. 지역의 역사를 담았지만, 너무 드라마틱한 감성을 조성하려고 의도하지는 않았어요. 기하학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재사용 가능한 모듈로써 벽돌을 이용해 ‘재건’을 시각화한 것에 더 가까워요.”
회색빛 벽돌과 푸른 식물로 가득 찬 정원에서는 원형 구조가 유독 눈에 띈다. ‘원’은 그가 작품에 자주 사용하는 요소다. “정원 쪽으로 문이 열리는데, (동양의 미닫이문이 아닌) 서양식으로 반원을 그리는 문이죠. 문을 열 때 생기는 반원, 즉 원형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점점 둥근 형태의 패턴을 땅에 확장해나갔습니다. 제 작업에는 원과 십자 형태가 자주 등장하는데, 원형의 신비로움이나 종교적 상징성보다는 원 자체의 형태, 끊임없는 움직임에 더 집중해요.”
가브리엘 오로즈코는 다양한 문화를 아우르며 작업하는, 세상을 이분법 또는 국적으로 나누지 않는 작가다. 그가 멕시칸 문화의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작품이 미술계 자체와 다양한 문화권에 미친 영향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래서 고정된 작업실 없이 세계 각지를 돌며 작업한다. “자라면서 다양한 것을 탐구하는 데 재미를 느꼈어요. 여러 나라에서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예술이 다양한 문화의 맥락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경험했죠. 작품 활동을 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니까요. 처음에는 영국에서 멕시코인에게 정원 프로젝트를 의뢰했다는 점이 의아했지만, 그건 제 국적과 상관없이 작업 스타일을 좋아하는 거니까. 이렇게 국적 간 경계를 지우고 싶어요. 서로 다른 국가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현상과 문화 표현에 흥미를 느낍니다. 저는 어디서든 편하게 살 수 있어요. 서울에서도요. 제 작업이 세상과의 소통을 도우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노매드는 아니다. 그저 어디서든 작업에 충실할 뿐. “늘 같은 일을 하지만, 장소가 달라질 뿐이에요. 특정 작업실에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진행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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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계를 돌며 선보인 프로젝트 중 지난해 뉴욕의 어느 공간(Room 305, 24 West 57th Street)에서 개최한 개인전 <스페이스타임(Space time)>도 잊을 수 없다. 많은 오브제와 작품을 모아놓은 모습이 마치 그의 회고록 같았다. “저는 작업실이 따로 없어서 1992년부터 메리언 굿맨 갤러리(Marian Goodman Gallery) 수장고에 작품을 보관했거든요. 팬데믹 기간에 무얼 할까 고민하다 작품을 모두 꺼내 한 공간에서 보여주면 어떨까 상상했어요. 6개월간 자그마한 공간을 빌려 뷰잉 룸을 만들자고 제안했죠. 25년에 걸친 제 ‘유물’을 담은, ‘보이는 수장고’나 다름없었어요.”
공식 갤러리 전시가 아닌 만큼 그는 대관료도 직접 감당했다. 오프닝 행사도, 심지어 홍보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우연히 그 공간을 발견하면서 입소문이 났다. “물론 예약제로 방문할 수도 있지만, 아주 작은 공간에 우연히 발을 들인 사람들에게만 공개한 공간이라고 봐야죠. 특정 갤러리가 아닌 시공간을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한 전시가 인기를 얻고, 작품을 판 돈으로 대관료도 냈어요. 이제 곧 오픈한 지 1년 반 정도 되네요. 앞으로 6개월간 더 진행할 예정입니다.” 어딘가에 가브리엘 오로즈코의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면 그 누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행히 전시는 온라인(go-spacetime.com)으로도 볼 수 있다.
그보다 앞서 2017년 멕시코시티 쿠리만주토 갤러리(Kurimanzutto Gallery)에서 선보인 <오록소 편의점(Oroxxo Convenience Store)>도 흥미롭다. 그는 멕시코의 흔한 편의점 이름 ‘옥소’를 본떠 갤러리에 편의점 하나를 통째로 만들었다. “<스페이스타임>에서 갤러리와 스튜디오, 수장고를 접목했다면 제 이름을 딴 <오록소 편의점>은 갤러리와 편의점을 섞은 버전이에요. 편의점에 있는 제품은 빈 포장일 뿐이지만, 로고 덕분에 마치 가치 있는 것처럼 보여요. 결국 허울뿐인 빈 공간에 소비문화를 가시화한 것을 모아둔 작업입니다.”
이처럼 가브리엘 오로즈코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과정을 즐긴다. “초보자가 되는 거죠. 특정 분야의 장인이 아닌 아마추어로서 스타일을 정형화하지 않고 늘 새로운 사람이나 공간, 매체, 기술에 편견 없이 실험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해요. 제가 멕시코인이라서, 남자라서, 작가라서, 잘생겨서,(웃음) 또는 어떤 위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만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합니다.” 세계적 반열에 오른 작가가 초보자를 자처한다는 사실에 덩달아 겸손해진다. 그는 이렇게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여러 매체를 활용하면서도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한다.
“예술은 소통이자 언어예요. 예술을 하는 데 쓰이는 기법이나 기술은 매우 다양하죠. 작가는 기술 발달에 집중하기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보여주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은 좋은 도구지만, 예술가의 감을 이끄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는 없어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국가에서 꼭 뛰어난 예술가가 탄생하지는 않잖아요”라고 말하는 그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 자못 기대된다. 한국의 많은 아트 러버가 그의 작품을 직접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하자,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에 더 자주 오고 싶습니다.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작품을 한자리에 모으고 싶고, 한국 관람객에게 사진이 아닌 실제 작업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리움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공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앞으로 자주 올 예정입니다. 아마 2~3년 안에 리움미술관에서 제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아우르는 전시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서승희(인물)
사진 제공 쿠리만주토 갤러리, 메리언 굿맨 갤러리, 리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