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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을 엮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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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상실, 그리고 인간 존재를 향한 질문을 끊임없이 이어온 에드 앳킨스. 한남동에 새롭게 문을 연 글래드스톤 서울의 개관전 <1 Day in Space>를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에드 앳킨스 1982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나 현재 덴마크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와 CGI, 영상, 드로잉, 글쓰기를 넘나들며 동시대 인간의 신체와 감정, 언어, 상실을 탐구해왔다. 테이트 브리튼, 뉴 뮤지엄, 서펜타인 갤러리, 스테델레이크 미술관, 키아스마 현대미술관, MMK 프랑크푸르트, 카스텔로 디 리볼리, 더 키친, MoMA PS1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제56·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제15회 리옹 비엔날레, 퍼포마 15·17 등 국제 전시에 참여하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탐구해온 작가 에드 앳킨스. 컴퓨터로 생성한 아바타와 CGI, 사운드, 텍스트를 자유롭게 엮어내는 그의 작업은 언제나 기술보다 인간을 향해 있다. 디지털로 구현한 인공 얼굴과 신체는 차가운 기술적 재현에 머물지 않고 사랑과 상실, 불안과 친밀감 같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매개가 된다. 정교하게 구현한 신체는 실제와 끝내 좁혀질 수 없는 이질감을 남기며, 인간과 기술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현실과 재현, 사실성과 허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쉽게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와 사운드, 그리고 이들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시적 서사와 치밀하게 구축한 고백의 구조는 에드 앳킨스의 작업을 지탱하는 고유한 문법이다. 3D 아바타가 등장하는 대표작 ‘Ribbons’, ‘Hisser’, ‘Safe Conduct’, ‘Old Food’ 등에서 작가는 3D 아바타를 활용하되, 그것이 철저히 연출된 허구이자 인공성을 바탕으로 생산한 요소임을 감추지 않는다. 지나치게 매끄러운 피부와 눈물, 침, 숨결처럼 과하다 싶을 만큼 정밀하게 표현한 신체의 감각은 역설적으로 인간 존재의 취약함과 상실, 고독을 선명하게 환기시키며, 디지털 매체가 인간성을 어디까지 담아낼 수 있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영상뿐 아니라 글, 회화,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그는 픽셀 너머 손의 흔적과 재료의 물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잉크와 색연필로 자신의 맨발과 구두를 사실적으로 그린 회화부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녀를 위해 포스트잇에 매일 그려온 드로잉 연작 ‘Children’(2020~ongoing)까지, 손으로 직접 그리고 만든 작품 역시 그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축을 이룬다. 신체뿐 아니라 그 몸이 머무른 공간과 사물, 그리고 시간이 남긴 흔적까지 작품 속으로 불러들이며, 인간 존재를 둘러싼 감각과 시간의 층위를 더욱 깊이 탐색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가상과 현실이라는 구분을 넘어, 그의 작업은 결국 유한함과 상실이 남기는 삶의 본질적 질문을 향한다.
8월 31일부터 시작되는 에드 앳킨스의 개인전 <1 day in space>는 한남동으로 이전 개관하는 글래드스톤 서울의 새 공간에서 열리는 첫 전시다. 아시아 활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순간을 함께하며 그간 이어온 작가와의 협업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동시에 앞으로 갤러리가 펼쳐갈 방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최근 테이트 브리튼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인 데 비해, 국내에서는 그의 작품을 폭넓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 달 동안 축적한 타임랩스 이미지로 완성한 신작 영상 ‘Passive Mech’를 중심으로 프로타주, 유니크 프린트, 사적 사진 연작 등 사진을 둘러싼 다양한 매체와 방식을 아우르는 신작을 선보인다. 가족과 일상의 이미지를 통해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지고 남겨지는 것들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천착해온 시간과 상실, 영속과 덧없음의 긴장을 새롭게 풀어낸다. 전시를 앞두고 에드 앳킨스와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질문과 창작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16th of April 2026, 19.21′30″(Passive Mech), 2026.

CGI와 가상의 아바타, 사운드, 드로잉, 자수, 텍스트까지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서로 다른 감각과 요소를 하나의 작품 속에 엮어왔습니다. 한편 스스로를 “무엇보다도 편집자(editor)에 가깝다”고 표현한 적도 있지요. 그렇다면 한 작품은 보통 어떻게 시작되나요? 작업의 첫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무언가를 보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됩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문장일 수도 있고, 어떤 구조적 아이디어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제가 너무 오래 사랑해왔고, 이제는 작업을 통해 떨쳐내야 하는 어떤 것일 수도 있죠. 그다음, 자료를 모으거나 촬영이나 퍼포먼스를 계획합니다. 저에게는 매체 고유의 특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작품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작품인지 드러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주제로 삼아야 합니다. 작품을 이루는 각각의 요소가 하나로 자연스럽게 맞물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필연적으로 느껴지기를 바라요. 최근에는 작품이 한 편의 에세이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보를 전달하거나 특정 대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곁길로 새기도 하고, 탐구적이며 열린 결말을 품은, 독특한 개성을 지닌 에세이 말입니다. 이를테면 찰스 램이 ‘엘리아(Elia)’라는 이름으로 쓴 에세이처럼요. 어쩌면 롤랑 바르트적 태도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가끔은 새로운 기술 자체가 출발점이 될 때도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기술만이 낼 수 있는 고유한 목소리를 발견하고 싶을 때요.

에세이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시인이기도 하죠. 책을 위한 글과 영상 작품을 위한 텍스트를 쓸 때, 작가님 안에서 언어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지나요?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아요. 영상 작업에 대사를 쓴 지는 꽤 오래됐지만, 글쓰기는 언제나 제가 작업에 대해 사유하는 방식입니다. 작품과 관련해 떠오르는 생각이나 연상, 이론, 앞으로 나아갈 방향 같은 것을 글로 써 내려가며 정리하곤 하죠. 굳이 차이를 꼽는다면 산문시는 조금 달라요. 산문시는 어떤 메시지나 주장을 전달하기보다 더 열린 상태를 허용하니까요. 그렇다고 저에게 완전히 다른 글쓰기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결국에는 같은 목소리고, 같은 문체를 공유하니까요.

Exhibition View of , New Museum, 2021. Photo by Dario Lasagni. Courtesy of the Artist, Dépendance, Brussels, Galerie Isabella Bortolozzi, Berlin, Cabinet, London, and Gladstone, New York. © Ed Atkins.
Hisser, 2015. Installation View of , Kunsthaus Bregenz, 2019. Photo by Markus Tretter. Courtesy of the Artist, Dépendance, Brussels, Galerie Isabella Bortolozzi, Berlin, Cabinet, London, and Gladstone, New York. © Ed Atkins, Kunsthaus Bregenz.

상실과 결핍, 무능과 실패가 창작의 ‘기반’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상실이란 감각이 작품 세계의 중심을 이루는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 상실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마도 상실은 삶을 닮은 하나의 경험인 것 같습니다. 삶은 결국 유한하고, 그 안에 실수와 우연, 실망, 한계 같은 것이 늘 함께하니까요. 삶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우연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것인데, 그 앞에서 재현 기술이 무엇을 담아낼 수 있다고 말할지 고민하는 과정은 제 작업에서 매우 중요했어요. 저는 상실이라는 감각이 적어도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삶의 유한성과 그 한계에서 비롯한 상실이고, 다른 하나는 재현 기술의 노후화와 불완전한 재현 그리고 삶을 비틀린 방식으로 모방하는 과정에서 비롯한 상실이죠.

그렇다면 오랜 시간 그 기반 위에 작업해오면서, 상실과의 관계도 달라졌나요? 네. 이제는 상실이 예전처럼 개인적 경험에 깊이 얽매여 있지는 않습니다. 저 자신도 더 여유로워졌고, 더 안정되었으며, 상실과의 관계를 훨씬 더 잘 이해하고 다룰 수 있게 되었어요.

작가님의 작업에는 이미지와 사운드, 텍스트, 그리고 수많은 파편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요소들이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이어지며 때로는 시적 감각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이들을 모으고 배치할 때, 중요시하는 부분이 있나요? 서로 다른 요소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엮어내는 작가님만의 논리나 직관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결국에는 제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들인 것 같습니다. 좀처럼 떨쳐낼 수 없는 것들이죠. 어쩌면 불안이나 강박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어떻게든 작품 속에 담아두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제가 끝까지 붙들고 생각해봐야 하는 것, 그리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들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편집 과정을 가장 즐깁니다. 아주 미세한 차이와 작은 변화에 오래 머물며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죠.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것과 깊은 울림을 주는 것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워요. 컷 하나가 조금만 어긋나도, 은유가 정확히 맞지 않아도, 문장이 지나치게 매끄럽거나 너무 노골적이어도, 혹은 어떤 요소가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작품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아주 작고 섬세한 디테일까지 얼마나 세심하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어요. 하나의 작품 속에 그 요소들을 엮을 때 “손에 잡힐 듯 분명하게 드러나는 구조는 플롯이나 인물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고, 더 고백적으로 느껴진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구조의 어떤 점이 그토록 감동적이고 고백적으로 다가오나요? 아마 구조가 작품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반면 플롯이나 인물은 결국 만들어진 것이고, 자칫 특정한 메시지나 관점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propaganda)가 되기 쉽죠.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혹시 평소 재료들을 아카이빙해놓는 방식이 있을까요? 그런 건 없어요. 자료는 언제나 특정 작품을 위해서만 모읍니다. 언젠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따로 수집해두지는 않아요. 한 작품이 끝나면, 그 과정에서 모은 자료도 다음 작업을 위해 남겨두지 않습니다.

Installation View of , Tate Britain, 2025. 1 Photo by Josh Croll. Courtesy of the Artist, Tate Britain, Dépendance, Brussels, Galerie Isabella Bortolozzi, Berlin, Cabinet, London, and Gladstone. © Ed Atkins.
Installation View of , Gladstone Gallery, 2023. Courtesy of the Artist, Dépendance, Brussels, Galerie Isabella Bortolozzi, Berlin, Cabinet, London, and Gladstone, New York. © Ed Atkins.

실제 사람의 얼굴은 “너무 구체적”인 반면, 컴퓨터로 생성한 얼굴은 “만들어진 것”이라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감각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방식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시나요? 인공성이 우리가 타인을 경험하는 방식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실제 사람을 면대면으로 마주하는 경험은 아무리 사실적으로 구현해도 가상의 얼굴을 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니까요. 오히려 그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으며 드러내는 일이 제 작업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디지털 신체는 여전히 작가님을 놀라게 하나요? 잘 모르겠어요. 예전처럼 저를 놀라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저에게 하던 그대로 영향을 줍니다. 익숙하게 여기던 감각을 흔들고, 새로운 흥미와 비교를 불러일으키죠. 그러면서 그 끝에는 ‘진짜 몸’과 ‘진짜 사람’이 무엇인지 스스로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한 작품이 끝난 뒤, 다음 작업을 위한 영감은 어떻게 찾으시나요? 그냥 기다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제나 저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로 다시 돌아갑니다. 음악과 문학, 친구들과의 대화, 그리고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죠.

개인전 <1 Day in Space>를 준비하는 동안 가장 깊이 몰두한 것들에 대해 들려주세요. 이번 작업을 이끈 관심사와 욕망이라면 이렇게 나열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접착제, 시간, 죽음, 사랑, 아이들, 삶과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얽혀 있다는 감각, 포스트미니멀리즘적 구성, 현란한 문체와 무미건조한 문체, 사뮈엘 베케트, 레오 베르사니,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연극, 바흐,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 드로잉, 가르치는 일, 섬세함, 매리언 밀너, 데이비드 러셀, 펠릭스 페네옹, 로버트 라이먼, SF, 만화, <에반게리온>, 조 브레이너드,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입니다.

작업을 하며 가장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요? 제가 하는 작업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일, 시간을 관리하는 일, ‘에드 앳킨스’라는 작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행정 업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일, 전략을 세우는 일 같은 거예요. 작품을 만드는 일보다 실무가 오히려 가장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20년 넘게 작가로 활동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발견인 것 같아요. 어떤 감각을 몇 번이고 다시 느끼고 싶거든요. 저는 무언가에 쉽게 빠지는 편이고, 어리석을 만큼 한 가지를 반복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성향이 오히려 작업을 계속하게 하는 것 같아요.

  • 에디터 정희윤
  • 사진 글래드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