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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첫 펜디 컬렉션

FASHION

협업과 공존의 메시지, 그리고 공유한 워드로브로 풀어낸 펜디의 새로운 시작.

‘Less I, More Us.’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펜디에서 처음 선보인 컬렉션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이 문구는 런웨이 바닥과 가방 스트랩 위에 새겨지며 쇼의 방향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개인의 서사보다 협업과 공존을 강조하는 태도, 서로 다른 시선이 모여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창작 방식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이번 컬렉션에서 ‘우리’라는 개념은 단순한 집단성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취향과 감각이 모여 하나의 워드로브를 완성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성과 여성 모델은 같은 룩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소화하며 런웨이에 올랐다. 더블브레스트 재킷, 스트랩으로 여미는 싱글브레스트 재킷, 더블 데님 룩 등은 남녀 모두에게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공유된 워드로브’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컬렉션에서 가장 눈에 띈 요소는 단연 퍼였다. 펜디의 핵심 장인 기술이지만, 오랫동안 비판적 시선을 의식해 비교적 절제된 방식으로 다뤄온 영역이다.

하우스의 아이콘 바게트 백. 가죽, 자수 비딩, 퍼 등 다양한 소재로 재해석해 선보였다.

그러나 이번 시즌 키우리는 이를 보다 전면에 내세웠다. 스터드를 장식한 질레의 트리밍과 칼라, 트렌치코트에 더한 디테일, 손으로 잘라낸 꽃 모양 가죽 조각을 레이스처럼 이어 붙인 긴 블랙 가죽 드레스까지 퍼와 가죽의 질감이 컬렉션 전반에 걸쳐 강조됐다. 흥미롭게도 가장 풍성한 퍼는 남성 룩에 등장했다. 복슬복슬한 폭스 퍼 스타일과 초록색으로 염색한 롱 헤어 퍼 블레이저, 패치워크 퍼 룩 등이 대표적이다. 여성 룩에서는 퍼 조각을 이어 붙여 숲속 위장 패턴처럼 연출한 재킷이 눈에 띄었다. 이러한 시도는 키우리가 새롭게 시작한 ‘Echo of Love 프로젝트’와도 연결된다. 고객이 이미 소유한 퍼를 펜디 아틀리에와 함께 다시 디자인하는 프로그램으로, 소재에 담긴 개인적 기억과 감정을 기록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컬렉션에는 하우스의 역사와 개인적 기억을 연결하는 디테일도 등장한다. 화이트 코튼과 블랙 레더, 블랙 퍼 등 다양한 소재로 제작한 탈착 가능한 칼라는 칼 라거펠트가 즐겨 착용했던 맞춤 셔츠 칼라를 떠올리게 한다. 가방 역시 펜디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요소였다. 키우리는 하우스의 아이콘인 바게트 백을 처음 개발한 액세서리팀의 일원이기도 하다. 이번 시즌 그녀는 자수 비딩과 퍼 장식을 더한 새로운 버전을 선보였고, 어깨에 멜 수 있도록 스트랩을 추가했다. 장인 기술과 실용성을 동시에 강조한 변화다. 깊게 파인 브이넥과 허리에서 퍼지는 스커트, 재킷이 만드는 구조적 실루엣에서는 발렌티노와 디올에서 이어온 키우리 특유의 디자인 언어가 감지된다. ‘Less I, More Us’라는 선언 속에서도 분명히 그녀만의 감각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첫 펜디 컬렉션을 보기 위해 참석한 우마 서먼.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첫 펜디 컬렉션을 보기 위해 참석한 르세라핌의 허윤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첫 펜디 컬렉션을 보기 위해 참석한 스트레이 키즈 방찬.

또 하나 눈에 띄는 키워드는 ‘몸’이다. 점점 이미지 중심으로 흘러가는 패션 속에서 펜디는 다시금 몸의 감각에 집중한다. 옷이 몸을 통제하기보다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감각적 소재는 착용 경험을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키우리는 이렇게 펜디라는 하우스의 다음 장을 차분하게 펼쳐 보였다.

  • 에디터 한지혜, 이주이
  • 사진 펜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