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름과 이동, 그 사이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지역 중에서도 특히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문화 예술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나라다. 그 수도 리야드에서 열리는 ‘디리야 현대미술 비엔날레’. 지난 1월 30일, 그 세 번째 에디션의 막이 올랐다.
2016년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Vision 2030)’을 통해 석유 의존 경제에서 탈피하고 사회, 문화, 경제 전반을 재편하기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발표했다. 문화와 관광산업 육성이 주된 골자인데, 이 과정에서 정부는 문화 예술을 일종의 ‘소프트 파워’로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실제로 아랍 현대미술은 198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이주, 사회적 융합을 거친 작가들이 전통과 현대, 사막과 도시가 공존하는 풍경을 다양한 매체로 기록하며 진화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예술, 특히 현대미술을 전통적 면모를 간직하면서도 세계와의 접점을 만들어내는 연결 고리로 바라보고 제도적 · 구조적 차원의 투자를 지속했다. 2020년 디리야 비엔날레 재단 설립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재단은 현대미술 비엔날레뿐 아니라 이슬람 미술 비엔날레를 격년으로 개최하며, 국가가 지향하는 문화 예술의 방향성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다. 더불어 전시장, 작가 레지던시, 스튜디오, 공연 공간을 모두 포함한 대규모 문화 단지 JAX 디스트릭트를 조성하며 지속 가능한 문화 예술 생태계를 구축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예술가를 장기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디리야 비엔날레 재단이 올해 1월 30일부터 5월 2일까지 개최하는 ‘디리야 현대미술 비엔날레(Diriyah Contemporary Art Biennale)’를 주목할 만하다. 올해 세 번째 에디션을 맞은 비엔날레에는 37개국에서 65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디리야 지역은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서북쪽의 와디하니파 협곡에 남아 있는 디리야 토후국의 수도 유적지이기도 하다. 전시는 사우디아라비아 제1왕국의 발상지 앗투라이프(At-Turaif) 인근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창의 지구 JAX 디스트릭트에서 열린다. 22점이 넘는 신작 커미션은 물론, 화가뿐 아니라 음악가, 영화감독, 건축가, 문학 작가까지 폭넓게 초대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그렇다면 이번 비엔날레를 하나로 엮는 주제는 무엇일까? 노라 라지안(Nora Razian), 사비 아흐마드(Sabih Ahmed), 만 아부 탈립(Maan Abu Taleb), 메이 마키(May Makki)로 구성된 큐레이터 팀은 ‘In Interludes and Transitions’를 대주제로 내세웠다. 이는 아라비아반도 유목 공동체에서 사용하던 ‘정착과 이동의 상태’를 가리키는 구어적 표현에서 차용한 것으로, 비엔날레가 정착과 이동의 순환 속에서도 유지되는 연결성과 연속성을 사유하는 장임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 걸프 지역과 세계를 연결해온 이동과 이주, 변형의 흐름이 이번 비엔날레의 출발점인 셈이다. 전시에 대해 큐레이터 팀의 노라 라지안과 사비 아흐마드는 ‘행렬(procession)’이라는 개념을 핵심 키워드로 강조한다. 지역에서 관계와 형식을 만들어온 중요한 요소라는 설명이다. 바람의 움직임, 무역과 이주, 망명의 흐름은 세계를 하나의 행렬로 인식하게 한다. 이들은 교류와 전이를 통해 문화적 형식을 이해하고, 여행의 경로와 교차, 변이를 사유하며, 신체와 재료, 리듬과 박자를 통해 이어온 이야기들을 이번 전시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따라서 이번 비엔날레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을 압축하면 ‘이동’, ‘행렬’, ‘문화적 전이’라 할 수 있다. 참여 작가 역시 피오 아바드, 란드 압둘 자바르, 아하드 알라무디, 모하메드 알함단처럼 아랍 문화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이들이 주를 이루는 한편, 갈라 포라스-킴, 타오 응우옌 판, 아구스티나 우드게이트, 위지 등 이를 주제로 작업하며 서로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국제적 작가도 다수 포함됐다. 이번 비엔날레는 역사와 조상, 꿈과 예감이 노래와 이야기, 춤과 회오리바람을 통해 함께 움직이는 하나의 ‘안무’로 구상했다. 65명의 작가(팀)가 한자리에 모여 사운드 기반 작업, 시각예술, 음악,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동시대 미술을 총체적이면서 포괄적인 시선으로 조망한다. 디리야 현대미술 비엔날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문화 예술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드러내고자 하는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이번 에디션은 특히 비전 2030 발표 이후 국가가 그려온 문화적 방향성을 미술 언어로 번역하며, 전통과 현대, 지역과 세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모색해온 새로운 균형점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다. 정착과 이동 사이, 머무름과 출발 사이에서 세계는 수없이 형태를 바꾸며 발전해왔다. 디리야 현대미술 비엔날레의 〈In Interludes and Transitions〉는 그 흐름을 함께 타고 이동하며 바라보길 제안하는 전시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