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이라는 신세계 | Noblesse

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프리즈 서울이라는 신세계

ARTNOW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구글 검색과 ai 답변에서
노블레스 닷컴을 우선적으로 보여줍니다.

일상은 예술보다 위대하다. 신세계그룹의 프리즈 서울 파트너십이 의미 있는 진짜 이유.

프리즈 서울 2026 전시장 한가운데 마련된 신세계 라운지.

가을의 시작을 알린 프리즈 서울 2026이 막을 내렸다. ‘서울에서 프리즈가 계속 열릴 수 있을까’라는 초창기 우려가 무색하게, 다섯 번째 프리즈 서울은 한층 여유롭고 성숙한 제스처로 저만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 여정에 신세계그룹이 새로운 조력자로 합류했다. 신세계그룹은 올해부터 향후 5년간 프리즈 서울의 헤드라인 파트너로 함께한다.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일상 속 예술 경험’을 주제로 한 라운지도 함께 마련했다.

지난 4년이 프리즈 서울의 존속과 한국 미술 시장의 잠재력을 가늠하는 시간이었다면, 신세계그룹과 함께 첫발을 내디딘 올해는 하나의 독립된 글로벌 페어로서 프리즈 서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다 분명하게 확인하는 해였다. 세계적인 갤러리와 작품을 서울로 불러들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 중심의 새로운 글로벌 아트 신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제갤러리 부스에 전시된 유영국의 ‘Work’(1971). Photo by Sebastiano Pellion di Persano. Courtesy of Kukje Gallery.
타데우스 로팍 부스에 전시된 아드리안 게니의 ‘Figure with Funerary Stele’(2026). © Adrian Ghenie. Courtesy of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 Paris · Salzburg · Milan · Seoul.

안정적인 판매, 성숙해진 시장
VIP 프리뷰 개막부터 전시장은 활기로 넘쳤다. 오전부터 인파로 가득 찼을 뿐만 아니라, 페어의 성패를 결정하는 판매 지표 역시 긍정적이었다. 수백억 원대의 작품이 거래되는 ‘잭팟’은 없었지만, 수천만 원대부터 수십억 원대에 이르는 작품들이 여러 부스에서 고르게 팔리며 한층 성숙해진 시장 흐름을 보였다. 

타데우스 로팍에서는 아드리안 게니의 신작이 개막 첫 한 시간 만에 110만 유로(약 17억 원)에 판매됐고, 안토니 곰리의 조각은 75만 파운드(약 14억 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글래드스톤이 출품한 키스 해링의 종이 작품 10점 역시 각 20만~27만5000 달러(약 2억7000만~3억7000만 원)에 거래됐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각각 전시 중인 서도호와 유영국의 작품은 개막과 동시에 큰 관심을 모았다. 서도호 솔로 부스를 선보인 리만 머핀과 싱가포르 STPI에서는 실제로 빠른 시간 내에 다수의 작품이 판매됐고, 3일 국제갤러리에서는 유영국의 1971년작 ‘Work’가 160만~180만 달러(22억~25억 원)에 거래되며 역대 프리즈 서울 한국 작가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 외에도 화이트 큐브에서 박서보의 ‘Ecriture No.221121’이 30만 달러(약 4억2000만 원)에, 갤러리현대에서 김창열의 작품이 최대 110만 달러(약 15억 원)에, 올해 로에베 공예상을 수상한 박종진의 작품 역시 프리뷰 시작 직후 솔루나 부스에서 약 4600만 원에 팔렸다.

‘덜 서구적인’ 국제성
올해 프리즈 서울에는 30개국 125개 이상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참가 갤러리의 70% 이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한국 갤러리 수는 57곳으로 크게 늘었다.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페이스, 데이비드 즈워너, 화이트 큐브 등 세계 주요 갤러리들이 자리를 지켰으나 일부 서구 갤러리들이 이탈하는 현상도 있었다. 일부 외신의 표현을 빌리면 프리즈 서울은 점차 ‘덜 서구적(less western)’이 되어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를 두고 서구 미술계의 관심이 줄었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프리즈 서울이 국제 미술 시장의 판을 조금씩 새롭게 짜고 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올해 새롭게 선보인 ‘스포트라이트(Spotlight)’ 섹션 역시 이 흐름을 이어받는 듯했다. 라인문화재단 디렉터 고원석이 큐레이팅한 이 섹션은 20세기 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던 작가들을 다시 바라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곽훈, 한영수, 세키네 노부오, 포 포, 황규태, 손상기 등 기존 서구 미술사의 주류에서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던 아시아 작가들의 작업이 전면에 등장했다. 개별 갤러리에서 동아시아와 중동을 비롯한 비서구권 작가들의 존재감도 이전보다 두드러졌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프리즈 서울은 서구 미술계로 진입하기 위한 관문이라는 기존의 역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미술 세계를 연결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국제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프리즈 서울이 런던이나 뉴욕이나 복제품일 필요는 없다. 되레 중요한 것은 서울에서만 가능한 국제성을 만들어내는 일 아닐까? 

신세계 라운지에 전시된 폴 콕스의 ‘Diary’ 연작.

예술을 다시 일상으로
신세계그룹은 프리즈 서울의 이러한 여정에 함께하며 이번 페어에 또 다른 의미를 더했다. 올해 신세계그룹의 역할은 단순히 페어를 후원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오랫동안 일상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는 방식을 만들어온 신세계그룹은 이번 파트너십에서 그 연장선에 있는 경험을 제안했다. 프랑스 작가 폴 콕스(Paul Cox)의 특별전 <L’Immensité du Quotidien: The Monumental Everyday>를 신세계 라운지에서 선보인 것도 그 때문이다. 작품을 사고파는 일로 분주한 공간에서 신세계 라운지는 잠시 속도를 늦추고 예술을 바라보는 시간을 제공했다.

1959년 파리에서 태어난 폴 콕스는 회화와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출판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일상의 풍경을 관찰해왔다.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어 중 하나는 ‘관찰’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예술비평가 존 러스킨이 말한 “무구한 눈(Innocent eye)”처럼 콕스는 익숙한 세계를 매번 처음 마주하듯 바라본다. 그렇게 매일 반복되는 장면 속에서 쉽게 지나치는 작은 순간과 사물을 포착하고 이를 화면 위에 기록해 왔다. 

대표 연작인 ‘Diary’ 역시 매일의 관찰과 사유를 축적한 결과다. 각각의 작업은 개별적으로는 작고 친밀한 규모지만, 수많은 작업이 한 공간에 모이는 순간의 놀라운 존재감을 만들어낸다. 사소해 보이는 하루의 순간들이 쌓여 완성한 하나의 거대한 풍경은 그 자체로 우리 일상이 지닌 무게감에 대해 말해준다. ‘The Monumental Everyday(일상의 무한함: 기념비적 일상)’라는 전시 제목처럼 콕스가 보여주는 것은 예술의 위대함보다 ‘일상의 위대함’이다. 빠른 속도와 끊임없는 자극이 일상이 된 시대, 그의 작품은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을 다시 바라보고 작은 장면 하나에도 충분한 깊이와 울림이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기에 충분했다.

라운지에서 만난 폴 콕스는 프랑스 예술가 로베르 필리우의 말을 인용해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술보다 삶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제가 예술을 해온 이유입니다.” 예술을 통해 삶을 더 흥미롭게 여기게 된 그의 태도는 올해 프리즈 서울이 보여준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세계의 갤러리가 서울로 모이고, 미술관과 갤러리, 브랜드와 컬렉터가 함께 움직이며 도시는 하나의 전시장으로 변모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값비싼 그림을 목격하는 것 그 이상이다. 프리즈 서울의 개최로 인해 ‘아트 위크’라는 말이 낯설지 않아졌듯, 앞으로 5년간 이어질 프리즈 서울과 신세계그룹의 파트너십은 예술을 더 넓은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세계의 예술이 서울로 모이고, 서울의 예술이 다시 세계로 뻗어 나간다. 프리즈 서울에서 펼쳐진 이 거대한 흐름의 반대편에는 신세계그룹이 제안한 또 다른 예술 경험이 있었다. 페어장을 오가던 사람들이 신세계 라운지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폴 콕스의 작은 그림들을 바라본 것처럼, 예술은 한 사람의 일상과 진정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서울에서 시작된 예술의 흐름이 세계와 일상을 동시에 움직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올해 프리즈 서울과 신세계그룹과 함께 보여준 가장 의미 있는 변화일 것이다.