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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건축이 만들어낸 완벽한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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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스크린 위로 가장 선명한 현실이 펼쳐진다. 크로스오버가 장르의 결합을 넘어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라이트스케이프>는 그 가능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와 음악, 건축과 설치가 한데 어우러진 이 전시는 혼란 속에서도 끝내 길을 잃지 않는 법을 말한다.

<라이트스케이프> 전시장 전경. Photo by Brica Wilcox.

약 300평 규모의 기둥 없는 전시장. 공간을 둥글게 에워싼 7개의 거대한 스크린 위로 하나의 영상이 교차 재생된다. 한 시야에 서로 다른 장면이 동시에 들어오고, 같은 장면이 시차를 두고 미묘하게 엇갈리기도 한다. 광활한 서부 사막, 끝없이 이어지는 고속도로, 도시의 고층 빌딩과 자동화 공장. 스크린은 미국의 서로 다른 풍경 사이를 쉼 없이 오간다. 현란한 영상만큼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운드다. 반복되는 멜로디와 가사 위로 낮게 깔리는 목소리, 전자음, 도시와 자연의 소음이 겹치며 독특한 사운드스케이프가 형성된다. 여기서 음악은 단순히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성벽을 쌓아 올린다. 빛과 장면, 낯선 소음과 몽환적 선율이 뒤섞인 그곳에 들어서면 누구나 길을 잃고 만다.

9월 13일까지 뉴욕 더 셰드(The Shed)에서 열리는 더그 에이킨(Doug Aitken)의 <라이트스케이프(Lightscape)>는 영화와 음악, 건축, 설치미술, 라이브 퍼포먼스를 하나의 경험으로 엮은 ‘현대적 오페라’다. 하나의 작품이자 전시이며, 장편 화인 동시에 설치미술이고, 음악 공연인 동시에 건축 공간이다. 라이브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전시장 중앙에 LA 마스터 코랄, 윌리엄 바신스키, 수잰 치아니, 선 라 아케스트라 등 전설적 음악가의 퍼포먼스가 펼쳐지며 작품은 한 차원 더 확장된다. 이런 시도가 에이킨에게 처음은 아니다. 그는 일찍이 2013년 ‘Station to Station’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를 움직이는 조각으로 만들고 정차역마다 이벤트를 열어 음악·퍼포먼스·설치 작업을 한데 엮었다. 이보다 앞선 2007년에는 MoMA 외벽에 뉴요커의 하루를 투사해 도시를 거대한 스크린으로 바꿨고, 2017년에는 사막 한가운데에 거울로 뒤덮인 집을 지어 현실과 환영이 교차하는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이번 <라이트스케이프>에서는 가능한 모든 매체를 한 공간으로 끌어들여 전시장 자체를 낯선 환경으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과 다른 노선을 타고 있다. 끊임없이 이동하고 연결되는 세계,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감각, 디지털 환경 속 변화하는 인식은 에이킨이 오랫동안 탐구해온 주제다. <라이트스케이프> 영상에는 서로 다른 풍경과 인물이 등장하는데, 공통점은 모두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광활한 들판을 쉼 없이 달리는 카우보이, 광고 이미지가 끝없이 겹쳐지는 도시 속 운전자, 기계음에 맞춰 춤추는 자동화 공장의 노동자.

전시 영상 스틸 이미지. © Doug Aitken

끊임없이 바뀌는 풍경 속에서 그들은 저마다 외로운 시간을 견디고 있다. 에이킨의 작품에는 명확한 줄거리가 없다. 파편화된 시공간 속에서 관객은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작품 속 인물처럼 배회하는 처지에 놓인다. <라이트스케이프>가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지 스토리가 부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은 영화가 아니라 음악에서 출발했다. 일반적 영화가 어느 정도 완성된 영상 위에 음악을 입힌다면, 이 작품은 정반대로 만들었다. 에이킨은 직접 작곡한 송 사이클을 LA 마스터 코랄, LA 필하모닉과 함께 녹음해 음악을 완성하고, 영상은 다양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촬영했다. 표면적으로는 영화의 형식을 취하지만 정확하게는 음악이 만들어낸 세계를 걸어 다니는 ‘경험’이라고 해야 더 맞을지도 모른다.

왜 이토록 많은 장르와 매체가 카오스처럼 뒤섞였을까? 과거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오늘날 세계는 하나의 “다성적(polyphonic) 풍경”이며, “서로 다른 사건과 매체가 동시에 작동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실시간으로 저마다 영화를 만들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에이킨의 작품은 혼란스럽지만 그 혼란은 지금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과 꼭 닮았다. 많은 정보와 이미지가 동시에 밀려들고 현실과 디지털 경험이 겹쳐지는 때를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반영할 뿐이다.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조차 모를 다채로운 이미지와 정보가 자본주의 논리 속에서 끝없이 생산되는 오늘, 에이킨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직시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 그의 시선이 자주 향해온 곳은 수평선이다. 처음엔 희미해 보이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그 형태를 선명히 드러내는 이 장소는 <라이트스케이프>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영상 속 수평선(지평선)은 혼란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자 불안에 맞서는 힘, 즉 ‘문화와 창의성’의 상징이다.

전시장에서 펼쳐진 수잰 치아니의 라이브 퍼포먼스. Photo by Brica Wilcox. 3

에이킨이 영화와 음악, 건축과 설치를 하나의 경험으로 묶은 이유는 단일한 장르나 매체로는 설명할 수 없게 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에 노출돼 있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현실과 디지털 사이를 오가며 수많은 감각을 동시에 경험하고, 거기서 파생된 이미지와 소음이 스마트폰 화면은 물론 우리의 일상을 도배한다. 예술의 역할이 삶의 반영에 있다면 에이킨에게 장르와 매체의 융합은 결국 현실을 가장 정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트스케이프>는 눈앞의 세상을 보다 똑바로 바라보게 해준다.

7개의 스크린 앞에 다시 마주 선다. 영상 속 인물들의 눈빛과 몸짓은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질주하고, 춤추고, 걸어가며 주어진 환경을 살아낸다. 그리고 수평선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 에디터 윤정훈
  • 사진 더 셰드, 더그 에이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